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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인 Nov 06. 2023

이 증상을 뭐라고 정의할 수 있을까요?

인생노잼시기? 번아웃?

내 위태로운 삶에서 대격동의 시기는 드물지 않았다. 거의 평생을 방황했다고 자신할 수 있을만큼 내 많은 시간을 세상에 중심잡기위해 썼다. 20살 가정에서 사회로 도망쳐오면서부터 30대 초반인 지금까지 아슬아슬하게나마 타인에게 피해 안 주려, 내 밥값하려 노력하며 그런 대로 사회구성원 중 일부로 살아오기 바빴다.


그리고 사실 작년 겨울에도 비슷한 글을 썼었다. 업무를 하며 생긴 번아웃에 관한 글이었는데 이번에는 그와 조금은 결이 다르게 혼이 나가버렸다. 지금은 인사발령까지 고려해야하는 상황이라 그런지 한국 사회에 대한 불만으로까지 부정적인 감정이 확대되어 이민까지 고려하게 됐다.


나는 나름대로 책임감이 많은 사람이라고 자부한다. 소득없는 책임감이라 늘 일이 나에게 몰리는 상황을 자처하게 했지만 그런 상황은 나에게 사회구성원으로서의 정체성을 갖게 하는 듯 했고 그에 만족하며 지내고자 노력했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보상의 불균형에 대해 자각하기 시작하면서 나도 이런 나의 책임감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된 것 같다.


'왜 나만 이러고 있지?'


나보다 소득이 훨씬 더 많은 선배 늦은 밤 야근을 하는 나게 일을 다 던져두고 옆에서 야근수당을 챙기기위해 이어폰을 꽂은 채로 쉬는데, 기간제 땜빵으로 들어온 내가 기본급 받으며 어떻게든 전임자의 자리를 채우려 평일 주말 없이 뛰어다닐 때 나에게 본인의 일을 떠넘기려는 6급 군무원도 있는데.. 나는 왜 항상 내 자리에서 그렇게나 일을 열심히 려 아등바등댔을까.


그리고 우여곡절 끝에 입사한 이 곳에도 큰 차이는 없었다. 개인사정으로 대학까지 가지 못하고 고졸 전형으로 운좋게 공기업에 입사한 내가 지금 느끼기엔 '가성비 직원'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저렴한 인건비로 대졸급의 일을 하는. 리 회사는 실무에 발령받고나면 고졸이나 대졸이 크게 다르지 않은 일을 한다. 본사 정도는 가야 직급별로 주어지는 일이 달라질 수 있겠지만 본사 외 기관에서는 거의 다를 바가 없다. 그래서일까. 가성비 직원인 나는 지역본부에서 나를 갈아넣으며 열심히 일하다가 결혼 때문에 본사로 가려니 본사에는 고졸 자리가 몇 개가 없다고 한다. 누군가(대졸)는 그게 의미 없다고 하고, 누군가(고졸)는 유리천장이 분명 존재한다고 했다. 그래서 내가 본사로 가려면 소위 말하는 빽을 써야된다는데 나는 내가 본사로 가기 위해 인맥까지 동원할 생각이 없다. 고작 고졸따리가 자리 하나 옮기려고 누굴 끌여들이는 것 자체가 우습게 느껴졌다. 여기서 시스템에 대한 당혹스러움을 느꼈다. 내 인맥의 파워에 따라 내 자리가 정해진다니. 공정까지도 바라지 않았다.


어찌 됐든 회사의 제도가 그러하다니 따르게는 될테고, 엉망진창인 인사를 뒤로 하고서라도 현실로 돌아오면 올해 1월 내가 겪었던 그 시기를 또 겪어야만 이 자리를 떠날 수 있다는 사실이 나를 숨막히게 만들었다. 다행히 지금 업무 담당자는 바뀐 상태인데, 그럼에도 내가 쏙 빠질 수는 없는 상황이기에 여전히 그 굴레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느낌이 든다.


그런데 어떤 이는 내가 본사를 지원하면 내가 손떨려가며 하던 그 일을 또 하게 될 것 같다고 했다. 같은 일이지만 스케일은 다르다. 내가 300건에 호흡곤란이 왔었는데 거긴 3,000건이라고 한다. 겁이 났다. 나도 모르게 뒷걸음질이 쳐졌다. 10년 넘게 몸담은 회계 업무를 이제는 하지 못할 것 같다는 생각에 나는 길을 잃었다.


지금 나는 갈림길에 서있다. 여기서 빛을 잃고 산다면 또 그건 그런대로 살아지겠지. 하지만 내가 발길을 옮기고 싶은 곳이 있다면 과감히 옮길테다. 그게 한국이든 미국이든, 현실도피든 아니든. 하루하루 출근길이 고역이다. 소모품처럼 살던 삶을 그만두고 싶다. 오늘이라도 사직원을 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언제라도 퇴사해도 괜찮다던 예비남편의 말 한 마디가 꽤 도움이 되는 아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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