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전 일을 기억한다는 것
마지막 글을 쓰고 나서 약 2개월이 지났다. 시간이 꽤 지났지만, 글을 아예 쓰지 않은 건 아니다. 작가의 서랍에는 마무리가 아쉬워 쓰다 만 글이 여럿 있다. 그리고 2개월 동안 나름 바빴다. 본격적으로 여름이 시작되기 전 갑자기 업무가 몰려 일을 쳐내기 정신없었다. 아무래도 업무 하나당 최소 2개월에서 최대 4개월이 걸리고 초반이 가장 바쁘다. 이제야 맡은 업무에서 바쁜 부분을 얼추 마무리하고 한숨을 돌리고 있다.
그동안 다양한 일이 있었지만,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은 당연히 가장 최근에 있던 일이다. 지난주 대학교 교수님께 연락드려 친한 형과 함께 찾아뵙고 같이 식사했다. 온라인으로 인사드리곤 했지만, 코로나로 인해 약 3년 만에 직접 인사드렸다. 식당 마감 시간이 아니었다면, 대화가 계속 이어졌을 만큼 즐겁게 보냈다.
교수님과의 인연은 2017년 내가 편입할 때부터 시작한다. 교수님은 편입 전공적성면접의 심사위원으로 참가하셨고, 난 블라인드로 진행되어 이름이 아닌 후보 3번으로 인사드렸다. 그때 문제 풀이는 맞지만, 정답은 완전 오답을 이야기해 떨어졌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최초 합격하여 놀랍고 감사한 마음으로 서울에 올라갔다.
그 후 교수님은 수업에서 날 알아보셨고, 그 때야 내 이름과 함께 제대로 인사를 드렸다. 교수님, 다른 편입 동기와 선배들과 좋은 시간을 보내다 난 입대로 군 휴학 후 2년 뒤 복학했다. 편입 동기와 선배는 없지만, 교수님은 계셨고 오랜만에 인사드리고, 교수님께선 좋은 기회도 소개해주셨다. 그 후엔 코로나 때문에 오프라인이 아닌 온라인으로 종종 인사드렸다.
군대에 가기 전 대학원 진학을 생각했지만, 군대에 있으면서 공부에 대한 자신감과 열의가 떨어졌다. 그 후 취업으로 고개를 돌렸고, 코로나로 스페인 교환학생 취소와 동시에 취업 준비가 앞당겨져서 교수님께 연락드리지 못했다. 4학년 2학기 마무리 후 인턴으로 일을 시작했고, 약 1년 동안 일과 이직을 병행하다 다음 직장이 결정될 때 연락드렸다. 그땐 코로나가 심해 찾아뵙지 못하고 다음을 기약했고 지난주에 찾아뵙게 된 것이다.
오랜만에 교수님께 인사드렸으나, 예전과 똑같으셨다. 엄청나게 긴장한 내가 무색할 정도로 편하게 대해주셨고, 교수님과 위에 쓴 예전 일을 이야기하면서 긴장이 풀렸다. 그러면서 교수님과 친한 형은 예전에 있었던 일을 세세하게 기억하는 내 모습을 보고 놀라셨다.
사실 지금도 아무리 옛날이지만 예전에 있었던 다양한 일을 세세하게 기억하고 있다. 초등학교 때 친구와 만나면 오직 나만 몇 학년 몇 반, 당시 학생 번호까지 기억한다. 그리고 그때 이런 일 있지 않았냐며 마치 어제 있었던 일인처럼 자세하게 이야기하지만, 다른 애들은 모르는 눈치이다.
아무리 오래되어도 자세하게 기억하는 이유는 딱 하나다. 잊고 싶지 않을 만큼 굉장히 좋은 기억이기 때문이다. 아니 잊고 싶지 않다. 하지만 마냥 좋은 건 아니다. 뜬금없이 갑자기 생각이 나고, 그 기억과 관련된 사람에게 같은 이야기를 반복하곤 한다. 그중 가장 최악의 단점은 잊고 싶어도 잊지 못하는 경우다. 좋은 기억만 기억하는 게 아니라 자기 전 갑자기 생각나 이불을 엄청나게 차고, 머릿속은 그때 생각으로 가득 차 잠을 설치곤 한다.
단점이 있지만, 그래도 이런 내가 좋다. 상대방은 기억이 가물가물한데, 내가 자세히 이야기해주니 기억이 났다며 같이 그때 추억으로 빠져드는 모습은 정말 잊을 수 없다. 함께 이야기하는 상대와 같은 감정을 공유하는 게 흔하지 않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