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퇴근하고 두 시간을 달려 신혼집에 도착했다. 몸살 기운이 있었고, 어느 때보다 멀게만 느껴지는 퇴근길이었다. 평소처럼 노래를 흥얼거리다 남자친구와 통화를 했다. 그러다 우리가 맛있게 먹었던 식당이 생각나 그 곳에서 저녁을 먹자고 했다. 오픈런을 해야될 것 같은 식당이라 도착하면 바로 이 차를 타고 가자했고, 내가 신혼집 앞에 도착하니 그가 마중나와있었다. 그리고 우리는 맛있게 식사를 했다. 다만, 전과 달리 이번에는 술을 시켜보자고 했다. 당일 근무가 있던 남자친구는 운전을 해주기로 했고 감사하게 나는 맛있는 제육볶음과 술을 곁들일 수 있었다. 거기까진 좋았다.
식사를 하고 일어나면서 '내가 서있으면 계산을 할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최근 데이트 때 돈을 많이 쓴 것도 있었고 왠지 모를 불공평 같은게 느껴져서 한 번 볼까 싶었다. 자리에서 일어나 스트레칭(?) 비슷한 걸 한다. 내가 계산대와는 가까웠기에 그냥, 바로 계산을 했다. 그런데 그 모습을 보고난 후로 내내 찝찝했다. 뭐지? 의심에서 확신으로 바뀌는 듯한 느낌. 진짜 계산하기 싫었던 건가? 에이. 아니겠지. 이게 뭐라고. 그런데 전부터 왜 자연스럽게 이렇게 흘러가지?
생각이 많아짐과 동시에 내 표정은 우울해졌다. 말수도 적어졌으니 그도 이런 공기를 느꼈겠지. 그리고 이런 나의 생각하는 시간을 남자친구는 내내 못견뎌하기도 했다. 이전의 연애들과 다르게 나는 내 감정을 추스리고 최대한 이성적으로 접근하려 했던 행동들이었는데, 항상 그 시간이 지나고나면 의도와 달리 정말 감정이 쏙 빠지고 이성만 남은 채로 그 상황을 비판했기 때문이다. 역시나, 남자친구는 무슨 생각을 하냐며 나에게 이야기를 걸어왔다. "언제부터인가 내가 하는 계산을 너무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것 같아. 그리고 거기서 손해를 보지않으려는 모습이 보이고 나는 너무 서운해."라고 최대한 정리된 말로 내 감정을 알려주었다.
별안간 그는 화를 내었다. "내가??? 언제??? 그렇게 따지면 손해는 나도 손해야!"
참고로 얼마 전까지 내 힘듦을 토로할 때 "나도 힘들다"라는 말만 하지 말아달라고 부탁했었다. 아니 강요였을까. 내가 무슨 말만 하면 나도 그래, 나는 더 그래라는 식으로 대화를 풀어가기에 숨이 턱턱 막혀왔었다. 그래서 그의 말을 듣는데 역시나...하며 한숨이 쉬어졌다. 싸움의 시작이었다.
그렇게 한참을 서로의 입장만 얘기를 하다 집에 와서 피곤함에 대화를 회피했는데 그는 빨랫감을 세탁기에 넣고 있는 내 옆에서 답을 보챘다. "뭐가 그렇게 손핸데? 뭐가 그렇게 손해 본 거 같은데?"라고. 그리고 술만 먹으면 꼭 싸우고, 늘 나는 내 생각만 한다고 얘기를 했다. 얼마 전에 그가 나에게 피해의식 있냐고 물었던 것도 생각이 나네.
어쨌든 그리하여 내가 손해본다고 생각하게 된 풀스토리를 다 끄집어냈다. 단편적인 부분만이 아니라 스토리여서 놀란 것 같기도 하고. 모르겠다. 그런데 말을 하면 할수록 서로 손해만 보는 일을 왜 하고 있는지, 단지 '사랑'만 빠지면 진작 갈라섰을 일을 우리는 이렇게나 진지하게 붙잡고 있는지 모를 일이었다. 감정이 공유되지않고 각자 입장만 지켜내는 우리가 과연 부부가 될 자격이 있기는 한가 싶고.
대화의 끄트머리에 내 말이 다 맞다 하면서도 남자친구는 신혼 때는 원래 이렇게 싸우는 거라 한다. 하지만 나는 신혼이라는 이유로 그 모든 것을 짊어지고 불합리하다고 생각하는 것들을 못 본 체 할 수가 없다. 이런게 신혼이라면 발도 안 들였을텐데. 모든 걸 다 내려놓고나니 2천만원짜리 혼수들만 눈 앞에 스친다. 저것들 다 우짤꼬... 위약금은 또 어쩌고. 하지만 그 생각들로 차마 내 남은 인생을 털어먹게 둘 수는 없기에 나는 단호히 끝을 내야만 한다. 너무 지치는 인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