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마음으로 시작한 연애인지도 모르겠다. 막상 가졌던 마음은 가벼웠지만 또 어딘가 한 켠은 늘 무거웠다. 끊임없이 나를, 그리고 상대를 의심하고 그런 상태의 나를 미워했다. 경계를 풀어볼까 하다가도 또 바짝 곤두서있는 내 자신을 보았다. 사랑받고 싶다는 욕구를 인식한 이후라 그랬는지 달콤한 말들은 언제나 듣기에 좋았다.
그 사람도, 어쩌다 어떤 사람도 내게 전했듯이 결혼식을 한 것도, 상견례도 한 것도 아닌 상태에서 헤어진 것을 잘한 일이라 했고, 흠이 아니라고 했다. 왜 그걸 잊지 못하고 담고 있냐고 훌훌 털어버리라고도 했다. 그러나 파혼이라는 일의 잔해는 그런 객관적인 사실과는 별개로 내 안에 싱크홀 같은 존재로 남았다는 걸 이번 연애로 알 수 있었다.
내가 이렇게나 이별로 인해 힘든 감정을 갖는 것은 그 관계에서 내가 존재하지 않았던 것이 주된 원인이라고 생각한다. 타인에 맞춰보려 나를 지워내고 그를 덧씌웠다. 그러다 내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을 때 그는 떠나고 없었다. 이 헤어짐은 다 내 잘못이니 나 알아서 해결하라고 하며 다 팽개쳐두고 떠나갔다.
그렇게 한 이별 후에 나는 나를 다시 지어올리는 일에 치중해야만 했다. 무너지지않도록 작고 크게 다독이고 쓰다듬으며 나를 지키는 행위에 힘써야만 했다. 그러는 과정에서 다신 나를 잃지않겠다 다짐했었다. 그 다짐 속에는 울분도 있었고, 어쩐지 서글픔도 있었다.
그리고 최근에 내 마음을 다시 열어볼까 했던 시간들이 있었다. MBTI부터 생활패턴, 대체로 X와 비슷한 사고. 다른 거라고는 X와는 달리 말이라도 번지르르 포장할 줄 안다는 것일까. 다정함을 바랐었고 이제는 다정함을 더했으니 더 원할 건 없지 않을까 내심 기대를 했었는데 자꾸만 전과 같은 상황에 놓여질 때마다 무서워졌다. 그래서 사실 남몰래 나날이 마음이 식어갔다.
손을 잡은 상태에서 자신 쪽으로 당겨가다보니 내 손목이 꺾이게 됐다. 불편함을 느껴 "나 손목이 꺾였어."라고 하니 "이제 이런 것도 다 말하는 거야? 그런 사람인줄 몰랐네."라는 답이 돌아왔다. 내가 10일간 보여줬던 배려들을 어떻게 느꼈던 걸까. 조금 아깝게 느껴졌다. 아까워, 내 에너지. 내 손목이 꺾여도 그쯤은 참아야 마땅했던 걸까. 나는 스스로 호구같은 사람인 걸 인정 못하진 않지만 누군가 나에게 호구라고 느끼게 만드는 순간 관계가 어긋나는 것을 느낀다. 그리고 이것이 우리의 마지막 대면이 되었다.
헤어짐을 통보했을 때 그는 본인의 배려와 희생에 대해서 장문의 메세지로 설명하며 내 마음을 돌리기위해 애썼다. 애석하게도 그 노력은 통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 배려와 희생이 글씨가 못나도 편지를 써줬다던가, 나에게 좋아하는 마음을 표현하려 노력했다던가 하는 것들이라 썩 내키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게 그렇게 배려고 희생이었을까. 나는 잘 모르겠다. 약속시간 제시간에 맞춰 나온 적도 한 번 없었고, 그런 날이면 난 늘 그의 집 앞에서 기다리곤 했었다. 난 이게 배려고 희생이라고 생각지 않았지만 이제는 그렇게도 볼 수 있겠다 생각을 해보려고 한다.
나는 내가 너무 소중하다. 30대까지 살아오며 느낀지 얼마 되지않은 감정이라 아직 어색하지만 앞으로 나는 충분히 나를 더 아껴줄 수 있다. 그래서 나는 이번 연애를 끝냈다. 그리고 그 결단을 칭찬한다. 아직은 이성관계가 조심스러운 시기인 것 같아 또 한발짝 물러나 나를 돌아보는 시간을 만들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