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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인 Nov 15. 2023

'올바른 재회'라는 건 존재할까(2)

집에 도착해 현관을 들어서자마자 그는 내가 차려둔 음식을 발견하고는 적당히 기쁜 표정을 지었다. "뭘 저런 걸 또 했어, 와서 쉬고 있지"라는 말을 하면서 간단히 겉옷을 벗어두고 잠옷을 갈아입고는 차려둔 음식 앞에 앉았다. 내심 다행이었다. 음식까지 못 본 척 하고 이게 중요한 게 아니라고 이야기부터 꺼낼 줄 알았는데. 나에게도 식사했냐 묻더니 수저받침과 젓가락을 챙겨줬다. 그렇지만 결과적으로는 내 젓가락은 쓸 일이 없었다.


그는 며칠 굶은 사람처럼(실제로 얼굴도 그새 많이 야위었다.) 급히 먹기 시작했다. 나는 그런 그의 얼굴을 바라보며 또 마음 한 켠에 찬바람이 부는 것을 느꼈다. 자꾸 심장에 생채기가 나는 느낌이었다. 그는 그런 나를 바라보지않고 내내 "음식은 역시 잘해. 정말. 최고라니까."라며 끊임없이 칭찬을 해대며 식사에 집중했다. 그 시간동안 나는 다행이다, 왜 평소엔 이렇게 잘 먹는 그를 보며 쳇기가 올라왔을까, 이렇게 이쁘기만 한 너를 왜 나는 괴롭혔던 걸까, 우리 왜 이렇게 됐을까 하는 생각 가득한 상태로 턱을 괴고 그를 바라보았다.


며칠 굶었더니 밥이 잘 안 들어가네, 멋쩍게 하하 웃으며 그는 젓가락을 내려놓았다. 속도에 비해서 양이 크게 줄지는 않았다. 준비한 음식에 반 정도 먹고는 보관용기에 담아 냉장고에 넣어뒀다. 자리를 얼추 정리하고는 어쩌면 마지막일 수도 있을 설거지를 했다. 옆에서 그는 "이렇게 와서는 좀 쉬지, 뭘 자꾸 하려해." 했지만 설거지라도 하지않으면 괜시리 긴장되는 마음을 진정시킬 방법이 없었다. 설거지를 마치니 이제는 이야기를 좀 해볼까, 하고 그는 습관처럼 인센스를 켰고 평소답지않게 주방 불을 끄고는 무드등을 켰다.


논리적인 대화방식을 따르는 그는 그 날도 "서론부터"라는 말로 대화를 시작했다. 길고 긴 그의 말을 정리하자면 나의 냉담했던 태도에 그는 그 때 끝이란 것을 느꼈는데 다음 날 내가 감정이 남아 정리가 안 된다는 말을 들었을 때 왜 갑자기?와 같은 당황이 느껴졌다고 했다. 그리고 나에게서 반복됐던 헤어짐의 시그널이 그를 불안하게 만들었다고 했고 이번 일로 우리 관계가 지속될 수 있을지 의문스럽다고도 했다. 내가 어떤 마음으로 재회를 하고자 했는지 그 의지와 앞으로의 방향에 대해서 듣고싶다고 했다.


나 또한 너의 일련의 행동들로 인해 불안함을 느꼈고 우리의 미래에 대해서 확신을 갖지 못 했다, 처음 그 마음을 느낀 5월부터 지금까지 좋아하는 마음 하나로 버텨왔는데 계속되는 다툼들이 나를 여유가 없게 만들더라, 너를 괴롭히는 듯한 내 모습도 싫고 그런 내 모습에 지쳐가는 너를 지켜보는 것도 힘든 일이었다, 그래서 헤어짐이라는 방법을 선택했지만 헤어지고 그 일들을 겪지 않는 것보다 만나면서 힘든 것이 더 낫다고 판단했다, 나도 너와 같은 감정을 느끼지 못한 것이 아니지만 우린 충분히 헤쳐나갈 수 있다고 생각했다고 그에게 내 의지를 피력했다.


그런 이야기를 해나가던 중, 그나마 그가 생각하는 의지테스트에 통과를 한 건지 본론 두번째라고 꺼낸 말에 나는 또 무너졌다. "본론 두번째" 그는 우리가 끝내기로 한 직후의 출근길에 부모님께 이 사실을 고했다고 한다. 이 사실이라 함은 우리가 헤어지게됐고, 정리를 하기로 했다는 것. 본인 피셜로는 그 상황이 본인에게 매우 과중한 부담이었고 스스로 어찌할 수 없으니 상황이라도 알려야겠다는 생각이었다고 했다. 그리고 그 통화에서 나의 치부까지 전했다고 했다. (굳이 이 글에 치부를 밝히기는 싫어 생략..해야겠지) 어찌됐든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다는 것을 나에게 알려주면서 그는 또 내 의지를 논했다. 나는 또 그만하자고 했고. 내가 그의 부모님을 좋아했고 때로는 존경했고 또 이따금씩 보고싶어하기도 했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이 아니었는데 한 순간에 '나의 첫번째 인위적으로 생성된 부모님'을 잃게 만들었다. 그러면서 "우리 부모님이 이제 너를 좋게 보진 않으실거야."라고 하는 그가 정말 너무나도 미웠다. "삼자대면을 하자. 우리가 같이 가서 설명드리고 의지를 보여드리면 부모님도 이해하시지 않을까?" 사고는 자기가 치고 해결은 같이 하자고 한다. 막막했다. 애써 쌓아놓은 탑을 모두 무너뜨린 그에게 기대할 수 있는 행동이 없었다.


그렇게 사랑이라는 것이 최고치까지 갔다가 곤두박질 치고 있는 나였다. 나에게 틈이 보이니 그는 더 압박해오기 시작했다. "같이 해보자. 나 믿어보라니까. 나 믿고 따라와. 진짜. 내가 다 수습할게." 그런 말을 하면서도 "할 수 있다며. 의지 강하다며. 이거 봐. 또 끝낸다고 하잖아." 내가 잘못된 걸까. 나는 혼란스러웠다. 나는 이 때까지도 여전히 그가 좋았기 때문에 최대한 상황을 긍정적으로 해석해보려 노력했다. 그러면서도 짧게나마 사랑했던 그의 부모님과의 어떤 한 세계가 무너져가는 느낌이 들었다. 수습해본다는 그의 말을 믿어보고 싶었다. 성공적으로 화해하는 것 같아 안도감이 들었다가 다시 백두산을 마주하니 털썩 나는 또 백지가 되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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