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만날 생각이 없어보였던 그는, 내가 마지막이라 생각하고 보낸 메세지에 반응했다. 차갑기만 했던 그의 말들에 나는 의욕을 잃었었다. 우리가 다시 만나게 되더라도 우리가 느꼈던 고통은 여전할 것이고 오히려 그보다도 더 큰 어려움을 겪을 수도 있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었다. 그에 반해 힘든 건 이미 너무도 잘 알겠지만 그 힘듦을 사랑으로 감당해보겠노라고 얘기한 나였다. 내 사랑에 대한 의심인지, 힘들었던 상황에 대한 두려움인지 그는 조심스러운 말투를 걷어내지 않았다. 그러다 소심해진 나는 "너의 생각을 따라주겠다, 더이상 매달리지않겠다"고 했다. 마음은 아프지만 내가 끝이라는 말을 입에 담음으로서 나타난 현상이니 이것은 내가 짊어져야할 책임의 무게라고 생각했다.
그러자 그 때 그는 거절의 표현으로 한 얘기가 아니라며 나를 다시 돌아세웠다. 다시 그를 만날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이 생겼다. 고난과 역경이 나에게 다 찾아와주길 바라는 마음까지 생겨날 정도로 사랑의 힘으로 뭐든 다 부숴버릴 것만 같았다. 벅찬 마음을 간신히 진정시킨 후 몇 개의 메세지 교환 끝에 일단 만나서 이야기하기로 했다.
그렇게 저녁이 되어 퇴근시간, 나는 또 편도 두시간의 거리의 신혼집까지 내달려야만 했다. 그는 저녁 10시에 퇴근하는 날이었기 때문에 내가 갈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달리는 와중에 많은 생각이 스쳤지만 내 생각은 긍정으로 향했다. 그러다 그에게 점수나 딸까 하며 남자친구를 떠올리니 분명 담배나 펴대며 끼니를 제대로 챙기지 않았을 사람이라 마음이 또 아렸다. 그래서 두 시간을 달려 신혼집이 위치한 소도시의 식자재마트에 도착해 간단히 장을 봤다. 평소 그가 너무나도 좋아해줬던 나의 요리 중 소고기유부초밥, 파김치 재료에 마트에서 시즈닝된 상태로 판매중인 관자, 새우구이 세트를 샀다. 분위기가 분위기인지라 안 먹으면 어쩌나 싶으면서도 내 요리를 좋아했던 사람이니까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이것뿐이었다. 8시에 도착해서 1시간 반을 요리하고, 20분은 씻는 시간에 할애했다. 요며칠 방랑자처럼 떠돌며 제대로 씻지도 못하고 지냈더니 온 몸에서 냄새가 나는 것 같았다.
10시에 마칠 그를 마중나가려 시간을 철저히 계산했다. 다행히 딱 맞춰 9시 55분 집에서 나와 그의 직장 앞에 도착했다. 시덥잖은 유튜브 영상을 보며 시간을 때우는데 어둠 속에서 저벅저벅 그가 내 쪽으로 걸어왔다. 자연스럽게 우리는 손을 잡았다. 춥지 않냐며 손이 시리다고 걱정을 하면서도 눈을 마주치지 않았다. 나는 미안함, 고마움 갖가지 감정이 한데 섞여 평소 없던 아양을 떨었다. 나 좀 보라고. 충혈된 두 눈은 나를 보지 않았다. 머쓱한 듯 서둘러 집으로 가는 발걸음만 재촉했다. 그 때까지도 나는 아리송한 기분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