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혼을 통보받고 상황을 현실로 받아들이면서 사실 내내 술을 마셨다. 출근해도 맨정신으로 지내기가 어려웠고 휴직이나 퇴사를 고민하며 시간을 보낸다. 퇴근 후엔 사람들과 어울리기 싫어 혼자 술을 마셨다. 술을 마시고나면 잠에 들기는 쉽지만 새벽 4시가 되면 잠이 깬다. 그렇게 4시부터 출근시간까지 생각에 빠진다. 왜 이런 상황에 내가 놓였는지. 그리고 어떻게 해야 하는지.
그럼에도 다행인 것은 후회나 미련은 없다. 다시 돌아갈 거냐는 물음에는 절대 No라고 답할 수 있다. 다만 자책의 감정은 자꾸만 나에게 들어와 요즘은 가슴을 치는 버릇이 생겼다. 공황의 증상에 대해 떠올리다 그건 아니겠지 싶다. 그동안 헤어져야 했던 무수히 많은 도망쳐 시그널을 무시해온 내가 너무 밉다. 사랑이라는 이유로 참 많은 것들을 눈감고 귀닫고 입막고 지냈는데 왜 그는 불안했다는 이유로 나를 떠난 걸까. 더 많은 노력이 필요했던 걸까. 마지막까지도 사랑하니까 한 번 더 해보자는 나에게 그는 왜 일방적으로 이별을 통보한 걸까. 자꾸 그 답이 내가 못나서, 내가 참을성이 없어서 같은 이성적인 나는 하지않을 생각들을 하게 한다.
이별로 가기 전 과정에서 미리 빼온 옷 두 박스 덕분에 옷을 갈아입고는 다니지만 입었던 옷, 수건, 속옷들은 세탁되지않은 상태로 방 한 구석에 박혀있다. 그 옷더미들을 보면 한숨만 나온다. 막막하다. 임시로 몸만 들어온 합숙소라 빨래를 할 여건도, 다른 무엇도 할 여건이 안 되어 겨우 잠만 자고 나가는 나를 보다가 그가 몸만 쏙 빠져나간 집에서 내가 챙겨와야할 가전, 가구들을 생각하면 더 갑갑해진다. 집은 어떡하나... 그와중에 발령지는 갈 때까지 확정이 아닌 이 놈의 회사를 때려치고싶지만 그런다고 답이 아니니 진퇴양난이 이런 것인가 싶다. 어떡해야하나... 그냥 다 팔아버리고 산으로 숨어들어가고싶다. 뿅하고 사라졌으면 좋겠다.
인생에 굴곡이 없는게 어쩐지 허전했다. 이런 굴곡을 원한 건 아니었는데 이럴 때 그의 회피가 너무 괘씸해 어제는 메세지를 남겼다. "니 잘났다 개새끼야." 역시나 읽씹이었다. 나를 죄인 취급하는 이 새끼를 사랑했던 내가 너무 밉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