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신혼집이었던 집에서 짐을 빼오는 이삿날이다. 들어갈 땐 레이로 두어 번, 용달차 하나로 됐었는데 그새 짐이 늘어 이제는 5톤 트럭으로 옮겨야 한다. 손댈 엄두도 나지 않아 포장이사에 오롯이 맡겨두고 나는 멀찍이 떨어져 앉아 글을 쓴다. 이사갈 집에서 하룻밤을 보낸 나는 오늘 아침 이 집으로 오는 길에 참으로 복잡스러운 마음으로 왔는데 오고보니 확실히 정리가 되는 부분들도 있어 좋다.
전세금만 그의 부담이고, 나머지 가전 가구며 살림살이며 다 내 몫이었기에 사람 하나가 빠져나가도 크게 다를 것 없는 집이 오늘따라 더 잔인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그래서 더 후련함이 큰 것 같다. 이렇게 헤어지게되면 그가 몸만 쏙 빠져나가면 될 현실을 내내 걱정해왔었는데 그 상상이 현실이 되고보니 '역시..'라는 생각밖에 들지 않는다. 어우러져 섞인 짐에서 자기 짐만 쏙 도려나간 것도 어이가 없다. 하숙을 하던 사람도 아니고 평생을 함께 그려보려 했던 이의 마지막은 어째 하숙하던 사람보다 더 잔여물이 없다. 뭐가 이렇게 다 내 짐이고, 헤어짐 후에 정리할 것이 이렇게도 많은지.. 하지만 와중에 긍정적으로 볼 것은 이 집만 정리되면 더이상 그와의 연결고리도 없다는 것이다.
포장이사 업체가 도착하기 전, 나는 먼저 와 접착된 것들을 떼어냈다. 물때 끼지않게 공중부양을 시켜놓으려 화장실에 붙여놨던 거치대, 주방 행주를 걸기위한 고리들, 차에 붙여놨던 아파트 차량 스티커.. 내가 할 수 있는 마지막 정리를 하는데 그 접착제들을 떼어내다 생각이 스쳐갔다. 접착제까지 구질구질하게 구는 이 상황이 싫었다. 칼로 긁어도 다시 옆에서 보면 접착 흔적이 남아서 불편했다. 이 사람과 맺어졌던 연이 나에겐 어떤 형태로든 흔적이 남을텐데 나는 그 기억을 말끔히 도려내고 싶었다. 왜 자꾸 긁어내도 티가 나는지 답답하고 속상했다. 티가 나는 그 부분을 그 사람이 보고 탓을 할까도 신경이 쓰였다. 최선을 다해 정리하고 돌아섰지만 아직도 마음에 걸리는 것이 꼭 우리 관계 같다.
그럼에도 골드미스를 위한 과정인 건지 이제 나는 풀옵션 아파트에 사는 30대 미혼 여성이 되는 것이다. 얼른 이사를 마무리하고 휴식을 취하고 싶다. 빨래를 돌리고 싶고, 목욕을 하고싶다. 노숙자같았던 생활이 정리가 되는 것만 해도 충분히 나는 행복해지고 있다. 안정이 되면 나도 꿈이란 걸 꾸어야지. 행복해지지 않아도 최소한 함께라서 불행한 순간은 피했으니 그걸로 나는 30대 액땜은 했다고 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