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 상사분께서 평소 많이 도와준다며 고맙다고 남편이랑 나눠먹으라고 주신 귤 한 박스가 있었다. 한사코 거절하다 받아오게 됐는데 거절했던 이유는 당시 우리가 싸우던 중이라 함께 나눠먹을 남편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받아온 귤은 한 이삼일 정도 차 뒷좌석에 얌전히 실려있었다. 현생에 지쳐 실려있다는 사실을 잊은 순간도 많았다. 그러다 화해할 듯한 순간에 신혼집 앞에서 다른 짐을 꺼내다 그 귤박스를 봤다. 에이 다음에. 아직 그 귤을 나눠먹을 마음이 아니었다. 그러다 그 이틀 후인가 겨우 화해하고 나는 그 귤을 나눠먹으려 신혼집에 올려뒀다. 그리고 그 날인가 또 싸웠다. 귤박스 뜯을 새도 없이 말이다. 그러다 그 이튿날인가 신혼집에 갈 일이 있어 갔더니 뜯겨있었다. 그리고 그 다음 날엔가 그는 나에게 귤이 썩어서 먹지 못할 것 같다고 했다. 아무리 솎아내어도 조금 있으면 또 다른 귤들이 썩는다고 했다. 그래서 나는 며칠 방치한 귤이라 그럴 거라고 못 먹을 거 같으면 버리라고 했다.
그리고 오늘 아침 신혼집에서 출근하는 길에 나는 그 귤박스를 보았다. 어젯밤 결혼을 미루는 게 어떨까 하는 나의 말에 미룰 거면 헤어지는 게 낫지 않냐고 그는 얘기했다. 현실적으로 결혼을 미룬다면 자연히 그렇게 될 것임을 알지만, 내가 하고싶었던 말은 '미룬다'가 중요한 게 아니고 결혼준비 하기위해 다시 힘낼 무언가가 없다는 것이었는데 우리는 이번에도 의사소통이 실패했다. 신혼여행을 다시 결제하려니 최소 50만원 이상 더 얹어야 하는데 그러지 않으려고 결혼식 1년 전부터 부산을 떨어댔던 내 수고는 그 돈 더 주고 하면 되지 않냐, 아깝냐는 말로 폄하되는 것 같았다. 최고의 선택이라 자부하던 것들이 헛수고가 되어버린 시점에 무슨 의욕이 나서, 신이 나서 긴 싸움 끝에 바로 결혼준비에 임할 수가 있을까. 내 시각에서는 외적으로 아무렇지 않게 보이기 위해 자신의 선택을 밀고나가려는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우리의 관계회복이 먼저지 결혼이 먼저냐는 나의 말에 그럼 그냥 연애하자는 거 아니냐고 말을 하던 그였다.
귤이 꼭 내 마음같기도, 우리같기도 해서 마음이 아팠다. 내려오는 두 시간 가까이를 눈물이 고인 채 달렸다. 방치해서 미안했고, 그 후엔 내가 어쩌지 못하는 곳까지 뻗쳐버려서 더이상 손을 쓸 수가 없을 것 같다. 이제 서로 확신이니, 결혼이니 하지말고 편하게 살자는 그의 카톡에 숨이 막힌다. 그래서 카톡과 전화를 차단했다. 그러면 뭘 해. 출근하면 메신저에 떠있을텐데. 사내연애가 이래서 무서운 건가 보다. 모든 상황이 막막한 지금, 어디라도 떠나고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