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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인 Mar 20. 2023

2023년 3월 20일

아침부터 예민보스 두둥등장!


14층에 엘리베이터가 섰다. 가뜩이나 젖은 머리에 예민해져 있는데 엘리베이터가 멈춰 서다니. 사람이 없는데 선건가? 하는 생각과 동시에 한 여자가 탔다. 뭐야, 빨리빨리 타지 않고. 빨리 차에 가서 시동을 걸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1층에 도착한 엘리베이터, 발걸음을 재촉했다. 14층의 그 여자는 바쁜 내 걸음을 일부러라도 막는 듯이 기가 막히게 내 앞을 종종걸음으로 걸어갔다. 오른쪽으로 비껴갈라치면 오른쪽으로, 왼쪽으로 가면 또 왼쪽으로. 뭐하자는 건가 싶었다. 틈새가 보여 잰걸음으로 앞서나갔다. 그 때, ‘주차 어디 했지?’ 하는 말. 내 뒷통수에 스몄다. 정신이 없는 아주머니였다.




아침부터 정성스럽지만 투박하게 준비해온 맛보다는 영양이 가득한 도시락을 잘만 먹고 남자친구에게 어리광을 부렸다. 내 입장에서야 어리광이지만 상대가 느끼기에 불쾌하기 충분한. 전화를 끊고 흘러나오는 ‘뉴진스의 omg’에 귀가 간다. 백 번은 넘게 들었을 이 노래의 가사가 이제야 들린다. ‘난 행운아야 정말로.’ 한 문장이 눈과 귀에 꽂혔다. 그래, 내가 더 잘해야하는데 왜 이리도 못나게 굴까. 아량 넓은 남자친구는 화가 난다면서도 웃으며 내 무례를 못 본 체 해주려는 듯 했다. 나는 남자친구에게 뭘 바라고 있는 걸까? 차라리 물질이면 더 깔끔했을 계산이, 마음을 바라니 더 복잡해진 것 같다. 오늘은 남자친구가 휴무날이라 헬스장에 도착해있었는데 내 점심시간동안 놀아달라 떼를 쓰다 또 어른인 척하는 내 자아가 그 척마저 하질 못 하고 어른스럽게 어리광을 부려버린 것이다. 이성은 ‘운동한다는 남자친구를 이제 그만 놓아주고 나도 산책을 마저 즐기자’ 했으나 내 마음 속 대주주인 감성은 ‘나랑 놀아줘! 나랑 놀아줘!!! 보고싶은 것도 참고 있는데 왜 전화로라도 안 놀아줘!!!!!’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게 사랑이라고 표현할 수 있을까? 전화를 끊고 남은 15분 동안 후회와 자책을 반복했다. 그럼에도 여전히 어린 나만 남았다. 그저 퇴근을 서둘러 보고싶다는 생각만 강해진 것 같다. 어른스러운 그를 보고싶다.




왜 갑자기 기분이 바닥을 치는지 궁금해졌다,라고 쓰면서 내심 이 감정기복의 원인이 될만한 핑곗거리를 찾고 싶다고 생각이 들었다. 회사에서 내내 저기압이다. 아침부터 이유 모를 예민한 감정들이 소용돌이치는걸 느꼈다. 이유가 없다. 어제까지만 해도 끈적한 눈빛으로 서로의 사랑을 확인하고 예쁜 말만 골라 쏟아내며 행복했다. 관계에도, 상황에도, 나 자체에도 문제가 될만한 것이 없었기에 자연스레 생리일이 다가오나? 했다. 2주나 남은 생리일. 그럼 대체 뭔가 ‘감정기복’을 검색했다. 경계성 성격장애? 성장과정에서 부정적인 영향을 받으면 생길 수 있다고 한다. 오, 나 경계성 성격장애인가? 이제 하다못해 성격에 장애가 생기나. 조금 더 검색하다보니 ‘배란기 우울’이라는 키워드가 보였다. 그래, 이번 감정이 지랄맞은 건 배란기 때문이다! 생리주기 어플을 들어가보니 오늘이 배란기 첫째 날이었다. 탄수화물을 당겨하는 것도, 우울이 심해지는 것도 호르몬 때문인 듯 하니 정신 차리고 이 호르몬의 장난질을 물리쳐야겠다. 참 지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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