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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인 Jun 25. 2023

복잡할 때는 역시 브런치

결혼은 어른이 되기 위한 과정일까

결혼을 하기가 너무 어렵다.

마음이 복잡하고 슬프고 답답하다.


오롯이 결혼식만 생각해도 고민할 것이 100개가 넘는데, 이제는 내 가족을 넘어서 남자친구의 가족, 같이 살 준비를 위한 결정들, 그와는 별개로 잔존하는 내가 먹고살 걱정들을 해야 한다.


어느 그 누구도 대신할 수 없는 선택지들이 줄줄이다. 사랑하는 마음이 아니었다면 진작 그만뒀을 일. 그나마 '사랑'이라는 마음이 있어 다행이라 해야할까.


흔히들 얘기하는 스드메를 포함한 전반적인 결혼준비는 순조로운 편이다.

그 속에서 힘듦은 그저 많은 선택지가 쏟아지는 것에 가한 버거움일뿐.


결혼을 하겠다고 마음을 먹은 후 우리는 양가 부모님께 인사를 드렸다. 우리 부모님은 처음부터 비협조적이셨고, 다행히도 남자친구 부모님은 매우 협조적이셨다.


오늘은 그 중 우리 부모님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 한다. 내가 브런치에 글을 쓰기 시작한 것도 부모님에게 팔할이상의 지분이 있다. 대나무숲같은 느낌으로 써내린달까.


남자친구를 인사시키기에도 침묵과 회피를 시전하신 덕분에 꽤 마음고생을 했었는데 인사 후에도 어떻다 저떻다 말은 없고 결혼을 하겠다고는 말씀드려놨으니 우리는 할 일을 하자 싶어 조급한 마음에 웨딩홀부터 잡았다. 계약을 하면서 불편한 마음은 있었지만 나는 내 살 길을 챙겨나가야하지 않겠나. 가타부타 말이 없다고 손 놓고 있어서는 안 될 일이니까. 누가 내 결혼을 만들어주는 것도 아니고.


어쨌든 나름 넉넉하게 1년 후의 웨딩홀을 잡고 오늘은 통보하는 날이었다. 서로의 의견을 주고받는 온전한 대화를 해본 적이 없는 가족 분위기를 알기에 '분위기에 휩쓸려 화만 내지말자'는 마음으로 요약지까지 만들어갔다. 웨딩홀 정보, 예산내용, 부모님께서 확인해주실 사항 등... 그것만 던지고와도 충분할 정도로 적었다.


하...

역시나, 화부터 내셨다.


내 멋대로 회사를 정할 때부터 알아봤다느니,(내가 다닐 회사를 내가 정하지 그럼..) 항상 마음대로 한다느니, 부모를 개무시한다느니.. 웨딩홀 잡은 거 말고는 그리 마음대로 한 것도 없는 것 같은데 화를 내셨다.


생각 못한 바는 아니니 듣고만 있었다. 예비시부모님께서 진작 입장정리를 해주신 덕분에 그 분들의 입장 또한 전해드렸다. 우리가 부담이 돼서 요청드렸던 '예단예물 생략'에 대한 내용이었는데, 또 화를 내셨다. 결정된 사항 아무 것도 없고 우리도 우리 의견을 전달하면 된다 하니 이미 다 결정된 거 상견례도 필요없다고.


나도 어디서 꿀리지 않는 보수적 인간인지라, 결혼에 대한 전통을 인터넷으로나마 공부했고 어른들의 입장도 고려를 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결혼에 로망이 없어서 결혼식을 생략하려다 남자친구 쪽은 개혼이니 작게라도 하자는 마음이고 (엄빠께는 말씀 안 드렸지만) 하객이 많을 남자친구 쪽에 지역을 맞춰준 것이고, 뭐니뭐니 해도 이건 우리 결혼이라 생각하다보니 결국 나만 행복하면 될 결혼이 아닌가 하는 의식의 흐름으로 가버렸다는 이야기다..(보수에서 그라데이션 개화됨)


남자친구가 별로고, 니가 아깝고, 남자가 바람필 사주고, 내가 죽을 사주고.. 지금도 머리가 지끈지끈하다. 걱정과 악담이 뒤섞인 그 얘기를 들으며 다 걱정이겠거니 했다. 부모님의 불참까지도 대비할 정도로 가족 내 불화가 있는 편이라 그래도 참석만 해주신다면 감사할 따름이니까.


결혼이 이렇게 어려울 일인가.


얘기를 듣는데 자꾸만 눈물이 났다. 죄송스러운 마음과 억울한 마음과 좋은 일을 이렇게밖에 해내지 못하는 여러 환경들이 밉고 내가 지금 누굴 위한 결혼을 하려는 걸까 하는 답답한 마음들이 한데 뒤섞여 눈물로 흘렀다

 돈이 없는 집을 무시한 적도 없다. 내가 돈이 없는 걸 아쉬워할 뿐 부모님은 다 빼고 계산기를 두드리는데도 부모님 자격지심이신건지 무시한다는 느낌을 받으시나보다.


나는 그저 남자친구랑 알콩달콩 행복하게 살고싶었다. 내 기둥이 되어주는 고마운 사람과 함께 살아나가보고 싶었는데 이런 순간에도 가족이 힘들다. 오늘은 자취방으로 돌아가면 맥주 한 캔 하고 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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