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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인 Jan 21. 2024

오랜만에 쓰는 가족이야기

지난 금요일 까마득한 회사 선배님과 술자리를 가졌다. 내가 태어날 때쯤 입사하셨던 분들인데 감사하게도 나를 예뻐해주시고 막내동생처럼 챙겨주셔서 우리는 어느새 하나의 모임으로 주기적인 자리를 갖게 되었다. 금요일도 그런 날이었다. 송년회를 얼마 전에 했는데 신년회라는 명목으로 또 모였다. 이번에는 캠핑 컨셉의 고깃집에서 식사를 하며 맛있는 대화를 나누었다.


그 중에 한 분께서 하셨던 말씀이 내겐 트리거였던 걸까. 너무 내 진심을 꺼내보인 것 같아 조심스러우면서도 민망한 마음에 글로서 내 감정을 정리해본다. 그 분께서 이혼하셨다는 이야기는 이전에도 들었었다. 내막까지 알고싶은 마음은 없었으나, 내게는 이 분이 같은 여자로서, 사람으로서 가끔 동질감이 느껴지는 부분이 있었기에 내 최선의 공감을 늘 드리고 싶었다. 그 날 식사자리에서 "나는 버림받고 싶지 않아. 다른 누굴 만나려고 해도 버림받을까 두려워서 못하겠어."라고 하신 말씀에 "저도요. 저도 버림받는 게 너무 무서워요."라고 답을 했었다. 다른 사람들은 파혼쯤 버림에 속하지도 않는다는 표정을 지으시는 듯 보였고, 나도 파혼쯤의 이야기를 꺼내려는 게 아니었다. "부모님께 버림받았던 적이 있었거든요." 덧붙였다.


그 날 밤 나는 집이 멀다는 이유로 그 분의 집에서 하루 묵을 수 있게 되었고, 다음 날 아침이 되어 누룽지 한 그릇 먹고 가라셔서 요리하는 그 분의 곁에서 대화상대를 하기로 했다. 어제 이야기를 끝으로 자세한 내막이 알고싶으셨던 모양이다. 첫마디로 "어제 그 이야기는 뭐야? 부모님은 왜?"라고 하신 걸 보면. 나는 요즘 사람들이 직장에서 치부나 사적인 일들을 드러내지 말라고 하지만 이 이야기는 내게 치부급으로도 쳐지지 않기 때문에 적당선에서 내 사적 이야기를 하는 편이다. 이 또한 나를 만든 하나의 요소라고 생각하면 별 거 아니다, 내겐. 듣는 사람은 부담스러울 수 있겠지만 내가 다른 사람의 험담을 하는 것도 아니니 떳떳하지 않을 것도 없다. 아무튼 그 첫 물음을 시작으로 우리는 한참을 이야기했다. 남편의 외도로 이혼하게 된 아내의 입장과 아빠의 외도로 이혼하는 것을 지켜본 딸의 입장으로.


"나는 항상 궁금했어. 우리 아들들이 어떻게 상황을 받아들이고 있는지. 그래서 물어보고싶었어. 어땠어?" 나는 내가 실로 느꼈던 감정을 이야기해야 하는지, 엄마가 들어도 될 적당한 표현이 필요한지 몇 초간 고민했다. 결국, 나로선 적당한 표현밖에 할 수가 없었다. "그래도 엄마가 옆에 있어주셨잖아요. 다 알 거에요, 아드님들도요." 너무 내 입장에서 말한 건가. 아차, 했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위로 뿐이었다.


그런저런 이야기들을 주고받으며 누룽지를 먹고 집으로 돌아오는데 "참 잘 컸다."라고 해주신 그 분 말에는 죄송스럽지만 세상 참 혼자다 싶었다. 물론 그런 생각들이 나를 더이상 무너뜨리거나 약하게 만들진 않지만 그런 사소한 결핍들이 오히려 나를 강하게 만들어주고 있는 건 아닌가 했다. 자식 입장으로만 보면 그렇고. 여자 입장에서는 파탄나지않는, 멀쩡해보이 가정을 만들려면 내가 감수해야될 부분들이 분명 있다는 것. 결혼이라는 것에 대해서 긍정성은 전부 사라지고 없지만 인간관계라는 점으로 봤을 때도 이성간 관계라는 것이 뭘까. 내 평생 꿈이었던 나 닮은 자식 만들기가 그렇게 동화 같은 일은 아닐 수 있겠다, 그런 생각이 복잡하게 엉킨다. 궁극적으로 가족이란 게 뭘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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