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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현의 중요성

무언가를 바꾸기 위한 작은 노력

by 백동열

단어 '조직'의 사전적 의미는 아래와 같다.


'특정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많은 개인 및 여러 집단에 전문·분화된 역할을 부여하고, 그 활동을 통합·조정하도록 구성한 집단. 또는, 그러한 집단을 구성하는 일.'


즉, 나에게 조직이란 '다양한 사람이 한 곳에 모여 궁극적인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집단체'라고 생각한다. 여기서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부분은 바로 '한 곳에 모인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갈등은 주로 여러 사람이 모이는 곳에서 발생하기 때문이다. 원인은 다양하지만, 주된 원인 중 하나는 복잡한 이해관계라고 생각한다.


게다가 회사의 경우 주로 상하관계가 존재하고, 상하관계가 뚜렷할수록 아래에 위치한 사람은 본인 의견을 표현하기 어렵다. 따지고 보면 어렵기보단, 표현해도 어차피 변하지 않기에 안 하는 것이다. 입사하고 든 생각 중 하나가 여기는 너무 수직적이라 뭘 해도 바뀌는 게 없으니 다들 조용하고 수동적이란 것이다.


게다가 다들 표현을 하도 안 해서 이젠 잊어버린 듯하다. 일상 이야기는 물론 직원들끼리 교류는 거의 없으며 그저 주어진 일만 한다. 물론, 해야 할 일이 굉장히 많아 정신없고 지쳐서 이야기할 힘이 없어서 그런 거 일 수 있다. 하지만 말이 없어도 너무 없다. 난 이런 환경에서 근무하고 싶지 않다. 들어온 지 몇 달밖에 안된 난 오랫동안 존재한 갈등을 야금야금 깨 봐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가장 먼저 생각한 것은 다양한 간식을 사는 것이다. 함께 근무하는 직원 모두 다 남자이고, 인원도 많아서 간식을 자주 챙겨 먹는다. 그러나 항상 비슷한 간식이 비치되어 있었다. 맛있는 것들이라 불만은 없지만, 다양한 간식을 비치하면 분명 간식이 다양해졌다는 이야기가 나올 것이라 확신했다.


팀에서 막내인 내가 3개월의 수습기간이 끝나고 법인카드를 발급받으면서 자연스럽게 간식 주문 및 정리를 맡게 되었다. 발급 후 일하다가 중간에 살펴본 간식 리스트를 주문하기 시작했다. 다행히도 팀장님이나 선배들은 간식과 같이 항상 구매하는 품목에 대한 예산 사용은 딱히 터치하지 않았다. 간혹 이런 과자를 먹어보고 싶다고 이야기해주면 난 적극 반영해서 주문했다.


정말 다양하게 주문했다. 차카니, 꾀돌이, 브이콘과 같은 불량식품부터, 꼬북칩, 뻥이요, 감자깡, 포스틱 등 다양한 봉지 과자, 몰티져스, 에너지바, 찹쌀선과, 심지어 인터넷에서 비싸지만 맛있다고 이야기하는 레몬사탕까지 주문했다. 다들 아무 말 없이 비치해둔 다양한 간식을 빠르게 챙겨 먹었다. 홍대역 광고에서 환하게 웃는 김태리를 보고 산 콤부차는 가장 잘 팔리는 간식 중 하나가 되었고, 에너지바 20개를 시켰는데 다음날 1개만 남아 선배 한 명은 나에게 더 없냐고 물어보는 등 소소하고 재미있는 에피소드가 있다.


난 다양한 간식을 구비함과 동시에 간식 챙기는 선배들에게 말을 걸었다. 스타트는 간식 관련 질문이었다. 이번에 이런 과자도 한번 사봤는데 좋아하는지 아니면 괜찮은지 등 자연스럽게 물어보았다. 거의 대부분은 다양해서 선택하는 재미가 있다거나 새롭고 맛있는 게 많아 너무 좋다고 이야기했다. 그러고 날씨나 주말 혹 취미와 같은 일상 이야기로 넘어가면서 조금이나마 더 대화를 이어갔다.


선배들은 내가 다양한 간식을 주문하고 정리하는 거에 고마워하고 이를 나뿐만 아니라 모두 다 있는 자리에서 표현했다. 표현하는 선배를 볼 때 난 내 노력이 조금이나마 먹힌 것 같아 굉장히 뿌듯했다. 그리고 이젠 일상이나 일하다가 생긴 해프닝도 같이 이야기하곤 한다. 비록 큰 변화가 아니고 시간이 지남과 동시에 내가 더 편해진 선배들의 태도가 달라진 거 일 수 있지만, 난 분명 다름을 느꼈고 이는 더 나은 환경을 만들 원동력이 되어 만족한다.


만족함과 동시에 알게 된 사실인데, 선배들도 무언가를 바꾸려고 노력하는 중이었다. 나의 주된 관심은 경직된 팀 분위기를 활기차게 바꾸는 거였다면, 선배들은 다른 팀이 해야 할 일을 우리가 하는 불합리한 상황을 해결하는 것이다. 특히, 조직 특성상 변화를 두려워하는(혹은 해야 할 일이 늘어나는 상황을 불편해하는 나이 많은 직원들의 불만) 상황에서 이를 해결하는 것은 우리에게 정말 큰 힘이 든다.


그리고 선배들은 본인이 상대방보다 경력이 적거나 어리다는 이유로 무시당한 경우가 종종 있었다고 이야기해줬다. 아무리 논리적으로 이야기해도 상대방이 경력도 없는 게 감히 경력이 많은 나에게 그런 말 할 주제가 되냐는 비논리적인 태도로 무시당했다곤 한다. 그래서 상기 사유와 같이 계속 무시를 당하다가 최근에서야 정말 불합리한 것들은 바뀌기 시작했다고 이야기해줬다.


생각해보면 나도 비슷한 경우를 겪었다. 업무 관련해서 통화하는 중 병원은 나에게 신청 장비를 운영하는데 추가 인력이 절실히 필요하다고 나에게 이야기했다. 그래서 난 그건 내가 아닌 병원 총무팀 혹은 재단 인사팀에게 정식으로 요청해야 할 일이지, 내가 뭐 할 수 있는 게 없다고 이야기했다. 하지만 상대방은 내가 보고 자료를 작성할 때 그냥 '추가 인력 채용 필요'라는 문구를 추가하면 되지 않냐며 왜 이렇게 유연하게 대처할 줄 모르냐며 부탁의 탈을 쓴 협박을 당했다.


난 어이가 없어서 난 우리 팀장님에게 겪은 일에 대해 있는 그대로 이야기했고, 팀장님은 바로 전화해 우리 직원이 한 말이 맞으니 정식으로 요청하라고 했다. 그리고 담당 부서로부터 공식적인 답변이 오면 그때 보고 자료에 해당 문구 추가할 수 있다고 당사자를 참교육했다. 그 짧은 시간에도 상대방의 비논리적인 모습에 억울하다 못해 화가 났다.


선배들은 오랫동안 이런 비논리적이고 억울한 경우를 겪어왔다. 그래서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부분만 표현하기 시작했던 것이고, 다른 팀원도 본인과 같은 경험으로 피곤하겠다고 생각해 따로 터치하지 않은 것이라고 이야기했다. 선배와의 회식은 그동안 우리 팀이 경직된 분위기를 유지할 수밖에 없었는지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던 시간이었다.


혹시나 경직된 분위기 속 혼자 떠드는 내 모습이 부정적으로 보이진 않을까란 걱정에 한 선배에게 재잘거리는 내 모습이 보기 싫진 않냐고 웃으면서 물어보았다. 웃으면서 너무 보기 좋으니 그런 걱정 말라는 선배의 말에 걱정은 사라졌고 틈만 나면 열심히 이야기하고 장난스러운 말도 한다. 물론, 장난을 받아주지 않아 나 혼자 머쓱한 경우가 가끔 생기지만, 그래도 재미있으니 종종 시도하면서 나 나름대로의 변화를 이끌어 나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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