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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인 Nov 12. 2023

파혼 2일차, 연애 1주년

밤새 잠을 설쳤다. 큰 방 침대, 거실 쇼파를 못 쓰니 공부방 한 켠에 홑겹이불을 깔고 누운 탓일까 찬 바닥에 깨고, 보일러를 켠 더운 바닥에 깨고, 딱딱한 바닥에 깨고, 등에 거슬리는 이불자락에 깨고, 밝아오는 창에 깨고, 그가 퇴근하는 도어락 소리에 깨고, 안방 문을 닫는 소리에 완전히 깨었다.


내심 한 번 들여다보나, 하는 착각을 했다. 맨 바닥에 자는 나를 뻔히 알면서 궁금해할 줄 알았다. 그 또한 착각이다.


어젯밤 근본적인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상태로 나를 붙잡기에 나는 그를 밀어내었다. 이렇게 좋다는 감정만 가지고 다시 혼란의 상황에 빠지기 싫었다. 그래서 다독이면서도 냉정을 유지했다. 그리고는 안방에 누워 그의 출근시간만을 기다렸다. 참 바보같게도 근하면서 얼굴을 비추면 모르는 척 넘어가볼까 하는 마음이 들었었다. 그럴 리는 없었다. 출근시간쯤 거실에 나갔을 때는 이미 불이 꺼진 어두운 공기만이 남아있었다.


그리고 나는 그가 퇴근한 오전 6시를 지나 아침 7시 뻔뻔하게도 안방 침대 한구석에 누웠다. 이런 와중에도 애정결핍인가. 그가 잠결에라도 한 번 안아주면 그냥 없던 일로 만들 수 있을 줄 알았는데 그는 잠이 든 상태에도 단호했다. 그러면서 "나 담배폈어."라고 말한다. 연애 초기에 끊은 담배를 연애가 끝나가는 시점에 다시 태우나보다. 그만큼 속상한 거겠지. 슬쩍 등지고 누웠다가 이제는 희망이 없겠다, 더이상 돌아갈 수가 없겠다 하며 다시 공부방 한 켠에 몸을 뉘였다.


그러다 회사 부고 카톡이 와 우연히 카톡 대화창 목록을 보는데 상단에 있던 그의 카톡 왼쪽에 프로필 사진이 사라져있었다. 왜인지 모르겠지만 이전 싸움에도 변동 없던 그의 카톡 프로필이 사라진 걸 보니 진짜 이별이 실감이 났다. 이제는 정말 돌이킬 수 없겠구나. 마음이 아려옴을 느꼈다. 내심 가전, 가구를 핑계로 우리 관계를 어쩔 수 있다고 생각한 건지. 어지러웠다.


지금은 거실 쇼파에 누워 인근 지역의 가구매입업체에 컨택을 했다. 그가 그의 일을 한 것처럼 나도 내 일을 해야겠지. 이 많은 짐을 이고 살 수 없으니 처리가 우선인 것 같다. 이 가전, 가구들을 처리할 때까지는 사용하지 말아달라고 선을 그어야하는 걸까. 그럼 너무 옹졸한가. 내가 없는 혼수가전들을 그가 혼자 사용할 권리는 있는 걸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알람이 울린다.


"00님과 1주년입니다."


디데이 어플에서 친절히 우리의 1주년을 알려준다. 계약을 한 것도 아닌데 이렇게나 깔끔한 기간일 수가. 1년의 시간 참 다사다난했다. 그 후폭풍이 더 길겠지만 이 또한 받아들여야할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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