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지인 Sep 11. 2023

얼마만에 혼술인지, 하며 쓰는 글

기본 제공되는 눅눅해진 과자가 입 안에서 으그즉 씹힌다. 음식 맛을 리셋하기로는 이만한 것이 없다.


결혼 준비 과정에서 발버둥쳐도 여전한 나의 과중한 역할들, 내 생각이라곤 1도 안 할 부모님의 의중이 궁금한 나, 전세 계약기간 만료로 짐을 신혼집에 일찍이 옮기며 갈 곳 없어진 상황, 너무나도 안락하게 꾸며져버린 편도 2시간 거리의 신혼집에서 출퇴근 해아하나 하는 나의 고민...


여러 가지 고민에 부딪혀 과부하가 왔다는 핑계로 냉장고, 세탁기 당근 거래를 마치고 집 앞 상가 막걸리집에 왔다. 혼자. 남의 편이라 남편인지 내 편이 언제 될지 모르는 예비 남편님의 공감실패로 나는 혼자 맞서기로 했다. 어차피 이건 다 내 문제니까.


술집에 앉아 부추전, 계란말이에 소주 하나, 맥주 하나를 시켰다. 앉고 보니 나는 또 회피를 하려 했구나, 느꼈다. 그럼에도 이것들이 아니면 저 폐허 같은 집에서 하룻밤 자기가 겁나 아니 마실 수가 없었다. 물론 처음은 맥주 한 잔에 그치려고 했지만.


패기롭게 한 잔 콸콸 따라 마시고보니 외로움이 올라왔다. 내가 사랑하는 언니 둘에게 메세지를 보내본다. 보고싶다. 외롭다. 한 명은 인천상륙작전 중이라 안 되고, 한 명은 1시간 15분의 거리를 지금 내려오는 중이다. 그래서 글을 쓴다. 혼자 다 먹어버리면 잠든 나만 보게될 것 같아서.


미안하면서도 고맙고, 묵직한 책임감마저 느껴진다. 어떻게 갚아야 하나부터 떠올렸다. 손을 꼬옥 잡고 자자는 언니의 말이 오늘은 이렇게 또 내 하루를 흘러가게 만드는 것 같다. 너무나도 감사한 밤. 이거면 됐다. 덕분에 홀로 울지 않을 수 있게 되어 안도가 된다.


작가의 이전글 우리 조금 더 서로를 향하면 안 될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