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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인 Dec 07. 2023

무심하게 푹, 들어오는 사람들이 싫다

아무래도 전입 제의를 받았던 곳으로의 이동은 어려울 것 같다. 비정기 인사에서 타본부로 한 명을 잃으면 향후에 그 공석을 채워줄지 안 채워줄지 모른다는 이유에서였다. 나는 그냥 인원 +1의 숫자일 뿐인데 또 나만 진심이었지. 그렇게 내 희망을 반대하고보니 마음이 불편하셨는지 나를 부르시기에 팀장, 차장 두 분과 티타임을 했다.


파혼 사실도 알고 계시고 사를 해야한다는 사실도 다 알고 계시는 두 분이었다. 그런데 티타임에서 굳이 아는 사실하나하나 되짚는 두 분이었다. "이사는 언제 한다고? 이사비용은 얼마 들던데? 전세로? 전세금이 얼만데?" 사사로운 궁금증으로밖에 느껴지지 않아 무성의하게 답변을 계속 하는데 내가 전세 1억에 90% 대출을 받는다고 하니 차장님은 "에이. 니가 사회생활이 몇 년인데 90%를 대출하냐. 따로 모아둔 돈이 지금 빼기가 어려운가보지? 그냥 니 돈으로 하는 게 나을텐데. 설마 그 돈이 없진 않겠지?ㅎㅎㅎ"하신다. 나는 이런저런 일들로 쌓은 빚더미에서 겨우 빠져나와 청약에 당첨됨으로 인해 미리 끌어온 퇴직금까지 싹싹 긁어모아 결혼자금에 보탰고 결국 지금 이 지경이라 천만원이라도 있음에 감사했는데 저 말을 들으니 숨이 턱턱 막혀왔다. 공개적인 자리에서 들으니 어찌 답해야할지도 모르겠더라.


그리고 글을 쓰는 지금 오후 2시 반의 나는 또 조퇴를 했다. 저 말을 들은 게 오전 9시 조금 넘었을 때였는데 정말이지 회사에서 내가 기대할 것이 조금도 없다는 게 느껴지면서 가슴이 먹먹해졌기 때문이다. 노조실에 문서를 갖다드리러 갔다가 빈 사무실에 문서를 놓아두고 나서려니 자꾸만 눈물이 쏟아져서 바로 옆 방인 회사 간호사님 방으로 숨어버렸다. 당황스러우셨을테지만 그 방에서 30분 정도를 울기만 하다 나왔는데 아무 일 아니라는 간호사님의 위로가 그 방에서밖에 효력이 없음을 깨달았다. 식욕도 사라지고 그저 눈물만 나기에 꾹꾹 참았다가 점심시간엔 휴게실에 숨어 잠을 자버렸다.


비몽사몽한 상태가 그나마 나았는데 1시 종이 치고 얼마 안 되어 내가 가고싶어했던 지사 팀장님이 내부적으로 어떻게 논의가 되어가냐고 물어오셨다. 이미 나는 너무도 명확한 답을 얻었고, 설득을 할 수 있는 방법이 보이지 않았다. 아무도 나에게 도움이 되지 않았고 이 상황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건 포기하는 것 뿐이었다. 나만 거기 안 가면 모두가 편해지는 거 아닌가. 그런 마음으로 팀장님께 전화를 드렸더니 어떻게든 도와주려고 하시는 말씀에 다시 감정이 올라왔다. 사실 도와준다기보다는 그 지사에 필요한 인력을 채우기 위한 일이었겠지만 다른 대체인원이 있음에도 나를 위해 "제가 그 쪽 팀장님과 근무연이 있어서 그런데 전화라도 드려볼까요?"하는 그 말씀이 너무나도 감사했다.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다른 분께 기회를 넘기겠다, 비정기인사로는 못 갈 것 같다고 말을 하는 그 통화가 나는 너무 슬퍼서 견디지 못 했다. 통화가 끝나고 테라스에 나가 또 눈물을 흘렸다. 오늘 하루종일 울기밖에 못한 것 같다.


어딘가 도망치고 싶은데, 쉬고 싶은데, 내려놓고 싶은데 나는 그 무엇도 하지 못 하고 현실을 살고있다. 그런 상황에 할 일 다 해놓고 떠난다는데도 나는 그러지 못하는 처지가 슬프다. 그래서 회사가 미워지고 싫어진다. 오로지 필요에 의해서만 돌아가는 것이 너무 냉정해서 나는 당사자로 있기가 싫다. 그래서 오늘도 사직서 날짜를 고쳤다. 수십번을 수정해왔지만 오늘만큼 현실로 다가온 느낌은 처음이었다. 아마 대책없이 사표를 던지는 날이 머지않아 다가오지 않을까 싶다. 더이상 쓰여지기 싫다. 나 하나 벌어먹이기 힘들까. 오고갈 곳이 없어 차에 앉아 쓰는 오늘의 일기는 여기서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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