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어릴 때부터 나는 어디서 온지도 모르는 '변화'에 대한 나의 강한 믿음이 있었다. 변하는 것은 계절이나 시간인지 알았지, 그 때 당시에 사람이 변한다는 것을 나는 특별한 사례라고 생각했었다. 어릴 때였으니까 생각했던 것이었겠지만 생각해보면 그 믿음은 내게 20대 초중반까지도 남아있었던 것 같다. 그래서 사람을 더 잘 믿었다. 하지만 슬프게도 20대 첫 연애였던 한 사람과 했던 '우린 돌고 돌아 결국 서로와 다시 만날 거야.'와 같은 헛된 약속들이 지켜질 거라고 생각했던 그 때의 나는 지금 여기 없다.
운동을 마치고 나오는 길에 나의 믿음이 왜 변했을까, 어떻게 변해왔을까 생각하다가 결국 나조차도 변했구나 하는 생각에 이르렀다. 세상엔 영원한 것이 없다는 것을 이제는 안다. 빅뱅의 노래가사에도 나오는 이 진리는 이제 진실에 가까운 말이라는 것을 알겠다. 나도 변하는데 다른 것이 변하지 않을 거라는 것은 내 욕심이자 헛된 기대이다.
아, 이 생각이 든 이유는 최근 만난 그 남자 때문인 것 같다. 다른 남자들과 나는 다르다, 넌 웃는 모습이 예쁘니까 계속 웃게만 해주고 싶다.. 숱한 연애사에서 몇 번이고 들어봤던 말들. 이 남자는 비디오테이플 되감았다 다시 재생한 것처럼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뻔한 멘트를 뱉는다. 그래서 나도 모르게 "똑같아. 뻔하다."라고 얘기를 해버렸다. 연애가 한 두 번도 아니고 똑같은 상황을 늘 똑같이 받아들이기란 내게 불가능한 일이다. 새로운듯 리액션을 해보려 하지만 그건 내게 가식처럼 느껴질 뿐이라 거부감이 든다.
아무튼 그런 상황들을 생각하다가 이제는 이런 말보다 사람의 진심이 느껴지는 순간들을 나 스스로 찾아낼 수 있는 작은 감각 같은게 생겼다고 생각했다. 물론 이것도 아직 미완의 상태라 삐끗하는 경우가 있겠지만 나는 이제 누군가를 나만큼 100% 믿지 않으니까 괜찮다. 나름의 필터링 기능이 생긴 것 같아서 나 좀 컸나? 하는 자만이 생긴다.
아, 물론 누군가 나에게 고운 말을 해준다고 해서 다 따지고 걸러 극히 예민하게 굴지는 않는다. 호의는 호의로 받아들이되, 그 호의에 내 에너지를 모두 쏟는 것이 아닐 뿐이다. 최근 만난 사람의 말도 내겐 상투적인 플러팅 멘트처럼 들리기는 했었지만 그렇게 해서라도 나에게 잘 보이고 싶어하고 관계를 발전시켜나가고싶다는 의지를 보인다는 것을 알기에 진심으로 성의를 다해 듣는다. 어른의 사랑이란 참 알아야할 게 많다. 온전히 내 모든 것을 내어주고, 그가 가득 주는 마음을 받아낼 수 없는 것처럼 느껴진다. 마냥 순진하진 못하더라도 마음만은 순수하게 전달하는 노력을 해봐야겠다. 사랑 참 어렵다. 사람도 참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