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기도는 내 힘으로 안 될 때 나보다 더 힘센 분인 신께 의뢰하고 항복하고 매달리는 것이라 여기는데 그 말도 맞다. 나 또한 그리하고 절박한 상황, 안타까운 상황에 대부분 그렇게 한다.
그러나 여기에 우리가 크게 간과하는 것이 있다. 기도를 하려면 먼저 내가 신과 합일 안에 있어야 한다는 전제조건이다. 즉 말해서 신을 만나기 위해서는 성소나 바깥마당이 아닌 신이 거하는 곳인 지성소안으로 들어가야 하는데 그 말은 신께 말이 전달될 수 있기 위하여 우리는 신과 같은 파장 안에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채널이 신과 함께로 맞춰져야 한다.
그러니 기도는 먼저 전달 내용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신과 나의 일체를 이루는 '합일'이 선제 조건이라 본다.
신과 내가 텔레파시가 될 정도로 하나의 진동 안에 있는 합일이 이뤄질 때 내 바람이 전달될 것이다.
그를 위해 가장 좋은 방법은 침묵이라 본다.
대개 우리의 언어는 개념이나 부호에 지나지 않을 때가 많아 말로 다 할 수 없는 감정과 표현들도 있다. 그래서 beyond expressions 해서 speechless 하게 되는. 그러니 제대로 표현하지 못할 바에야 굳이 인간의 언어로 문장을 만들고 정리해서 주저리주저리 나열할 필요가 없다. 그저 문장이 있으나 없으나 모든 것을 이미 다 알고 계시는 신께 간절한 내 마음을 갖고 침묵 속에 거하는 것이 더 낫다고 본다.
그럴 때 내 기도는 점점 거짓자아의 허울을 벗어버리고 신성으로 적셔진 참자아의 의지를 주장하는 것이 된다. 그런 기도는 침묵 속에서 점점 명상이 되어간다. 신성의 빛으로 참과 거짓, 욕망과 이기심을 가려내는.... 그리할 때 기도는 바깥에 있는 구세주를 찾아 소리 높여 부르는 행위가 아니라 고요히 내 안에서 신을 만나고 내가 직접 신이 되어가는 것이 된다.
침묵과 명상 속에서 이미 조화로워진 우리는 모든 것이 '하나'이며 '분리'된 것이 없는 고요와 평화로움을 누릴 수 있다. 우리 마음이 이미 천국에 와 있다. 더 이상 어떤 대립도 불안감도 두려움도 집착도 없이 그냥 신과 하나 됨 안에서 일체감을 이루며 존재하게 된다. 이것이 진정한 기도다.
낮은 자아 안에서 기도할 때 굳이 언어를 필요로 한다면 침묵 속에 기도할 때 신은 외부에서 우릴 도와주는 존재가 아니라 우리 안의 신성이 깨어나 하나가 됨으로써 우리는 우주에 편만한 전체신의 모든 권능을 공유하게 된다. 그리하여 우리 마음 안에 평화와 축복을 선물할 것이다. 그것이 기도의 응답이다. 사랑과 지혜와 힘이신 신께서 우리 마음 안에 그분의 일부를 깨어나게 하사 그리 하심이다.
이렇게 우리는 생활가운데 범사에 감사하며 말과 행위와 생각으로 쉬지 않고 기도할 수 있다. 사랑이 담겨있는 조화로운 말은 나와 다른 사람들을 '하나'로 이어주며 헌신과 봉사로 하는 행위는 작은 나에게서 더 큰 나로 나아가게 하며 올바른 생각은 우리로 깨달음과 합일로 나아가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