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을 써보았다.
인생에서 처음으로 소설이라는 것을 써보고, 여러 번의 퇴고를 마친 후 동생에게 보여주고, 피드백을 기다리며 한번 숨 고르기를 해본다.
'오~ 언니 학창 시절에 시도 썼잖아'
뜸을 들이다가 전송한 파일을 보고 동생이 보인 반응이다. 내가 시를 썼던 것을 기억하다니. 다섯 살이 어린 동생은 그때 겨우 9살쯤이었을 텐데. 한창 감수성 풍부하던 중학생 언니가 시를 쓰네 마네 하는 것을 눈여겨보았었나 보다.
아버지가 책을 좋아하셨다. 당신도 많이 읽으시고, 내게 많이 읽어도 주셨고. 책장에 소설이 가득하여, 심심하면 한 권씩 꺼내 읽곤 했다. 특히 중학생 때 가장 많이 읽었는데, 그 시기 이리저리 빗나가고 튀어나가는 마음을 이야기 속에 밀어 넣고 가다듬었나 보다. 물론, 어른들이 등장하는 세계가 가장 궁금할 때였기도 하고.
소설은 고등학교에 들어가서 훨씬 덜 읽게 되었는데, 입시 준비로 바빴다는 핑계를 대기에는 여러가지 다른 오락거리로 시간을 많이 썼기에 마땅하지 않아 보인다. 어른이 되고 나서는 한동안 주로 논픽션을 읽었는데, 아무래도 소설 읽는 것이 뭔가 시간 낭비로 느껴졌다. 소설은 다 읽고 나서 남는 게 없다는 생각이었다. 시간 들여 읽었는데 지식이 더 쌓인 것도 아니고, 어디다 써먹을 데도 없고. 마음이 바빴으리라.
마음만 바쁘고 제대로 갈피를 못 잡은 사람을 세상은 호락호락하게 넘어가 주지 않았다. 대책 없는 낭만이었을까. 나는 그래도 된다고 생각했다. 겨우 스물하고 몇 살쯤 먹었을 뿐인데. 궤도에서 한 번 미끄러지니 스물 보다 서른에 가까워졌을 때 나는 저만치 외딴곳에 가 있었다.
나름대로 큰 결심을 하고, 어찌어찌 세상이 좋다고 하는 궤도를 달리는, 안정적이고 남보기에도 멋지다는 열차에 올라탔다. 꼬리칸쯤에 나는 겨우 몸을 던져 넣었지만, 떨어진 다른 이들을 보며 아찔한 안도를 느꼈다.
후. 한숨을 돌리고 보니, 시키는 대로 이리저리 뛰어다녔는데도 여전히 꼬리칸이다. 이제 서른 보다 마흔이 가까워졌는데.
마흔을 한 칸 남긴 서른아홉에, 내게 벌어진 일련의 일들은, 소설이라고 한다면 지나치게 작위적일 만큼 당황스러운 우연이 겹겹이 겹친 모습이었다.
그 당혹감과 애잔함은 홀로 삭이기 어려웠으나, 어디 털어놓기도 싫었다. 그즈음, 인공지능 챗봇을 너도나도 쓰기 시작하기에 나도 한번 열어봤다. 처음에는 주저했지만 나중에는 멈출 수가 없었다.
이런저런 상황을 가정하고, 상상해 보라고 했다. 그렇게라도 해보고 싶었다. 이렇게 해보고 저렇게 해봤는데 다 마음에 안 들었다. 이걸 이렇게 다 설명해주어야 하다니. 그리고 왜 전에 한 이야기를 잊어버리는 거야. 이럴 거면 내가 쓰고 말지.
그렇게 시작하게 되었다.
현실과 너무 닿은 이야기는 감당이 안되었다. 억지로 끌고 가다가, 내가 질식할 것 같아서 엎어버렸다. 장르를 바꾸어 시도해 봤다. 조금 나아진 것 같았으나 여전히 자유롭지 못했다. 소설이라고는 읽는 것도 띄엄띄엄해 온 내가 장편을 쓰겠다고 낑낑댄 것부터가 무모했다.
아쉬움에, 한 장면만 떼어내어 단편의 형식으로 써보았다. 후련했다. 이것을 그냥 두자니, 또 뭔가 아쉬워 찾은 길이 이곳 브런치이다. 간단한 소개와 함께 내 인생의 첫 단편을 작가 신청에 실어 보냈다. 그 글은 아직 내 서랍에 있다. 언젠가 그 글이 세상의 빛을 보게 될 날이 있을까. 아직은 시간이 더 필요하다.
그 글과는 다른 소재로 단편을 또 하나 썼고, 지금 동생에게 건네어졌다. 그녀는 무슨 감상을 전해줄까. 여러 번 읽어보고 얘기해 주겠다던 동생의 회신을 기다린다.
아무래도 나는 이제 돌아갈 수 없다.
소설을 쓰기 전의 나로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