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난다.
이제 반년 정도면 이곳을 또 떠난다.
언제나 떠나는 삶.
잘 떠날 수 있을까. 잘 떠난다는 것은 무엇일까. 남겨진 이에게 어떠한 감정과 기억을 남겨야 잘 떠나는 것일까. 나는 잘 떠나왔을까.
늘, 떠난다는 소식을 접하게 되면 상대는 갑자기 매우 애타했다. 느닷없는 고백을 하며 커다란 인형을 주기도 하고, 마음을 곱게 쌓아 적어낸, 반쯤 채워진 일기장을 주기도 했다. 남은 페이지는 그곳에 가서 채우라며.
그런 것들은 다 어릴 때라. 아마도 끓어오르는 감정을 스스로 다 어찌하지 못하여 그랬으리라.
참, 순수하고 푸른 젊음이었다.
나이를 꽤 먹고 나서는, 눈빛이 깊게 새겨지는 때가 있었다. 말없이 무거운 시선을, 눈이 마주쳤는데도 피하지 않고, 가만히 내게 올려두던, 훗날 떠올려도 오래도록 여운이 번지는, 그런 때.
알게 되는 것이다. 인형이든 일기장이든 그런 투명한 애절함으로 어떻게 할 수 없는 현실이 있다는 것을.
스스로 생각해도 조금, 남녀관계가 아니더라도, 지나칠 정도로 인연들을 깔끔히 정리해왔나 싶다. 어쩌면 그 시절에는 그럴 수밖에 없었다. 스마트폰이 없던 때라. 해외로 가게 되면 이메일 가끔 주고받다가 소식이 끊기는 게 자연스러웠다.
또 어쩌면, 그것이 나를 다치지 않게 하는 방법이었으리라. 떠나고 헤어지고 하는 것은 언제나, 물컹한 것이 출렁대다가 그만, 울컥, 하고 쏟아질 것만 같으니까. 그 물컹한 무언가를 인지하지 않으려 애썼는지도 모른다. 나중에는 그게, 떠나거나 떠나보낼 때, 사뭇 크게 동요하지 않는 모습으로 형상화했는지도 모르고. 그러니, 언제나, 우리 '웃으며, 내일 또 볼 것처럼 헤어지자' 하고 작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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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곳에서 가장 길게 살았던 것은 학창 시절 12년. 이제 보니 보배 같은 시간이다. 그 와중에도 집은 다섯 곳을 옮겼지만.
엄마는 내가 어릴 때부터 자주, 너는 사주가 커서 객지로 해외로 나갈수록 성공한다더라. 역마살이 단단히 꼈다는데, 요즘 같은 시대에는 그것도 복이다. 하시더니, 어느 날엔가 내방 컴퓨터 화면에 띄워진 나의 아이디가 '떠돌이 별'인 것을 보고는 이름이 그게 뭐냐, 마음 아프게.라고 하셨다.
그런가? 나름 운치 있다고 생각했는데. 자랑스러운 역마살도 표현하고. (나는 역마살을 자유롭고 현대적인 운명이라고 받아들이고 있었다) 그냥 바꾸라 그러셨으면 아마, 반항심에 그대로 두었을 텐데, 당황스럽게 눈시울까지 촉촉해지며 마음 아프다 하시니, 바꾸었다. 뭐라고 바꾸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바꾼 이름은 내 마음을 썩 담아내지 못했으리라.
학창 시절 12년을 전후로 하여서는 한 도시 또는 한 나라에 길게 머문 적이 없다. 짧게는 1년 길게는 4년 남짓. 많이 다녔고, 많이 만났다. 나는 내가 만나고 떠나온 이들에게 무엇을 남겼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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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마트폰이 처음 나왔을 때, 이런 게 있었다면 인연이 더 오래갈 수 있지 않았을까, 아쉬웠다. 멀리 있는 이와도 실시간으로 문자를 할 수 있고, 영상통화까지 손쉽게 하고, 심지어 여럿이서 대화할 수 있는 단체 채팅방은 획기적이었다.
그 후로 십수 년이 지나고 나니, 중요한 건 스마트폰이 아니었지 싶다. 정리를 잘 못하는 성미라, 친구목록에는 모르는 사람들이 수두룩하다. 누군지도 모르겠는 사람의 프로필 사진을 그냥 그대로 둔 지 한참이다. 인간관계는 그렇게 정리를 해버리는 내가 왜 연락처는 이렇게 쌓아두고 있는지 모를 일이다.
사실, 인간관계를 정리하는 일은 어렵지 않다. 그냥 내버려 두면 된다. 그냥 그대로 놔두면 서서히 옅어지고 흩어지고 종국에는 끊어진다. 그것마저도 애써 노력할 필요가 없다. 아쉬운 마음에 이런저런 안부를 묻다가도 시간이 지날수록 할 말이 없어진다. 잘 지내는지 묻고, 여기 한번 놀러 오면 연락하라고 하고, 그런 대화가 몇 번 반복되고. 그러다 보면 결국 더 붙일 말이 없고, 선뜻 안부를 묻기도 꺼려진다.
물론 이 모든 것은 오로지 나. 나라는 인간의 특성에 기인한 것이기는 하다. 쑥스러운 것인지, 어색한 것인지, 한동안 안 보던 사람들에게 연락하는 것이 어찌나 어려운지 모른다. 사회생활을 하며 보니, 정말 인간관계를 잘하는 사람들이 있더라. 그런 이들은 대게 적을 만들지 않고, 사람 만나기를 기질적으로 좋아한다. 그런 사람은 나도 좋다. 내가 좋아하는 것은 남들 눈에도 좋기 마련.
그렇지만 세상이여.
나에게 혼자 있거나, 혼자 점심을 먹어도, 사람들 사이에서 내키지 않을 때는 웃지 않고 있어도 별종 취급 당하지 않을 자유를 허하여 주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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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자유를 갈망하는 나도,
종종 오랜 시간이 흐른 뒤에도 고맙거나, 그때는 잘 몰랐지만 너그러운 마음으로 대해준 이들이 떠오르곤 하는데, 그런 이들에게 뜨문뜨문 안부를 묻는다.
그러나 케이코.
그런 안부를 케이코, 그녀에게는 전할 길이 없다.
나는 스무 살에 만났던 케이코를 가끔 생각한다. 나보다 딱 열 살이 많았던 그녀. 어학연수를 할 때 알게 되었는데, 아마도 원래 직업이 기자였던가...
나더러 항상 아직 어리니, 기회가 많다고, 많이 만나보라고, 슬퍼하지 말라고 했었는데.
케이코 언니. 결혼 상대를 매우 찾고 싶어 하던 그녀는 그때 사귀던 사람과 어떻게 되었을까.
어학연수가 끝나고 일본으로 돌아간 그녀가 다시 연락해 온 적이 있다.
핸드폰으로 온 문자 메시지. 출장차 상하이로 온다는 그녀. 우리는 일 년여 만에 만나기로 했다.
그런데 그녀를 다시 본 장면이 머릿속에 없는 것을 보니, 아마도 우리는 만나지 않았나 보다. 출장 일정이 빠듯하여 결국 못 보고 떠났던 것 같은데... 그 기억도 가물하다.
케이코에게 다시 연락할 방법이 있다면...
케이코는 나를 기억할까? 이제 거의 이십 년 전 이야기가 되어 가는데, 우리는 서로 알아볼 수 있을까?
♧
나는 나름대로, 낯을 가리는 편임에도 불구하고, 적응은 잘하는 편이라고 자부한다. 이 적응이란 것을 위해 떠나온 곳에 눈길을 돌리지 않는다는 것이 문제라면 문제일 뿐.
새로운 곳에 발을 디딜 때 연착륙한 적이 거의 없다. 항상 경착륙이다. 우당탕탕 끼익- 요란하게 착륙한다. 그것은 그러나 대게 내 의지와 무관했다. 생각지 못한 변수들. 나만 혼자 후미진 곳으로 배치된다거나, 하필이면 옆 방 사람이 친구들을 매일 밤 자기 방으로 부른다거나, 다들 혀를 내두를 정도로 성질 고약한 사람 밑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한다거나 하는. 그런 경착륙의 연속임에도 결국은 적응을 해왔으니, 그래도 일견 대견한 점이 있는 것은 분명하다. 어지럽게 정착이라는 것을 하고 나면, 그 정착의 과정이 많은 상처를 남기곤 했고, 그 뒤로부터의 시간은 휙 지나가버렸다.
착륙하고, 적응하는 사이에 생긴 상처를 돌보느라 너무 애를 써버린 것일까. 적응 후의 삶은 되려 밋밋하게 느껴진다. 돌이켜보면 생각나는 것은 왜 항상 그 고난의 시절인지. 떠나는 것에 익숙해져, 깊게 정을 주지 않으려 함에도 또 생각나는 것은, 그 고난의 시절을 함께 버텨준 사람들. 사람들이다.
머무르던 곳을 떠나 새로운 곳에 갈 때, 내가 그나마 적응은 쉽게 한다고 느끼는 것은 아마도 나의 정리하기 버릇 덕분일지도 모른다. 연락을 먼저 하지 않는 수동적 방식으로 자연히 정리하는 이 버릇의 장점은 새로운 곳에 적응하기 쉽다는 것이다. 다음 곳에, 이전의 잔상과 여운이 남아 있으면, 힘들다. 그곳의 나와 이곳의 내가 너무 달라서 찢어질 것만 같다. 그러니 정리하는 것이다. 다시 돌아보지 않는 것이다.
자의 반 타의 반의 이 정리는 나에게 무엇을 남겼을까. 내가 떠나온 이들에게는 무엇을 남겼을까. 그들은 그들 나름의 방식으로 나를 기억하고, 나는 내 나름으로 그들을 기억한다. 그래도 종종 연락하고픈 마음이 인다는 것으로, 나는 잘 떠나왔다고 할 수 있는지, 묻고 싶다. 내가 떠나온 그대들에게. 나는 잘 떠났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