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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인 Dec 05. 2023

죽고싶을 때마다 오는 바닷가에 와서 쓰는 글

내가 예전부터 죽을 고비를 넘길 때마다 찾아오는 장소가 하나 있다. 아주 작고 작은 바닷가 마을. 그래봤자 고비는 오늘 포함 두 번이었지만 그 때나 지금이나 삶이 너무 고되게 느껴진다. 그 때를 굳이 회상하자면 전역 후 무리수로 보험회사를 들어가 3개월동안 전국을 누비며 영업을 하면서 가족과의 연을 끊고 남는 거 하나 없이 고생만 진탕 하다가 빚더미에 앉기 직전이었던 그 날이었다. 도저히 그 직장을 때려치지않고는, 모든 인간관계를 접고 어딘가 숨어들지않고는 버틸 수가 없었던 그 때. 그 때 이 곳에 와서 나는 몇 시간을 내내 엉엉대며 울었다. 바다로 빠질 용기도, 유언을 남길 힘도, 생각도, 의지도, 희망도 없었기에 울면서 없는 엄마를 찾기만 했다.


오늘은 퇴근 전 힘이 다 빠진 상태로 집으로 향하다가 문득 이 곳이 생각나 운전해오면서도 '오늘인가?'하는 생각으로 이 생각 저 생각 하며 왔다. 도착해서 바다를 보니 나는 죽고 싶었던 건 아니었나 보다. 찬 바람이 두피를 스칠 때 번뜩 정신이 차려지는 걸 보면. 다 놓고 싶은 날들의 연속이라 요즘은 틈만 나면 나의 부재를 상상해보곤 한다. 회사를 때려칠 생각도 못 하고 휴가를 써도 갈 곳이 없고 어딘가 털어놓을 사람도 마땅히 떠오르지않고 있더라도 털어놔봤자 라는 생각이 든다. 부정적인 생각만 가득한 채로 그를 잡아보려는 의미없는 행위를 한다. 도통 방법을 모르겠다. 상대가 아니라하니 다시 돌아가진 못하겠지만 쿨하게 놓아주는 법을 나는 모르겠다. 어떻게 쿨할 수가 있는거지? 어떻게 아무 미련 없이 끝낼 수 있는거지? 그에게 강의라도 받고싶을 지경이다.


사실 퇴근 전 재작년 같이 근무했던 팀장님께 전화가 왔었다. 사랑하지 않을 수 없었던 분이라 나는 이 분께만은 정중히 파혼 소식을 알리고 싶었는데 첫 마디가 "결혼이 언제라고? 4월?"이라고 하셔서 내가 얼버무리니 자기 결혼일자도 모르냐고 하셨다. 그러다 결혼 못할 것 같다고 말을 흐리니 괜찮다며 말을 이어가셨는데 내가 그토록 가고싶었던 신혼집 최근방 지사에 한 자리가 비었으니 오고싶으면 얘기를 하라는 말씀을 하셨다. 이젠 그 곳에 안 가도 되는데.. 싶은 생각이 들면서도 그가 생각이 나면서 '너만 돌아오면 모든 걸 제자리에 돌릴 수 있어'라는 바보같은 생각이 더 크게 차지를 할 뿐이었다. 다음 주까지 답변을 달라시기에 일단 답변은 보류를 해놓은 상태이지만 이대로라면 나는 그 자리를 거절해야만 한다. 왜 이제야 좋은 기회가 찾아와 또 나를 흔들어놓는 건지, 한창 발령 문제로 머리를 싸매던 순간들만 맴돈다.


머리가 너무 아프다. 서로 잘 맞는 사람이 나타날 거라고 서로의 행복을 빌어주자며 홀가분하게 떠나던 그의 마지막 말이 자꾸 부럽다. 인생에서 봄이 오길 바란 적은 없다만 최소한 겨울만은 피해갔으면 싶은데 그게 그렇게 욕심이었던가 싶다. 오늘도 바닷가에 넋두 리를 한참 하고 돌아간다. 또 하루를 살아내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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