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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인 Mar 02. 2024

이번 생에 결혼은 글렀다

파혼이 나에게 미친 영향에 대하여

나는 양가 인사 후 웨딩촬영을 끝낸, 신혼집 셋팅도 끝난 대부분의 결혼준비가 되었던 시점에서 파투가 난 파혼이었다. 부케까지도 예약이 다 되었던 상태라 우스갯소리로 날 맞춰서 식장에 걸어들어가기만 하면 되겠다던 상태였다.


그런 결혼이 물거품, 아니 물? 연기?처럼 사라지고 나에게 남은 건 인류에 대한 불신과 미래불확실성 뿐이다. 물론 파혼이라는 것이 쌍방과실이라고 생각하고 나 또한 처음 겪는 결혼준비였기에 많은 것이 미흡했다고 느낀다. 상대방도 비슷한 입장일 수 있겠지만. 그럼에도 나는 내 입장에서 글을 써내려가야하니 그런 입장임을 양해해주셨으면 좋겠다.


사실 10일만에 끝났다던 연애는 아직 연이 남아 지금까지 어떻게 진행되어오고 있었다. 마음이 열릴라치면 닫아야하는 그런 시간들의 반복이지만 티끌이나마 느껴지는 외로움을 해소해줄 수 있다면 나는 이 관계에 내 시간의 일부는 투자할 가치가 있겠다 싶었다. 그런 시간들의 반복 속에 아까 그가 나에게 한 어떤 말로 나는 이 글을 시작하게 되었다.


오늘은 미처 그가 챙기지 못한 그의 어머님의 생신이라고 했다. 아직 우리의 관계도 정립하지 못한 상황에 나는 비혼이라고 밝혀뒀고, 봴 일이 있겠나 싶은 그런 거리의 인물이다. 그래서 축하 잘 해드리고 오라고 말을 건네며 통화를 이어가다가 어머님 본인의 미역국을 스스로 끓이신다기에 "아들 뒀다 뭐해. 미역국도 좀 끓여드리고 하지."라고 말한 내가 잘못이었을까. 그의 답변은 또 한 번 나를 뒷걸음치게 만들었다. "나중에는 지인(나)이가 끓여줄 건데 뭐." 귀를 의심해서 5번은 되물었다. 정말 잘못 들은거라 생각했는지 몇 번이고 같은 말을 반복하는 그에게 나는 사실 애정이 또 한 번 식었다.


나는 파혼을 겪기 전까지만 해도 남의 부모는 그렇게도 잘 챙기는 아이였다. 내 부모에게 못한 것까지 다 해줄 요량으로, 아니 억만배는 더 해줄 요량으로 나는 성심성의껏 딸같은 며느리가 되겠노라고 자처하고 나섰다. 그런 나를 그들은 좋아했었다. 부모님 모시고 상다리 부러지게 차려보겠다며 호기부리는 나를 좋아했었다. 그렇지만 이제 나는 그런 행동이 나에게 좋지않은 행동임을 안다. 그런 나에게 얼굴도 뵙지 못한 어머니의 미역국을 언젠가 끓일 것이라는 이야기를 하는 그에게 나는 아들도 끓이지 않는 미역국을 내가 끓이게 될 거란 말같지도 않은 얘기하지말라며 응수했다. 처음 있는 일이었다. 당황하는 그를 더이상 달래지도 않았다. 내가 잘못한 일이 아니니까.


적어도 내게 지난 파혼의 일은 나에게 맞고 틀린 기준을 세워준 것 같다. 아닌 건 아니라고 느끼고 말할 수 있게 해준 것 같다. 그런 의미에선 고마워야 할까. 많은 걸 남기고 간 일이지만 오늘로서 느낀 건 내가 한단계 성장하게 되었다는 건 확실하다. 고맙진 않다. 이렇게 성장해나가는 거겠거니 생각하며 오늘도 푹 자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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