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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인 Mar 01. 2024

제주로그 2024. 3. 1 14:02

세화해변 인근 공터에 주차하고 쓰는 글

지금은 제주여행 2일차.


#1

어제 18시에 느지막하게 도착해 어느 따뜻한 식당에 우연히 들러 저녁식사를 했다. 원래 가려던 횟집이 재료소진을 이유로 문을 닫아 그 식당으로부터 가장 가까운 음식점을 검색해 들어갔다. '여기에 식당이 있나?' 생각할 정도로 얌전히 구석진 자리에 놓여있던 식당 하나. 들어가니 손님은 없었고 다섯 테이블 정도의 작은 식당이었다. 배가 고팠던 참이라 뭐든 다 먹어치울 기세로 메뉴를 골랐다. 양심 가득한 사장님께서는 조심스럽게 말씀하셨다. "죄송하지만 다른 식당으로 가주시겠어요? 식사를 못 하신 것 같은데 저희 집엔 혼자 드시기엔 양이 많아서요." 메뉴를 검색하지않고 들어간 건 아니라 충분히 예상가능한 음식의 양이었다. 그래서 괜찮으니 고른 메뉴를 내어달라고 했고, 고마워하시며 사장님은 주방으로 들어가셨다. 가게의 인테리어나 작은 소품들, 메뉴 구성 어느 하나 마음에 들지 않는 구석이 없었다. 식사를 받아들었을 때는 더욱 더 좋았다. 제주까지 오느라 고생했다는 무언의 토닥임이 느껴졌을만큼. 그래서 식사를 마치고 나올 때 "사장님. 꼭 또 오겠습니다." 하고 인사를 드렸다. 이번 여행 중 한 번은 다시 갈 것이다.


#2

이번 여행은 '사진'이 큰 목적이었다. 그래서 제주 명소도 몇 군데 서치해놓은 곳이 있었고 제발 날씨만 따라주기를 기도했다. 그러나, 내 제주에서는 맑은 날씨를 경험한 일이 잘 없다. 기대는 안 했지만 날씨만 도와준다면 이번 여행은 더할 나위 없이 완벽할 거라 자신했다. 역시나. 어제는 도착부터 잠들 때까지 비가 왔고, 오늘은 차문이 안 열릴 정도로 바람이 분다. 강풍으로 파도는 높고 고대하던 '청굴물'은 멀리서 지켜볼 수 밖에 없음이 슬펐다. 흐린 날은 괜찮았지만 강풍은 내 맨발을 시리게 만들었다. 생각없이 크록스를 신고온 것이 나의 패착이었다. 이 겨울에 맨발 크록스라니. 나는 아직 청춘이다!


어찌저찌 15컷 정도의 필름을 소비했다. 꼭 담고싶은 풍경들만 필름카메라로 찍고 나머지 연습촬영은 휴대폰으로 한다. 이번 여행이 끝나면 포토북을 만드리라 다짐했다. 필름과 디지털이 한데 모인 포토북이라 생각만 해도 가슴 떨리는 일이다. 카메라를 가져오길 정말 잘했단 생각이 드는 순간은 작은 것 하나 놓치지 않게 만들 때다. 길을 그냥 걷는 것이 아니라 예쁜 건 모조리 필름에 담아가겠다 생각하면 요모조모 낯선 풍경이 잘도 보인다. 제주의 모든 순간을 사진으로 담겠다 생각하면 구석진 곳도 마다않고 가게된다. 그러다보면 어느새 현실에서 잠시 떠난 나를 만날 수 있다. 그 때가 너무 좋다. 빈 마음으로 여행을 즐길 수 있게 해주는 것이 참 감사하다.


#3

저 멀리 풍력발전기가 다수 돌아가고 나는 파도가 철썩이는 어느 방파제에 차를 세워두고 앉았다. 평소 시동만 켜둔 차를 좋아하지않아 주행할 일 없으면 시동을 끄고 앉아있는데 오늘은 시동을 켜두지 않으면 꽁꽁 얼어버릴 것 같아 엉뜨까지 야무지게 켜놓고 앉아있다. 여행 오면서 챙겨온 알랭드보통의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를 읽기 위해 세화해변 당근쥬스를 파는 가게에 가려고 했건만. 이번에도 또 내 검색력은 힘을 잃었다. '내부수리중'이라는 현수막이 걸려진 채 나를 반겨주었기 때문이었다.

레이를 빌려온 것을 잠시 후회하는 중이다. 차 안에 있는데 바깥 바람이 어느 방향으로 부는지 느껴지는 탓이다. 바람이 어마무시하다는 건 너무 잘 알겠지만 숙소로 돌아가기는 아쉬워 발길이 떨어지지않는다. 노래나 들으며 여유를 부린다. 이런 여유가 그리 나쁘지는 않다. 한량같은 삶이 내겐 적성에 맞나보다. 이따 숙소 들어가는 길에는 숙소에서 추천받은 수산마트에서 회를 사다가 들어갈 예정이다. 누군가 나에게 제주에서 계획을 물었을 때 "먹고 사진찍고 마음 편하기"라고 했었는데 나는 정말이지 완벽하게 실천 중인 것 같다. 혼자 제주에 온 것은 처음인데 오늘 아침부터 제주 한달살이, 제주 취업을 검색해본 나였다. 누군가와 왔을 때 느끼지 못했던 여유나 행복이 넘쳐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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