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은 일지를 쓴다. 몇 해 전부터 시작한 농사일기를 적던 습관이다. 언제 나무 가지 치기를 해 주고 비료를 주고 텃밭 씨를 뿌리고 등등 적어두면 지난해 농사일정과 비교해서 참고가 된다. 그리고 다른 목적으로는 글쓰기가 기억력 향상에 좋고 장차 치매예방에도 도움이 되기 때문일 거다.
그래서 남편은 "나 언제 뭘 먹었지?" 하고 자주묻는다. 그러면 어제 먹은 건 기억하지만 며칠 전 건 굳이 기억하려면 기억하겠지만 그런 거 다 시시콜콜히 기억하지 않으려 한다고 만다.
지금 현재 Now and Here 집중에 방해가 되기 때문이다.
그래도 한두 주를 보내면서 대부분 나 지난주 뭐 했지? 하고 rewind to remind 기억하려고 테이프 되돌려보기를 한다. 그를 위해 젤 쉬운 방법은 먼저 스마트폰 캘린더를 체크하는 걸 거다. 일정을 위해 캘린더에 미리 적어둔 걸 보면 내가 한 일과 동선을 알 수 있다. 그러나 더 확실한 방법도 있다. 안드로이드 폰은 갤러리앱을 보면 날짜별 사진이 나오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 사진을 보며 아~내가 그기 갔었지, 뭐뭐 했었지, 이렇게 쉽게 기억이 소환된다.
벌써 7월이라니~~ 어차피 시간은 환상이라지만 그래도 이제 덥다 덥다 몇 번 하다 보면 어느새 가을바람 불어오고 밤 줍고 이쁜 감나무 사진 찍다 보면 어느새 성탄모드로 또 접어들겠지...
오늘 아침에 일어나니 6월 중순 이후로는 별 뚜렷한 인상 깊은 기억이 없어 갤러리 사진을 들추어 보았다. 그렇게 보고 확인하고 나서 이제 내 6월의 기억 서랍에 고이 넣어둔다.
♧ 6월 23일 집들이 ♣
나랑 동갑인 토끼띠 친구가 아파트 리모델링을 했다고 새집들이 초대를 해 주었다. 퇴직 후 낚시를 맘껏 할 수 있어 행복하다는 친구 남편이 먼바다 가서 손수 잡아온 한치를 데치고 말리기도 해서 정말 맛있게 먹었다. 낚시해 온 뽈락도 얼마나 구워두었던 지 다 못 먹고 사주길래 집에 가져와서 며칠 먹었다. 홍삼합도 나는 마트 홍어를 사는데 직접 만드는 이에게 부탁한 거라 냄새가 진하지 않았다.
♧ 6월 24일 만날재 공원 ♣
만날재 공원은 집 뒷산에 있다. 차로 5분 거리니 우리 부부는 산 공기가 좋아 자주 간다. 숲 속에 편백나무도 있고 바다가 보이는 풍경도 볼 수 있고 중간중간 벤치와 운동기구들도 배치되어 있어 수변공원과 함께 하루 만보 걷기 채우는 중심 장소다.
내려오다 마산이 고향이고 주 활동지였던 귀천의 시인 천상병의 시비 '새'를 만난다. 어린아이 같이 순박하기만 했던 그가 동백림사건으로 모진 고문을 받고 거의 초주검이 되었을 때 지인들이 안타까워하며 죽은 줄 알고 냈던 그의 유고시집 '새'였다.
"외롭게 살다 외롭게 죽을 내 영혼의 빈터에
새날이 와 새가 울고 꽃잎 필 때는 내가 죽는 날 그 다음 날
산다는 것과 아름다운 것과 사랑한다는 것과의 노래가 한창인 때에
나는 도랑과 나뭇가지에 앉은 한 마리 새
살아서 좋은 일도 있었다고 나쁜 일도 있었다고 그렇게 우는 한 마리 새"
시집간 딸과 친정어머니가 상봉하는 내용의 만날재 설화를 형상화한 조각~ 사진 경남도민일보
까마귀 우는 소리도 들리고 숲 속 바람소리가 순간 찰나의 삶을 일깨운다~~
♧ 6월 25일 도서관 간 날 ♣
공부벌레, 공부가 젤 쉬웠어요 내지는 재밌어요를 떠올리게 하는 박문호박사님, 그의 사투리 섞인 강의를 들으면 웃음이 난다. 나와는 같은 대학캠퍼스를 공유했다는 동질감이 있다. 그러나 내가 경탄하는 것은 무엇보다도 배움에 대한 그의 '열정'과 '실행'이다. 전자공학 박사가 뇌과학을 이리 쉽게 설명하다니!
나는 의사 면허증이 아니고 낫게 하는 사람이 의사라 본다. 나는 무조건 무엇이든 본인이 먼저 잘 소화시켜서 쉽게 잘 설명하는 사람에게 열표를 던지다.
짧은 인생 효율성이 최고라 보기에!! 도서관에서 빌리기엔 너무 두꺼운 뇌과학책을 펼쳐 한참을 보고 온 하루다. 그리고 그의 책을 빌려오고 집에 와서도 박사님의 유튭을 보며 나름 박문호 도장깨기를 한 하루다.
♧ 6월 26일 수변공원 산책 ♣
나는 대구, 경주가 고향이지만 지금 살고 있는 곳은 마산이다. 수변공원, 정식 명칭은 3.15 해양누리공원인 곳을 주중에 두 세번 가서 만보걷기를 한다. 바닷바람이 시원하고 멀리 보이는 다리를 두 세 바퀴하고 긴 산책로를 따라 걸으며 하루 운동 복용량을 채운다. 지리산집이 있어도 이 곳 시내가 좋은 이유는 배산임수로 위치 좋은집이 있기 때문이다. 차로 5분 거리에 만날재가 있고 걸어서 5분 거리에 수변공원이 있어 운동하기 좋다.
걷다가만 오면 심심하니 남편이랑 가끔은 뷰 좋은 스카이 라운지 카페에 가는데 해안에 새로 오픈한 카페가 있어 가 보았다. 이전 건물을 고쳐서 만들었는데 일단 길쭉하고 이층으로 되어 있어 공간감이 좋았다. 이제 우리나라도 감성, 감각이 어느 선진국 못지않고 오히려 더 빼어난 지도 모르겠다.
이 곳 지방도시에서 보는 카페가 매장내 티 셔츠랑 장신구 파는 모습이 뉴욕 첼시마켓을 연상시킨다. 맨허턴의 모마미술관과 화력발전소 개조해서 만든 런던의 테이트모던 현대미술관 생각도 났다. 버려진 건물 고쳐쓰기는 이제 우리나라에서도 흔한 일이 되었나 싶다.
카페 안에 나무를 심어서 자연을 실내로 끌어들인 효과가 있다
♧ 6월 29~7월 1일 지리산집 ♣
지난 주말 갔다온 시골 집 연못가 수국이 드뎌 피었다. 올해는 색갈이 더 진하고 곱다.
동네에 멋진 정자가 생겼다. 바람이 사통오달 그리 시원할 수가 없다. 나는 커피와 오미자차를 타고 과자를 챙겨가서 오후시간을 즐겼다
조선시대 부터 있던 지리산 동네다. 새마을 운동때 집을 일괄 고쳐서 다 동향인데 나는 남동향 집을 지었다. 평균연령대가 70대 중반이고 나는 이 동네에선 애기다 ㅎㅎ. 할머니들은 연세가 구십 가까운 분이 많다. 내가 이 마을에 정착하고 나서도 벌써 서 너분이 돌아가셨다. 담배도 술도 욕도 할 줄 모르는 우리 동네 할머니들, 부지런 바지런하게 일만하고 살아오신 분들이시다. 사는 날 까지 건강하시길 바란다.
오늘 점심은 시누 형님이 삼계탕 먹으러 오라한다한다. 나는 물에 빠진 고기를 안 좋아하지만 외국있는 망내시누도 들어오고 오랫만에 일남팔녀가 다시 모인다. 지난 4월에 우리 지리산 집에 함께 모이고 다 같이 모이는 건 처음이라 당연히 간다. 초복은 아직 멀었는데 닭 몇 번 먹다 보면 어느새 이번 여름도 지나가겠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