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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인 Feb 11. 2024

30대의 소화능력이란

부대끼는 위장을 진정시키려 산책을 한다. 새로운 기관에 부임해오고 모든 패턴들이 무너진 채로 지내다 보니 혼자만 오롯이 즐길 수 있는 내 시간이 사라졌었다. 다시 되찾아야겠지, 이제부터는.


오늘은 내가 기억하기로 태어나 처음으로 하루에 라면으로 연속 두 끼를 때웠다. 다른 이유는 아니고 오늘따라 '도시락'과 '사리곰탕면'이 당겼기 때문이다. 평소 소화가 원활하지 않다는 느낌을 받아 밀가루를 피하려는 편인데 오늘은 본능이 이끄는대로 하고 장기의 불협화음을 감수하려 했다. 역시 먹고보니 나는 밀가루와 맞지 않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식후도 아니고 식중에 말이다. 한라봉의 상큼함으로 느끼함을 씻어내보려 했지만 그마저도 부대낌을 느껴 나태한 나를 끌고 산책을 나섰다. 친오빠가 알려줬던 워킹 어플을 애용하지 않아 생긴 죄책감도 함께 달래기 위함이었다.


집 밖을 나서고 하늘을 올려다봤다. 역시 시골 촌구석이라 그런지 밤하늘에 별들이 제자리를 찾아 콕콕 박혀있다. 흐드러지듯 쏟아지는 별들은 아니지만 제법 정갈하게 자리잡은 모습들이 좋다. 가로로 세 개가 나란히 박혀있는 별은 어느 별자리일까 관심을 가져보기도 한다.


최근 일주일은 감정기복이 너무나도 심해 그런 나를 내가 감당하지 못했는데 이 곳에 온 이유까지 내가 잊은 것 같아 꽤 많이 혼란스러웠던 한 주였다. 지난 달 미리 신청해둔 새벽 6시 반의 전화영어 프로그램만 아니었다면 완벽히 무너진 삶을 살았을 것이다. 결석을 하게 되면 사내 교육 수강이 불가능해져 강제성을 띄기 때문에 그 아침에도 전화를 받지 않을 수가 없었다.


방황을 하면서 가장 늘어난 건 도파민 중독이었다. 평소 잘 쓰지도 않던 OTT 어플을 두 달 전부터 끊어두었는데 그 덕분에 나는 5개 이상의 드라마를 정주행해왔다. 1편에 1시간만 잡아도 100시간 이상을 태블릿이나 폰만 부여잡고 있는 꼴이었다. 음식물쓰레기를 버릴 겸 집 밖으로 나오기 전까지 내 눈은 계속해서 영상과 숏폼에 미쳐있었다. 우선 그것부터 끊어보려 한다. 발령 전부터 인사를 한다는 핑계로 채워온 배도 이제는 꺼뜨릴 때가 되었다. 몸이 무거워짐을 느꼈다. 3월 말에 있을 5km 마라톤도 준비를 해야 하니까.


사실 정신없는 시간을 보내며 내가 성장만을 하길 바랐던 연초의 내가 있었기 때문에 올해는 아주 바쁜 한해여야 한다. 그럼에도 드라마와 숏폼, 술에 많은 시간을 쏟았던 지금까지의 올해를 반성한다. 대학교도 마쳐야 하고, 자격증, 마라톤, 회사업무, 내 재정관 확립, 부수입 창출.. 많은 것들이 줄을 서서 내 손을 바라보고 있는 듯한 시점에 방황하고 뒹굴고 있는 나의 시간 따위는 애초에 계획에 없었던 것이다. 다시 맑은 정신, 건강한 신체를 되찾아야겠다. 나에게 반추와 반성은 크나큰 원동력이 되어준다. 발 시린 어느 날 밤 맨발의 크록스는 비장하게 걷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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