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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인 Nov 26. 2023

1주일이면 됐다. 이만하면 됐다.

파혼이란 핑계의 방황을 종료하겠습니다

한 달 가까이를 방랑자처럼 뒷좌석에 짐을 싣은 채로 다녔다. 그리고 또 한 달간은 그렇게 지내야겠지만 3주 후에는 갈 곳이 생겼다는 사실이 모든 것을 제자리에 갖다둘 수 있도록 내게 많은 힘을 준다. 내가 지낼 전세집을 계약했다! 내 주변은 아무 것도 흔들리지 않았다. 예전 힘든 순간들을 마주했을 때보다 비교적 의연해보이는 내 자신이 좋다. 오늘 아침 눈을 떴을 때 나도 모르게 '나를 챙기자. 내가 하고싶은 것, 먹고 싶은 것 먼저 해주자.'라는 마음이 떠올랐다. 1주일 방황했으면 그걸로 충분하지 않나. 다시 현실로 돌아올 때다.


그러면서도 사실 하루종일 생각을 떨칠 수 없었지만 이성적으로 현실을 받아들이는 자아가 더 많은 것으로 느껴져서 나는 내가 내 편이 되어주기로 했다. 어떤 선택이라도 지지할 준비가 되었지만 나는 내 자신이 더이상 상처받지 않기를 원한다. 나는 분명 관계에 쌍방으로 과실이 있다고는 인정하나 그건 둘의 문제이고, 나 스스로를 돌아봤을 때 적지않게 상처를 입었고 그 상처를 못 본 체 하면서까지 그 관계를 유지하려 노력했다는 사실을 알기에 후회하지 않는다. 그렇지만 여러모로 억울한 면은 있어 그 부분을 상대 부모님께도 명확히 밝히려 하다가 이내 그만둔다. 그 부모에 그 자식이고, 팔은 안으로 굽을테니 그가 내비쳤던 반응과 같을 거라고 생각하니 더 치가 떨리기 때문이다. 이해받을 필요도 없는, 이해받지도 못할 상대에게 내 시간과 노력을 더이상 쏟고싶지 않다. 내가 부어댄 불필요한 수고들도 이미 차고 넘쳐 미련이라 하면 그 수고들이 내겐 지금 미련이다.


정신을 차려보니 이 사람을 만나기 직전의 나와 지금의 나는 비슷한 상태다. 하고싶은 것도 많고 꽤나 구체적인 계획들도 세우는 상태. 밀도있게 삶을 살아가려 했던 나가 어디 가지않고 그 자리에 있다. 2022년 말 내가 발전적으로 뭔가를 해보려 막 계획하기 시작했을 때 그와 나는 만나게 되었고, 그를 만나기 시작하면서 교대직인 그에게 내 생활패턴을 맞추고 그와 결혼이야기를 시작하고부터 그의 인생계획에 내 계획을 수정하면서 나는 내가 하고자 했던 2023년의 계획은 모두 무산되었다. 브런치 연재, 블로그 연재, 골프 배우기 등등 10가지 정도 되었던 내 플랜리스트를 송두리째 흔들어버려 지금 와서 다시 이룰 수는 없겠지만 내년 계획으로 다시 반영해서 차근차근 해나가볼까 한다. 물론 연애와 결혼을 한다고 해서 한 사람의 생활이 뒤바뀔 정도로 주도권을 주어서는 안 된다고 하지만 현실적으로 그렇지 않고서는 그 사람을 만나는 것이 매우 어려운 상황이었다. 나름의 최선이었으니 그것도 좋다.


오늘 지인과 식사자리를 가지며 나는 "언니는 인생의 목표가 뭐야? 나는 목표가 하나도 없어. 어떻게 살아야할지 모르겠어."라고 물었다. 지인은 어린 아이 보듯 나를 보며 "인생 목표가 꼭 있어야 해? 나는 없이 살아. 꼭 있어야 한다면 나는 OOO(지인) 꾸미기를 목표라고 할래."라 했다. 본인을 꾸미는 것에는 단순히 명품 같은 고가제품이 아닌 좋은 재질의 옷을 입혀주고,  스스로를 건강하게 만들고, 부끄럽지 않은 사람이 되도록 행동하는 것이라고 했다. 최근 몇 년간 나는 n년 안에 퇴사하기, 창업아이템 찾기와 같은 다소 멀지만 도전해볼만한 경제적인 부분에 가까운 목표만을 세워왔었다. 그러나 지금 당장 나에게 그 목표가 동기부여의 수단이 될 수 없어 막막한 상태였는데 지인의 말을 듣고 나니 그것도 목표가 될 수 있겠다 싶었다. "맞아. 내가 왜 그 생각을 못 했을까?"


그래서 직장과 합숙소가 있는 지역으로 내려와 곧장 운동장으로 갔다. 30분간 걸으며 내가 스스로에게 해줄 수 있는 일이 뭘까 생각해보고 싶었다. 스스로 뭘 하고 싶은지, 뭘 하면 기분이 좋을지. 내내 걸으며 생각해봤지만 역시 내 성격 탓일까 당면한 과제들만 우수수 쏟아졌다. 이사업체 찾기, 출장 기차편 예약하기, 해야 되는 것들의 향연이었다. 잠시 접어두면 좋으련만 그렇지 못하고 그것들의 우선순위만이라도 정리해봤다. 그리고 아무리 생각해도 당장 기말고사도 앞두고 있고 이사도 해야하고 내가 손댈 수 있는 일정이 있나 봤을 때 어려운 부분이 있어서 당장 매일 일과 후에 30분씩 걷는 것을 목표로 세웠다. 일상을 루틴화하기. 이것부터 지켜나가다보면 어느 날은 걷고, 어느 날은 뛰고, 어느 날은 코스를 바꿔 돌아보고 하지 않을까. 당장 나가야할 돈도 많아 비용도 최소화해야하는데 이만한 운동이 없다. 찬바람 맞으며 30분 걷고 나니 머리가 맑아지는 기분이었다. 잘할 수 있다. 해보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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