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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울메이트 Jul 25. 2022

가족 그림첩 만들기

시댁 식구를 소개합니다 - 1편

드로잉 태블릿이 고장 났다.

이제 3년째 쓰는 건데 벌써 고장이라니.. 역시 너무 싼 걸 골랐나. 새것을 살 때까지 그림 그리는 걸 좀 미루고 있었는데 며칠 지나니 몸이 근질거려서 오늘 끝내 연필을 잡았다.

종이 위를 미끄러지는 4B연필의 보들보들한 감촉은 실로 오랜만에 느껴본다. 태블릿에서는 느끼기 어려운 쫀득한 필감. 근데 너무 오랜만이라 그런지 아직 익숙하지 않고, 선을 잘못 그리면 지우개를 쓰는 대신 자꾸만 'ctrl+z를 눌러!'라고 왼손에게 명령하는 나의 뇌가 우습다. 고새 태블릿에 길들여져서는.


태블릿이 고장 나기 전, 일함 누나(붑커의 셋째 누님)로부터 티셔츠를 선물 받았다. 고마운 마음에 그날 태블릿으로 누나를 그렸는데 남편이 무척 맘에 든다며 부탁을 하나 했다.

붑커>> 이런 식으로 다른 식구들도 그려줄 수 있어? 나 한국 가기 전에 네가 그려준 걸 인쇄해서 가족들한테 주고 싶어.

나>> 좋아! 한 2~3주 걸릴 것 같아.

그리고 이틀 뒤 태블릿이 돌아가셨다 하하핫.


Ilham(일함) 누나. 여장부 스타일. 카리스마 작렬.



새 태블릿은 조금 비싸더라도 좋은 걸로 사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다음 달 수입이 들어올 때까지 좀 참아야지 하고 있었다. 데 남편이 곧 한국에 들어올 예정이라 그 전에 가족 한명 한명을 그리려면 지체할 시간이 없었고, 무엇보다 손이 심심했다. 래서 오늘 '에이 그래 한번 시도나 해보자'하고 손그림을 그린 것인데, 이게 또 꽤 재밌다?! 오히려 태블릿의 편리함에 빠져 그동안 잊고 있었던 손그림의 매력을 간만에 끽하고 나니 이제 냥 손그림만 그릴까 싶기도 하다.


4B연필의 장점은 인물을 사실적으로 표현하고자 할 때에 극대화 되는 것 같다. 연스레 내 그림도 캐릭터화 시킨 인물이 아닌 실물에 가까운 인물화가 되었다. 오늘의 대상은 남편과 남편의 어깨에 기대 잠든 조카 '세이프'이다.


남편 Boubker(붑커)와 조카 Saif(세이프)


요즘 내가 가장 좋아하는 남편의 사진을 보고 그렸다. 나는 남편의 눈을 참 좋아하는데 그의 따뜻한 마음씨가 눈동자에 그대로 담겨 있기 때문이다. 아이들을 좋아하는 남편은 조카들과 함께 있을 때 그 눈이 더욱 게 빛난다. 


세이프는 낯을 가리는 편이라 정말 편한 사람이 아니면 절대 품에 안기지 않는다. 모로코에서 지내는 동안 세이프와 만난 적이 있는데 나에게 뽀뽀는 한번씩 해줘도 안으려고 하면 울상이 되었다. 렇게 세이프를 안아서 재울 수 있는 건 선택받은 사람만의 특권이다. 세이프가 남편을 얼마나 좋아하는지 알 수 있다. 남편의 품에 안겨서 코 자는 세이프의 천사같은 얼굴을 보며, 나는 남편이 부럽기도 하고 세이프가 부럽기도 했다.




이리하여 시댁 가족 그림첩은 아무래도 손그림으로 채워질 듯 하다. 확실히 연필로 그리니까 깔끔함은 덜해도 생동감이 더해진 것 같아 마음에 든다. 이게 다 태블릿이 고장난 덕(?)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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