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 좋은 일이 한꺼번에 일어날 때
추석 연휴 시작하기 전 휴가 4일을 써 총 열흘 동안 푹 쉬었다. 군 전역 후 제일 오래 쉬었고, 작년에 본격적으로 서울 생활을 시작하면서 계속 달려오다가 오랜만에 경주에서 가족과 시간을 보냈다. 휴가 가기 전 진행하던 일을 전부 다 처리하고 7,8월간 많은 업무로 굉장히 지쳐있었다. 근 두 달 동안 올린 품의서는 약 70개였고, 단순히 계산하면 난 매일 1~3개 많으면 하루에 최대 6개를 상신해 결제받았다. 항상 보고 자료에 시달리다가 벗어났기에 휴가 땐 그저 가족과 함께 맛있는 거 많이 먹고 잠도 완전 푹 잤다.
확실하게 재충전 후 서울에 올라와 출근 준비하는데 출근하는 날 평소보다 한 시간 일찍 일어났다. 다시 잠들기 어려우니 사무실에 미리 가 업무 보자고 생각해 사무실에 출근했다. 팀장님은 항상 일찍 오셔서 출근 후 연휴 잘 보내셨냐고 인사드렸는데 굉장히 피곤해 보이셨다. 하지만 항상 많은 업무로 정신없으시고 매주 보고 자료 준비로 바쁘시기에, 자리에 돌아가 업무를 보았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고 모두 다 출근했을 때 사무실 전체적인 분위기가 굉장히 어색했다. 오랜만에 사무실에 출근해서가 아닌, 다들 이전보다 예민해졌고 연휴를 보낸 직후인데도 많이 피곤해 보였다. 그러다 문득 내가 사무실에 없는 동안 팀에 공유된 공지 내용이 눈에 거슬렸다. 새로운 기조실장님이 부임하셔서 기존 결제라인 변경은 물론, 진행하는 업무에 대해 별도로 대면보고가 필요하다고 했다. 다들 내가 없는 동안 새로운 사람이 찾아와 바뀐 환경에 적응한다고 고생하는 게 분명했다.
그렇게 전과 다른 분위기인 사무실에서 근무하다가 선배가 자리를 비워 선배 내선 전화를 당겨 받았다. 전화를 건 사람은 본인이 어느 대학의 학장이라고 소개했다. 이름만 들었을 때 우리 재단과 관련된 곳인데, 내가 알기론 우리 재단에 속한 대학 중 그런 이름을 가진 대학은 없었다. 그래도 일단 인사하고 문의사항이 무엇인지 질문했다. 그러더니 본인이 이번에 학장으로 새로 부임했다는 소리만 3번 반복하길래 나도 인사하고 문의사항이 무엇이길래 전화했냐고 반복했다.
그러더니 갑자기 나에게 넌 뭐하는 새끼길래 전화를 그따구로 받냐고 욕을 하더니 바로 끊어버렸다. 당황해서 선배가 자리에 돌아왔을 때 내선으로 이런 전화가 왔다고 설명하니 본인도 처음 들어본 이름이라며 이상한 사람인 것 같다고 답변했다. 나중에 확인해보니 전화를 건 사람이 이야기한 대학명은 재단에 속한 대학 중 하나의 20년 전 교명이었고, 혹시 몰라 직원 이름을 조회했을 때 그런 이름을 가진 사람은 없었다. 기분이 영 좋지 않았지만, 분위기도 좋지 않으니 조용히 있어야지라고 마음을 먹자 팀장님이 찾으셨다.
오전에 결제를 받기 위해 올린 보고 자료를 반려했다고 말씀해주셨다. 휴가를 가기 전에 작성해 예전 데이터가 작성되어 있으니 최신화 후 결재 올리라고 말씀하셔서 수정했다. 이후 결제 상신했으나, 추가로 확인해야 할 내용이 생겨 확인 후 다시 피드백 주겠다고 하셔서 반영해 다시 결제를 올렸다. 그런데 또 반려되었다.
어리둥절하다가 팀장님께선 나를 데리고 국장님 방에 들어갔다. 국장님은 실무자 입장에선 데이터를 최신화하는 게 맞지만, 대면 보고 때 작성된 자료는 이전 거니 다시 전과 똑같이 작성하라고 말씀하셨다. 이전에는 항상 최신화했기에 왜 그래야 하는지 이해가 안 됐으나, 여기 조직은 이해보단 납득이 우선이라 다시 이전 데이터로 수정 후 결제를 올려 마침내 승인을 받았다.(여담이지만 나중에 듣기론 기조실장님이 보고자료에 나온 데이터가 실제로 상신된 자료와 왜 다르냐고 국장님을 질책하셨다고 한다.)
끝이면 정말 좋겠지만, 오후 늦게 업무 보다가 국장님이 날 급하게 찾는다고 동기 형이 채팅으로 알려줘 전화를 끊고 국장님 방으로 들어갔다. 국장님은 나에게 누구랑 그렇게 오래 통화하길래 3번이나 전화로 찾았는데 계속 통화 중이냐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이전에 있었던 일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업무 지시로 찾으신 줄 알고 있는 난 갑작스러운 꾸중과 설명에 당황했지만, 업무 지시라 생각하고 15분 동안 이야기 듣고 나왔다. 참, 국장님은 내가 담당하는 업무 일정 확인 차 연락하셨고, 모든 꾸중이 끝난 후 답변드렸다.
어색한 분위기 + 수면부족 + 이상한 전화 + 업무 시달림 + 꾸중. 이 중 처음 겪어본 것은 없다. 전에도 충분히 못 자고 출근하기도, 이상한 전화 때문에 감정을 소모하기도, 업무에 시달려 반나절을 날린 적도 있다. 그리고 신입이라 부족해 업무 지도를 받으면서 잘못된 부분을 고쳐나갔지만, 이 모든 게 하루에 한꺼번에 일어난 건 처음이다. 너무 지쳐 퇴근 후 밥만 챙겨 먹고 바로 잠에 들었다. 마치 배터리 100프로에서 완전히 방전되어 뭐 할 힘도 없었다. 하지만 김첨지의 운수 좋은 날이 떠올랐다. 그래서 내가 겪은 일을 글로 정리한다면 제목을 운수 나쁜 날이라고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이번 글은 쓰면서 내가 왜 글을 쓰는지에 대해 한번 더 생각했다. 내가 글을 쓰는 주된 이유는 바로 기록이다. 겪은 일에 대해 주변 사람에게 이야기하지만, 아무래도 휘발성이 커 시간이 지난 후 온전히 기억하기 어렵다. 그리고 일은 겪은 지 별로 안 지났기에 굉장히 감정적으로 이야기할 수 있다. 감정을 전달하는 건 마치 약과 같다고 생각한다. 적당하면 공감을 불러일으키지만, 지나치면 독이다. 즉, 상대방의 감정마저 상할 수 있다. 너무 억울하면 이성보단 감정이 우선되어 상대방에게 실수할 수 있어 매사 조심하는 편이다.
그리고 난 글을 쓰면서 미래의 내가 지금의 내가 쓴 글을 읽는 걸 상상한다. 당연한 소리이지만 글을 읽으면서 '아 그런 일이 있었지'로 끝나지 않는다. 그때 겪었던 일을 떠올리면서 나의 감정은 어떠했고, 비슷한 경우는 없었고 그땐 어떻게 대했는지 아니면 다음에 비슷한 경우를 겪으면 어떻게 현명하게 응대할 수 있을까 등 복합적으로 생각한다. 특히 후자의 경우 내가 쓴 글이 선례로 작용하여 도움을 주는 경우이기에 혹시 모를 일을 위해 최대한 자세하게 작성하려고 노력한다. 지금은 나의 글 쓰는 실력이 부족해 오직 나를 위해서 글을 쓰고 있지만, 나중에 능력이 된다면 다양한 사람이 공감하고 동시에 깨달음을 얻을 수 있는 글을 써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