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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에는 일, 저녁에는 집안일하는 삶

by 백동열

누나가 약 2년 동안 준비하던 시험이 어제부로 끝났다. 난 끝없는 기침과 두통 그리고 공부에 지친 누나를 약 한 달 전부터 케어했다. 원래 계획은 시험 일주일 전에 서울로 올라오는 거였지만, 공부하는데 집중이 잘 안 된다고 해 예상보다 더 일찍 올라왔다.(올라온 당일 아침에 이야기하고 바로 행동으로 옮겼다.)


발등에 불이 떨어진 것 같았다. 아니 떨어졌다. 전날 술을 먹어서 피곤했지만 집 청소부터 시작해서 당장 먹을 음식을 준비하고자 장 보러 나갔다. 평소에도 집안일을 계속해왔기에 준비하는데 어렵진 않았지만, 누나와의 충돌을 피하는 게 가장 큰 일이었다. 직장과 집안일에 누나가 새롭게 생기면서 단조로웠던 내 일상이 달라질 건 피할 수 없었다.


물론 누나랑 함께 사는 게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하지만 가장 마지막에 같이 지냈던 1년 전에는 서로 싸우다가 완전 끝까지 갈 뻔했지만, 누나가 본가로 내려가면서 유야무야 되었다. 그 후 혼자 평화롭게 지내다가 오랜만에 같이 살게 된 것이다. 지금은 그때랑 다른 게 이제 누나 시험이 별로 안 남았으니 괜히 누나 심기 건드려 오랫동안 준비한 시험에 영향을 끼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나도 사람인지라 계속 신경 쓰다 보면 자연스럽게 예민해지고 너무 터무니없는 모습을 보면 화가 날 수밖에 없다. 주로 충돌하는 이유는 서로를 이해하지 못해서 그런 것 같다. 같이 지내면서 생기는 사소한 불만이 쌓이다가 나중에 불만을 표현하면 거들떠보지 않거나 오히려 이야기 꺼낸 날 이상한 사람 취급할 때 싸웠던 것 같다.


부모님도 누나와 내가 서로 으르렁거리는 걸 너무나도 잘 알았기에 걱정이 많았다. 하지만 내 성격이 우유부단한 반면 누나는 자기주장이 강했고, 지금 이 상황이 특수해서 일시적이니 성가시더라도 내가 참길 원했다. 부모님 의견은 충분히 맞는 이야기이고, 부모님도 누나랑 같이 지내면서 많이 충돌하고 고생하셨기에 지금 이 상황을 버티는 건 그나마 괜찮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난 한동안 일하면서 동시에 집안일을 해왔다. 저녁에 퇴근하고 집 가면 쌓여있는 설거지를 처리하고, 빨래를 돌리면서 동시에 청소기를 돌렸다. 난 주로 요리할 때 찌개류를 대용량으로 해 냉동실에 넣고 필요할 때 꺼내서 먹었다. 하지만 다 먹었거나 계속 한 음식만 먹을 수 없기에 필요하다 싶을 땐 다른 음식을 만들었다. 이것저것 하다 보니 시간은 빠르면 저녁 8시에서 늦으면 10시가 되었고, 간단하게 저녁을 챙겨 먹고 잠들었다.


주말에는 근처 시장에서 장을 보고 집에 돌아오면 정리하면서 요리하고 나머지 집안일을 했다. 한 번은 토요일에 직장 동기들과 함께 등산하고 논 다음 날 아침부터 시장에 가 장 보고 비워진 냉장고를 채운 후 요리하면서 집안일하다 보니 일요일 저녁 9시였다. 벌써 새로운 한 주가 시작될 거란 생각에 아찔해서 눈을 질끈 감았다. 하지만 그런다고 뭐 달라질 건 없으니 체념하고 다음날 출근 후 일이 밀려 야근했더니 너무 피곤해서 오랜만에 입술이 터졌다.


누나는 이런 내 고생을 알았는지 같이 지내는 동안 크게 부딪히지 않았다. 내가 야근하거나 평일 저녁에 약속이 있으면 미리 해둔 밥이랑 반찬을 스스로 챙겨 먹거나 다른 게 먹고 싶으면 배달 음식 시켜 먹고 간단한 집안일은 본인이 하곤 했다. 누나 때문에 약속을 못 가거나 중간에 방해를 받은 적은 없다. 돌이켜보면 누나는 하루 종일 집 근처 독서실에서 지내다가 잠깐 집에 와서 밥 챙겨 먹거나 씻고 자는 게 전부다 보니 공부 외 신경 쓸 여력이 없었을 것이다.


딱 한번 엄청 화났지만 참았던 적이 있다. 퇴근 후 볼 일을 보던 중 누나한테 연락이 왔다. 너무 피곤해서 집에 잠깐 들러 자려는데 집이 너무 시끄럽다면서 빨리 와서 처리하라고 욕을 했다. 너무 시끄러우면 경찰에 신고하라고 이야길 했지만 직접 해결하라고 온갖 짜증을 부리길래 결국 볼 일 중간에 나와서 귀마개를 사다 주었다. 그리고 독서실에서 공부하던 자리를 치우고 사물함에 있는 책 모두 다 가져오고 나서야 누난 조용해졌다. 본인도 좀 너무했다고 생각한 건지 아니면 내가 오자마자 시끄럽던 집이 조용해져서 이제 잘 수 있어서인지는 모르지만 어찌 잘 넘겼다.


소소하게 기억에 남는 일로는 난 오렌지를 열심히 깎았다. 누나는 어느 순간 식욕이 없어서인지 밥을 잘 먹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항상 두통이랑 신경이 날카로웠던 것 같다. 그러던 중 그나마 제일 잘 먹는 게 오렌지라 가능하면 전날 밤에 깎아두거나 급하면 출근 전에 3~4개 깎아두면 다 먹곤 했다. 그래서 냉장고에 오렌지가 떨어질 일 없도록 미리 사둬서 채워 넣고 매일 깎았더니 자기 전에 항상 손에 오렌지 냄새가 났다.


시험을 끝낸 누나는 그동안 강하고 오랫동안 본인을 눌러온 억압에서 벗어나 홀가분해 보였고, 기분 좋다고 주변 사람과 이야기하는 모습을 보니 정신이 사나웠지만 그래도 보기는 좋았다. 고생한 만큼 좋은 결과가 나왔으면 하는 마음이며, 얼른 누나가 본가로 내려가서 다시 평온한 내 삶을 되찾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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