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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인 Jul 03. 2023

어머니와의 대화를 곱씹어보다

일상생활이 불가능할 정도로 최근에 한 어머니와의 대화는 나를 힘들게 만들었다. 그 일이 있고 시간이 지날수록 우리의 인연이 다해감을 느끼지만 여전히 이 기로에서 내가 어떻게 해야하는지, 어떤 방식의 엔딩으로 만들어야하는지는 모르겠다. 그저 자꾸만 그녀를 어머니로 인식하고 그녀가 원하는대로 상황을 이해해보려는 내 자신이 싫어 기록으로나마 남겨두고 나에게 가끔 냉수를 끼얹는 용도로 활용하고 싶다.


단순한 소개를 먼저 하자면, 지금의 어머니는 새어머니다. 내가 7살쯤 아버지와 재혼을 하셨고 20년 넘게 가족이 되지 못하고 있는 중이다. 이성적으로는 남편의 전처가 낳은 자식이라서 그런 걸수도 있겠거니 하지만 나도 사람인지라 그 상황 속에서 허우적거릴 때는 내가 주인공이기에 그렇게 마음 좋은 소리를 하지는 못한다. 아버지는 재혼과 동시에 실직하며 병을 얻어 사회생활을 거의 하지않으시며 지금껏 어머니에게 기생하여 살아오셨다. 그런 이유로 항상 아버지의 사랑은 어머니 몰래 어디선가 툭 던져질 뿐이었다. (그걸 사랑이라고 불러야할지는 조금 애매한가) 그래서 아마 어머니로부터 내가 도망을 치게 된다하더라도 아버지는 이미 그렇게 편안한 삶이라 뒤따라와 나를 잡지는 않을 것 같다. 이 말은, 나는 기억이 시작될 때부터 지금까지 부모님이 없는 것과 마찬가지였는 말이다.


처음부터 지내온 이야기를 풀어내기 위해서는 많은 시간이 필요하겠지만, 나는 당장 지금 나의 답답함을 풀고 싶은 마음이 커 최근의 일부터 풀어보려한다. 앞선 글에도 썼다시피 나는 결혼을 준비하고 있다. 시댁에서는 황송한 대접을 해주시며  팔 벌려 환영해주시지만 정작 내 친가에선 이유 모를 반대를 하고 있다. 그런데 그 반대라는 것이 너무나도 비논리적이라 내 머릿속을 떠나지 못하는 것 같다. 이해를 해보려다가도 이미 받아버린 상처가 욱신대는 바람에 정신을 차렸다가 또 그럴 수도 있나 하고 어른인 척 성숙한 척 이런저런 생각을 또 해본다.


대화의 일부를 정리해보겠다.


대화라는 걸 해본 적이 없는 가족이라 늘 부모님은 무슨 일을 하려거든 부모님과 상의를 하라시지만 무슨 얘기만 꺼내면 일방적인 대화 흐름, 유연하지 못한 사고, 감정적으로 치닫는 엔딩까지 너무나도 뻔한 전개라 나는 지레 마음 속에 성벽을 쌓고 대포를 준비하고 병사들을 방어태세로 단단히 준비시킨 상태로 대화의 시작을 알렸다.


"엄마. 결혼 말이야.."


두 달 전, 지금 남자친구와 결혼하고싶다는 말을 꺼냈을 때 엄마의 반응은 회피와 무시였다. 그렇기에 '그래. 이번에도 무시하겠지.'했다. 역시나. 냅다 대포를 쏴버렸다.


"웨딩홀 잡았다."


내년 6월쯤 결혼을 하겠다고 인사를 드렸고, "천천히 준비해봐라"하며 그 자리를 파했고 두 달동안 연락이 없었으니 나는 나대로 할 것을 했을 뿐. 어느 부분이 분노를 일으켰는지는 모르겠지만 그 때부터 내 마음에 난도질은 시작됐다.


"그래. 그럴줄 알았다. 이렇게 할 줄 알았어. 내가 천천히 보면서 사람을 알아보라고 했더니 웨딩홀을 잡았다고 하네. 니가 결혼 얘기 꺼낼 때 내가 싫다고 하면 생각해본다고 할 때부터 알아봤다. 그 때부터 니는 니 마음대로 할 생각을 하고 있었던 거야."


결혼이란 게 작은 일은 아니기에 처음으로 부모님에게 상의를 해보려 시도를 했고, 엄마가 마음에 안 들면 고민해보겠다고 했다. 그게 왜 내 마음대로 하겠다는 거지? 인사를 하고도 두 달동안 연락도 없었으면서?


"걔는 바람날 사주다. 니는 걔랑 결혼하면 죽는 사주고. 한 번 결혼해봐라. 내 말이 틀린지. 걔 운동하는 것도 그 에너지를 니가 다 받아낼 수 있나? 나는 그것도 마음에 안 들더라. 나는 처음부터 걔가 아니다 싶었다. 그래서 아무 말 안 하고 지켜보고 있는데 웨딩홀을 잡아와? 부모를 개무시해도 유분수지. 나는 이 결혼 반대하고 싶다."


나는 사주 따위 믿지 않기에 귓등으로 듣고 흘렸었는데 곱씹을수록 내 오빠에게도 같은 말을 하면서 결혼식 전날 악담을 퍼부었던게 떠오르면서 같은 레퍼토리인가 싶었다. 그렇게 따지면 이 세상에 안 죽는 사람 어딨고 100% 잘 맞는 커플은 어딨나.


"뭐? 유행하는 신발? 내가 신발 꼴이 희한하길래 그건 무슨 신발이냐 물으니 니 남자친구가 유행하는 신발이라더라. 어디 부모님한테 첫 인사 오면서 그 따위 신발을 신고 와. 유행하는 신발 좋아하네."


남자친구가 평소 좋아하는 로퍼 스타일의 검정 가죽 단화였다. 앞이 둥글긴 하지만 운동화도 아니고 샌들도 아닌데 이 신발을 보자마자 얘는 아니다 싶었다는 게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았다.


"결혼식을 신랑 쪽에서 하면 우리 쪽에 버스 보내주고, 홀 대관료도 그 쪽에서 다 내고 그래야 되는 거다. 예단예물을 너희가 없애고 싶다고 없애는 게 아니다."


남자친구를 인사시켜드렸던 그 날 엄마가 남자친구에게 한 유일한 한 마디는 "나는 지원해줄 것도 없고 결혼 생활이 그리 녹록치 않을 거다. 알아서 잘 해봐라."였다. 나 또한 집에서 지원을 바란 적이 없으며 부디 불화없이 결혼식에 앉아만 있어주길 바랄 뿐이었는데 시댁과 내가 다 정리해둔 예물예단의 문제마저 새로 얘기를 하자는 것이다. 갑자기? 형편도 안 되고 굳이 그럴 필요도 없는 문제를 왜 키우는 걸까. 속이 답답해졌다. 잘 정리해서 진행하면 하면 되겠다 싶었던 마음이 타인에 의해 흩뿌려졌다. 물론 예를 모르는 건 아니지만 현실적으로 부담이 더 가중되어 막막해졌다.


여러 얘기를 쏟아낸 후에 엄마의 마무리 멘트는 "니가 아까워서 그러지. 시집 가면 고생할 거 뻔히 아는데. 고생하지말라고 그러는 거지."였다. 이것도 20년 넘은 레퍼토리다. 상처란 상처는 다 주고 마무리는 다 너 잘 되라고 그랬다 하신다. 여기에 반박하면 나만 나쁜 사람 되는 거고.


어머니의 악담 속에 중간중간 아버지의 의미 없는 "개혼이고 그러면 상대 쪽에서 할 수도 있지."라던가 "그 집이 어디라고?"라던가 하는 말들은 "저 일에 관심 갖지 마소. 뭐가 그렇게 궁금해."하는 엄마의 말에 다 묻히고 결국 웨딩홀 하나 잡았다고 얘기 꺼내고 흠씬 두들겨 맞고 눈물만 뚝뚝 흘리다 돌아온 것이다.


과연 엄마의 아들이 결혼을 하겠다고 웨딩홀을 잡아와도 이런 반응일까. 글쎄다. 오히려 그 날로 잔칫날일걸. 엄마의 딸이 결혼하겠다고 남자를 데려오면 질문 하나 안 하고 애꿎은 김치 얘기만 할까. 글쎄다.


점점 혼주석이 사라져가는 내 결혼식을 상상하며 차라리 집에서 나를 내쫓아주기를 바라고 있을 뿐이다. 그만 상처받고 기분 좋게 결혼을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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