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지인 Nov 28. 2023

주저앉아버리고 싶은 어느 날에 쓰는 글

오랜만에 신경정신과를 찾았다. 도저히 회사에 앉아있기 힘들어 고심 끝에 조퇴를 하고 전에 가본 적 있던 병원에 왔다. 생각에 생각의 꼬리를 물고 여기까지 오면서 나름대로 내 상태를 정리해보려 했으나, 안 된다. 정리가. 이따금씩 마음이 아려오고 그와 동시에 심장이 급하게 뛰며, 그보다는 자주 숨이 턱턱 막히고, 또 그보다는 잦게 무기력을 느낀다. 이 시간을 반복하고 있자니 일상생활에 방해를 느껴 병원을 찾았다. 다른 이유가 아니라 나도 일상을 살아야겠기에 감기에 약국을 찾듯이 같은 이유로 온 것이다. 불편한 증상들이 계속해서 나를 끌어내리려는 것 같아 이렇게라도 긴급처방을 해보려 한다. 전에 불안증세가 심해졌을 때가 있었는데 내가 그 때 느꼈을 때는 아주 용한 분이셨기 때문이다.


짧은 진료를 마치고 약봉지를 받아들고 나왔다. 어떤 일로 왔냐시기에 위와 같이 말씀드렸고, 한 두마디 보태어 처방 같은 조언도 주셨다. 내가 "결혼준비를 혼자 하면서 좀 버거웠어요."라는 말을 하니 결혼준비랄게 뭐가 있냐며 같이 살아갈 준비를 하는 게 결혼준비라 하셨는데 나도 참 초심을 많이 잃긴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 결혼을 준비할 때 정말 살아가면서 필요할 본질적인 부분들을 우선해서 챙기기로 했었는데 그 준비 자체에 매몰되어있었던건 아니었을까 싶다. 뭐, 말씀을 들으니 그 부분은 그렇게 생각도 되네 싶었다.


나오자마자 4시 조금 넘은 시간 저녁약을 서둘러 털어넣었다. 일반 약은 예방 차원에서 먹으라하셨고, <필요시>라고 적힌 약은 증상이 발현되면 먹으라하셨다. 일반 약을 먹고 난 지금 밤 10시 넘게까지도 증상이 없는 걸 보니 약효가 있는 걸까. 쿵쾅거림이 사라지긴 해서 다행이다. 불안이 시작되면 행동이 급해지는 부분이 있는데 그런 부분까지 가라앉아서 약을 먹은 이후로 뭔가 편안한 느낌까지 들어 오랜만에 마음 편한 저녁시간을 보냈다. 약에 의지하면 안 되지만 이렇게 일상을 살 수만 있다면 뭔들 못할까.


아까는 교보문고에 들렀다가 신년다이어리와 탁상 캘린더를 사는데 이래저래 또 생각이 복잡해져 눈물이 톡 튀어나올 뻔 했다. 억지로 생각을 끄집어내려는 건지 자꾸만 희노애락이 실시간으로 펼쳐진다. 좋은 기억이 지나면 화가 났다가 또 그럴 일도 아닌가 싶다가 눈물이 날려고도 한다. 미친 사람처럼 살고는 있지만 나름 티는 안 내려고 노력중이다. 그렇다는 핑계로 신년다이어리와 함께 쓸 스티커를 5종류 구매해왔다. 귀여운 걸 보면 한결 더 행복해진다. 다음에 마음이 혼란하면 실바니안 패밀리를 보러 아트박스로 가야겠다. 어쩌면 새 집으로 가서는 실바니안 한 세트는 모셔오지 않을까. 자꾸만 애착대상을 만들어내려는 내가 아쉽지만 뭐라도 내 관심을 끌어주기만 한다면 좋겠다. 아까는 정말 세기의 사랑이라도 하는 것처럼 달려갈 뻔 했는데 용케 참았으니까. 우리가 아닌 걸 너무나도 잘 아는 나니까 꾹 참아야한다. 그래서 더 갑갑한 마음인 것 같다. 있는 마음을 갈기갈기 찢어내고 없애고 태우고 녹여야하기 때문에. 시간이 지나고 나를 칭찬해주는 그 날까지 화이팅.

작가의 이전글 1주일이면 됐다. 이만하면 됐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