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혼을 결정하고 서로가 서로를 상처내기 위한 말들과 침묵, 회피, 분노, 원망과 같은 온갖 감정들이 오가다 지금은 다소 차분한 상태에 왔다. 파혼하기로 하고 신혼집에 차려둔 혼수들을 빼달라 하기에 새로운 집을 계약하고 이삿날만 기다리는 상태이기도 하다. 그런데 그 사람과 나누었던 이별의 말들이 무색하게 나는 자꾸만 우리에게 일어난 상황들을 이해해보려 애쓰고 있었다. 내가 막기에는 너무나도 거대한 의지가 자꾸만 과거를 들춰내고 현실을 회피했다. 아직도 나는 사진첩을 켜지 못하고 서울, 사업단, 그의 이름 등등 특정 단어들을 들으면 마음이 찡해지는 증상이 있어서 당분간은 계속해서 피해보려 하는 중이다.
사실 처음이었다. 이렇게 제대로 이별을 마주한 적은. 친구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내가 이번엔 평생 갈 사람이라는 이유로 마음의 여유를 안 두고 사랑했던 것 같다. 내 룰을 어겼다."라는 말을 한 적이 있었는데, 지금까진 연애를 하면서도 마음을 반쯤 남겨놓고 끝을 미리 생각하던 습관 같은 게 있어서 덜 다쳤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번 관계에서 내가 너무 마음을 다 줘버린 것 같다. 그것말고는 이렇게나 아픈 마음을 설명할 길이 없다. 늘 언제라도 끝낼 수 있는 사람처럼 굴었으나 나는 그에게 끝을 예상한 적이 없었다. 힘들다는 말을 극단적으로 뱉은 나였지만 나에게 해결하고자 하는 대책만 머릿속에 있었을 뿐 진정 끝을 위해 달린 적이 없었다. 그럼에도 헤어지잔 말을 한 나에게 책임이 있다고 하니 나는 받아들일 수 밖에 없지만서도 자꾸만 자꾸만 무너질 뿐이다.
한 달이 다 되어가는 지금, 여전히 웨딩촬영 업체에서는 수정본을 보내오고 팔지 못한 커플링은 내 목에 걸려있고 신혼집에 있는 짐은 이삿날만을 기다리며 그 곳에 있다. 나에겐 달라진 것이 떠난 그 사람 뿐이라 더 실감이 안 나는 걸수도 있겠다. 그런데 그렇다고 치더라도 이 상황을 나는 어떻게 직면해야할지 모르겠다. 떨리는 심장을 약으로 막고, 멍한 시간들은 걷기로 때운다. 덜 먹고 더 걷다보니 살이 빠져 좋기는 하지만 나 스스로가 볼품없이 느껴지는 출근길 엘레베이터에서는 또 나는 한 켠이 아프다. 우리가 이미 너무 멀리 왔다고 하는 그의 말이 진짜인가. 되돌릴 수가 없는 상태인가. 되돌린다고 뭐가 달라지겠냐만은 적어도 내가 해볼 때까지는 해보고 떨어져나가도 되지 않나 싶고 제정신으로 도통 돌아오질 않는다. 받아줄 사람은 없는데 다시 돌아가길 바라고, 이 온 우주 속엔 나뿐인 것만 같다. 간간이 나에게 들러주는 사람들에게 기대어보려고 하지만 나는 길이가 어긋난 다리로 내내 버티는 중이다. 휘청 휘청. 그래도 다들 이렇게 산다고 하니 나도 살아야겠다 한다. 그것뿐이다. 자꾸만 나에게서 잘못의 원인을 찾는다. 내가 뭘했기에 이렇게나 고통일까. 시간이 흐르면 조금은 나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