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고신입의 이직
새로운 직장에서 근무한 지 한 달 조금 지났다. 첫 출근 전 날 밤에 잠을 설쳤다. 3번째 직장이지만 과연 내가 새로운 환경에 잘 적응할 수 있을까란 생각이 계속 맴돌았다. 하지만 같은 업계로 이직해서 그런지 빠르게 잘 적응하여 정신없이 업무를 처리하고 있다.
이직을 결심하게 이유는 급여, 업무강도, 인간관계, 미래 등 다양하다. 하지만 그중 나에게 가장 크게 다가온 것은 바로 기회였다. 직장 동기 혹 선배들과 저녁에 술과 함께 시간을 가질 때, 주된 대화 주제 중 하나는 바로 이직이었다. 사실 나는 주변 사람들과 달리 이직에 대한 생각이 적었다. 정년이 보장되고, 지금 당장 업무가 고되지만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질 거라 믿었기 때문이다.
어느 날 나를 잘 챙겨주는 선배와 술을 먹다 나에게 진심 어린 조언을 해주었다. 나 같은 후배를 보면 여기보다 더 좋은 환경에서 근무할 수 있겠다란 생각이 들어 여기에서 고생하는 모습이 안타깝다고 말했다. 본인은 여기가 첫 직장이고 10년 넘게 근무하고 있으니 더 이상 옮길 기회가 없지만, 나는 아직 어리니깐 기회가 있을 때 최대한 도전해 보면 좋겠다고 이야기했다.
선배의 조언을 듣고 깨달은 것은 나는 내 기회를 스스로 버릴 만큼 너무 안일했다는 것이다. 그저 단순히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기대로 지금의 힘듦을 버티려고 했는지 다시 생각해 보니깐 정말 부끄러웠다. 선배의 조언을 동기부여 삼아 만료된 어학시험을 갱신하기 위해 얼른 시험을 접수하고, 여러 회사에 지원하기 위해 자소서를 썼다.
당연한 소리지만 환승이직을 준비하기 굉장히 어려웠다. 우선 직장에 힘을 다 쏟을 때가 많아 원활한 이직 준비는 거의 불가능했다. 게다가 3년 차로 접어들었기에 상사 기대에 맞는 성과를 보여줘야 했다. 휴가도 한 달 전에 취합하기에 면접이 생겨 갑자기 휴가를 낼 때 구차한 변명을 만들었다. 놀라운 건 변명이 잘 먹혔는지 상사들은 내가 이직 준비를 전혀 몰랐다. 물론, 주변 동료들은 눈치를 채고 간혹 물어봤는데 애써 모른척했다. 내가 모른 척해도 이직 준비하는 게 보였는지 나중에 최종 합격하고 이야기할 때 다들 알고 있었다고 말했다.
나름 노력을 많이 쏟았지만, 결과는 정말 초라했다. 서류는 수십 곳을 작성했는데 AI 면접은 3개, 1차 면접은 2개, 그리고 최종 면접은 이번에 이직한 회사가 유일했다. 게다가 1차 면접을 봤던 A병원은 이직 사유에 대해 질문하여 대답했는데 면접관이 대놓고 불쾌함을 표현하여 당황했다. 물론 결과는 탈락이었지만, 덕분에 다른 면접에서는 새로운 답변을 할 수 있도록 준비할 수 있었다.
지금 이직한 회사 면접 결과는 정말 예상하지 못했다. 왜냐하면 1차 면접은 토론 면접 때 한 명이 독보적으로 보이려고 욕심부려 분위기가 안 좋았고, 최종 면접은 1시간 가까이 대기했지만 10분 만에 끝났기 때문이다. 최종 면접은 온라인으로 진행했고 정해진 시간 내에 많은 사람들을 봐야 했기에 그럴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1차 면접은 의외였다. 인생에서 처음으로 토론 면접을 해봐서 부족했고, 한 명의 이기심으로 정말 망했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기대를 할 수밖에 없었다. 왜냐하면 내가 지원한 곳 모두 다 떨어지고 유일하게 남은 회사이기 때문이다. 이번에도 탈락하면 나는 몇 달을 더 기다려야 하는데, 하필 전공의 파업으로 관련 업계에 핵폭탄이 떨어졌다. 그래서 더 이상 채용 기회는 없지 않을까란 생각이 들어 정말 간절했다. 감사하게도 나는 최종 합격을 하게되었다. 지금 생각해 보니 두 번째 직장도 똑같이 다른 곳 다 떨어지고 마지막으로 결과가 나온 곳이었다.
최종 면접 결과가 나왔을 때 입사 예정일 바로 다음 주였다. 즉, 일주일 동안 지금 직장을 다 정리하고 새로운 곳으로 넘어가야 했다. 게다가 최종 합격은 안내해 줬지만, 부서와 근무지를 알려주지 않았다. 불확실하지만 그래도 우선 현 직장에 이직으로 퇴사한다고 이야기했다. 바로 국장님한테 호출당해 평소에 조용하게 열심히 일 하더니 이렇게 뒤통수를 치냐며 쓴소리를 들었다. 나는 국장님으로부터 많은 어려움을 겪었는데 아이러니하게도 국장님은 그런 날 많이 신경 써줬다. 그래서 이직을 결심하게 된 이유 중 하나인 국장님의 솔직한 모습을 보니 기분이 모호했다.
그래도 갈 사람은 가야 하기에 얼른 인수인계서와 기존에 하던 업무를 정리하기 시작했다. 시간이 별로 없어 송별회나 만남은 일단 미루고 해야 할 것부터 우선 처리했다. 연차 휴가도 약 12일 남아있었는데, 국장님은 연차 사용은 지양하고 인수인계에 집중해 달라고 부탁했다. 그래서 연차수당 받는 걸로 인사팀에 협조를 구했다. 신입직원 OJT도 같이했는데, 부족한 것 없이 일단 최대한 많이 알려주고 나왔다.
정식 출근 전날에 드디어 근무지를 안내받았다. 다행히 내가 희망했던 곳이었고, 부서는 입사 당일 알려줄 것 같아 기대반 걱정반으로 출근했다. 예상대로 첫날 같은 근무지 동기와 모여 간단한 OJT를 받고 부서 배정도 안내받았다. 나는 의료장비 구매 업무를 해왔기에 유관 부서로 가지 않을까 했지만, 인사팀으로 배정받았다. 물론 새로운 업무를 배울 기회이지만, 동시에 내가 잘 배울 수 있을까란 고민이 들었다. 다행인 건 아직 당장 인사 업무를 하는 게 아닌 총무 업무로 시작하여 그나마 수월하게 적응하여 업무를 처리하고 있다.
나는 대학교부터 지금까지 정말 쉼 없이 달려왔다. 휴학을 따로 하지 않고 학업을 이어가다 인턴으로 첫 직장 생활을 시작했다. 이후 첫 번째 직장은 11개월, 두 번째 직장은 2년 1개월 총 3년 가까이 일하다가 중고신입으로 3번째 직장에 옮겼다. 부모님은 혹여나 내가 지치지 않을까란 걱정하고 계시지만, 전보다 업무 압박이 많이 사라져서 괜찮다. 다만, 교통이 좋지 않아 출퇴근이 이전 회사보다 오래 걸려서 이사를 가야 하는데 순환근무가 있어서 조금 더 생각을 해봐야 할 것 같다.
나에게 동기부여해 준 선배와 최근에 만나 술을 마시면서 진심으로 감사하다는 이야길 했다. 같은 경상도 사람이라 그런가 얼버무렸지만, 그래도 내 마음이 잘 전달된 것 같다. 나도 나중에는 선배처럼 주변에 동기부여를 줄 수 있는 사람으로 성장한다면 좋을 것 같단 생각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