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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 브리즈번 문화센터(2)

박물관과 아트 갤러리

by 김별


#퀸즐랜드박물관

#사우스뱅크

#브리즈번컬츄럴센타


나의 브리즈븐 호스트였던 길리안은 전망대에서 브리즈번 컬추럴센타를 가리키며 시드니의 랜드마크인 오페라 하우스를 빗대어 시드니가 외형을 갖추었다면 브리즈번은 내모를 갖췄다고 농담했다.


그녀의 말대로 그 문화센터는 아트 갤러리와 여러 알찬 내용으로 꽉 차 있었다. 나는 혼자 따로 반나절을 그곳을 보는데 너무 많은 양을 보느라 벅찼다.

브리즈번도 5일째니 첨엔 어리벙벙해서 보던 도시가 이제 퍼즐 맞추기가 되어간다.

원래 여행에서 첫날은 동서남북 구분이 안 되지만 한 이틀만 주요 거리와 랜드마크를 숙지하고 나면 그 다음은 아주 쉽다. 그래서 길리안과 왔던 사우스 뱅크를 다시 가서 걸으며 두 번째 보니 ‘아하’ 소리가 나온다.


사우스뱅크

도심 한가운데 이렇게 멋진 무료 수영장이라니! 그 자체만으로도 놀라웠다. 수질관리도 잘되어 물도 투명하게 반짝이고 인공해변 규모도 적지 않다. 수영장은 2군데로 구분되어 있는데 한쪽은 모래사장도 깔려있고 다른 쪽은 깔끔하게 되어 있다. 더러 주위 잔디 위에서도 멋있게 누운 포즈로 선탠을 즐기는 사람들을 보니 찍고 싶은 본능이 치솟았지만 무례하게 폰카를 들이대진 않았다.


라이프가드도 있는 정식 수영장 느낌인데 나무가 둘러 쌓여있고 데크도 있어서 그늘 밑에 자리 잡고 돗자리 펴고 싶다. 특히 빈 평상을 보니 아깝단 생각이 들어 나는 잠시 누워도 보았다. 나중에 손주가 생기면 같이 오고 싶은 물놀이 공간이다.


수심은 그리 깊지않으나 구조원이 항상 지켜보고 있다
물은 바닷물이 아니라 담수다
나무가 우거진 공원을 따라 곡선의 벤치가 귀여운데 색깔도 연두다 ㅎㅎ
어느 공원에나 있는 큰 나무들이 그늘을 책임진다
모래찜질도 가능한 인공해변


브리즈번 마크

물놀이하는 아이들이랑 있는 젊은 아빠들 모습도 평화롭다




퀸즐랜드 박물관


시청 앞에서도 MOB, Museum of Brisabane을 보았지만 여기 퀸즐랜드 박물관이 더 마음에 와닿는다.


1862년부터 퀸즐랜드 박물관은 호주, 토레스 해협 제도, 그리고 태평양 전역에서 조상의 유해, 비밀 성물, 그리고 문화재를 동의 없이 수집해 왔습니다. 퀸즐랜드 박물관의 이러한 과거 관행은 원주민에게 있어 이 자료들의 중요성과 문화적 중요성을 존중하지 않았고, 그 중요성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했음을 인정합니다. 또한 원주민 직원들이 평등하게 대우받지 못했을 가능성도 있음을 인지합니다. 결과적으로 원주민 직원들에게 주어진 기회와 진로가 제한되었습니다.
퀸즐랜드 박물관은 이러한 행위와 원주민 공동체에 가해진 깊은 고통과 괴로움에 대해 사과드립니다. 이러한 트라우마는 오늘날에도 지속되고 있음을 인지합니다.
퀸즐랜드 박물관은 현장에 보관된 원주민 조상의 유해, 비밀 성물, 그리고 문화재를 임시로 관리하는 역할을 잘 알고 있습니다. 저희 원주민 팀은 이러한 조상, 비밀 성물, 그리고 문화재를 존중하고 품위 있는 방식으로 관리하게 되어 영광입니다.
지난 수십 년 동안 퀸즐랜드 박물관은 원주민들과의 협의를 통해 과거의 관행을 개선하고 그들의 조상과 문화재를 본국과 지역 사회로 송환해 왔습니다.
우리는 송환이 기본적인 인권이며, 퀸즐랜드 박물관이 과거의 불의에 대해 취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보상 행위임을 인식하고 있습니다.
퀸즐랜드 박물관은 원주민들과의 화해와 관계 재정립을 통해 치유와 정의를 향한 길을 만들어가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 사실 호주의 어디 관공서를 가더래도 이런 원주민에 대한 경의와 사과문이 적혀있다. 더러 많은 곳에는 이 장소는 이전 원주민들이 거주하며 무엇을 했던 신성한 곳이라는 문구도 있다.


지금은 백인들과 다른 유색인종들이 이 자리를 차지하고 살고 있지만 6만 5천 년의 유구한 역사를 지닌 호주대륙에 대한 존중을 표하는 것이 아주 짧은 이 나라 역사와 맞물려 과거와 현재를 잇는 다리처럼 여겨졌다.

그 다리가 튼튼할수록 미래로 가는 길도 밝고 안정적일 것이기에 보기 좋았다.


박물관을 보기 전에 사우스 뱅크를 걸어서 배가 고팠기에 박물관 카페테리아에서 라자냐와 샐러드 두 팩을 주문해서 먹는데 양이 좀 많았다. 하지만 관람하는 것도 만만치 않은 에너지와 시간을 필요로 하기에 먹어둬야 한다.


교복을 입은 학생들이 많았는데 아주 성실하게 관람을 하고 있어서 이전 교사 근성으로 내가 관심을 보이며 얘기를 하다 사진을 찍어도 되냐니까 인솔교사에게 물어본다.

그 샘은 내게 아 대단히 미안한데 학생들 사진 촬영은 금지되어 있다고 했다. 미안하다고 했지만 당연한 거다. 학생들을 보호하려는 교사의 마음이 충분히 이해되고도 남는다.

여기 여학생들의 화장도 전혀 하지 않은 맨 얼굴이 더욱 이쁘고 보기 좋았다. 이전 근무할 때 우리나라 아이들이 너무 입시와 성적으로 시달리면서 그 스트레스로 화장도 했던 것이 아닐까 싶어 안타깝게 여겨졌다.


퀸즐랜드 박물관에 교복 입고 온 학생들
호주는 금과 보석을 포함 각종 광물이 부요한 나라다
배가 고파 박물관 카페테리아에서 라자냐와 샐러드를 사서 먹었다
토끼를 낚아채는 순간의 독수리


엄청 많은 새들의 천국 호주
호주에만 서식하는 포유류도 많다

코알라는 에너지 필요량이 적다. 신진대사가 느리고 뇌의 크기가 작다. 하루에 2~3시간 동안 고무나무 잎을 먹지만, 큰 위가 잎 세포 내용물을 소화하고 독소를 제거한 후 다시 먹기 위해 20시간 더 휴식을 취해야 한다.

영상 관람하는 아이들 귀엽다



ANZAC DAY TODAY

박물관에서 안작에 대한 전시실을 먼저 보았다.


멜버른에서부터 보았던 안작 데이와 기념식을 여기 퀸즐랜드 박물관에 와서 더 자세히 보게 되었다. 애국적인 전몰용사들의 순교와 그들을 기리 기억하려는 마음이 느껴지지만, 개인적으로는 짧은 역사, 다민족 공동체인 호주란 나라의 구심점이 되게 하려는 국가적 정책과 의도도 느끼게 되었다고나 할까!


이하 박물관 전시내용들이다~


퀸즐랜드의 기억
사람들... 퀸즐랜드 주민... 약 500만 명의 우리 퀸즐랜드 주민들이 이 주를 고향이라고 부릅니다. 오늘날 퀸즐랜드 사람들에게 제1차 세계 대전은 먼 옛날처럼 느껴질 수 있지만, 그 유산은 항공부터 앤잭 데이까지 우리의 일상에서 생생하게 드러납니다.
자수 한 조각처럼 작은 것들도 인내, 노력, 그리고 배려에 대한 놀라운 이야기들을 드러낼 수 있습니다. 사람, 장소, 그리고 사건들의 경험은 겹겹이 쌓여 할아버지들이 싸우고, 이모들이 항의하고, 가족들을 기억하며, 우리가 삶을 개선하기 위해 노력했던 과거와 연결된 현재를 만들어냅니다.
'그들도 우리의 아들이 되었습니다'
갈리폴리는 멀리 떨어져 있지만, 매년 퀸즐랜드 사람들은 앤작 데이를 맞아 그곳으로 옵니다. 관광객도 있지만, 대부분은 순례자입니다.
작은 만과 가파른 절벽은 호주인, 뉴질랜드인, 그리고 터키인 모두에게 신성한 곳입니다. 갈리폴리에서 연합군은 승리하지 못했습니다. 그 작전은 끔찍한 실수였습니다. 여행객들은 우리 해안의 젊은이들이 격동의 소용돌이 속에서도 용기와 품위, 그리고 연민을 담아 최선을 다했던 모습을 보기 위해 이곳을 찾습니다. 차나칼레 사람들은 그들을 따뜻하게 맞아줍니다.
"피를 흘리며 목숨을 바친 영웅들이여! 이제 너희는 우호적인 나라에 누워 있다. 그러니 평화롭게 쉬어라. 조 왕조와 메흐메트 왕조는 우리 곁에서 그들이 누워 있는 곳과 다를 바 없다. 멀리서 아들들을 보낸 어머니들이여, 눈물을 닦으라. 너희의 아들들은 이제 우리 품에 안겨 있다. 이 땅에서 목숨을 잃은 너희는 이제 우리의 아들이 되었다!"
그들은 조용히 떠내려간다. '예배 순서'를 읽을 수 없을 만큼 어두컴컴한 가운데, 대부분은 일 년 내내 부르는 유일한 찬송가를 중얼거린다. 외로운 파이퍼, 마지막 편지, 그리고 침묵. 새벽녘의 첫 햇살이 앤작 광장, 커럼빈 록, 마운트 아이자 기념비, 그리고 모든 마을의 기념비 주변에 수천 명의 사람들을 비춘다. 10시에는 행진이 시작되고, 점심 식사 후에는 술과 운동이 이어진다. 더 이상 "짐을 싸라, 19세"와 "케산"을 부르는 사람은 없지만, 어딘가에서 "Only 19"와 "케산"이 들릴 것이다. 4월, 앤작 데이. 우리는 100년 넘게 이 일을 해 왔다.
잊지 말자.
제1차 세계 대전은 퀸즐랜드 주민들의 애도 방식을 바꾸어 놓았습니다. 전쟁 전 빅토리아 시대 전통은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을 공개적으로 다루었습니다. 시신은 성대한 의식을 통해 매장되었고, 유족들은 엄격한 사회적, 종교적 예절을 지키며 애도했습니다.
이 전쟁으로 6만 명이 넘는 호주인이 목숨을 잃었고, 해외에서 복무했던 이들 중 단 한 구만이 고국으로 돌아왔습니다. 많은 사람이 전사하고 매장할 유해가 없게 되자 애도의 전통도 바뀌었습니다. 가족들은 개인적으로 애도했고, 전사자들을 기리는 새로운 방식들이 생겨났습니다.
전시 대포
목축과 양모, 금광개발등을 일궜던 호주 노동자들 노동자연합
평화를 기원하는 자수와 다양한 퀸즐랜드, 그리고 안작 기념 전시물
사탕수수 노동자로 데려왔던 남태평양 주민들에 대한 이야기


그들은 노동의 필요에 의해 데려와졌지만
나중 백호주의에 밀려
다시 왔던 자신의 섬으로 되돌려지기도 했다.
그에 대해 반발하는 공동체 이야기와
그들의 정체성에 대한 이야기가 전시되어있다.



남태평양 섬 주민들과 설탕에 대한 복잡한 이야기


1863년, 배들이 태평양에서 퀸즐랜드에 새로 조성된 설탕 농장으로 사람들을 실어 나르기 시작했습니다. 설탕 생산을 통해 부를 축적하려는 식민지 시대의 일환으로, 태평양 섬들은 노동력의 원천이 되었고, 섬 주민들은 세계 농장 경제에서 상품처럼 착취당했습니다
그러다 호주정부는 1901년 계약 노동을 종식시키고 비유럽인의 추방을 의무화했습니다.
많은 남태평양 섬 주민들에게 고향으로 돌아가는 것은 어렵고 위험했습니다. 기꺼이 고향으로 돌아가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수십 년간 고향을 떠나 살면서 여러 차례 계약을 맺고 전통적인 삶과 신념에 반하는 기독교와 관습을 받아들이는 등 많은 사람들이 그러기를 원하지 않았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다른 문화권과 결혼하여 가정을 꾸렸고, 그들의 자녀들은 퀸즐랜드에서 태어나 교육을 받았습니다. 그들의 삶의 방식, 사회적 관계, 심지어 식습관까지 변했습니다.
1901년부터 매케이, 록햄프턴, 번다버그의 남태평양 섬 주민들은 정부의 추방 명령을 뒤집거나 추방법 적용 면제를 더 많이 허용해 달라고 로비 활동을 벌였습니다. 퀸즐랜드 카나카 선교회와 퀸즐랜드 국내외의 다른 단체들은 반대자들을 지지하여 정부의 조치에 대한 상당한 반대를 불러일으켰습니다.
1902년, 3,000명이 넘는 남해 섬 주민들이 강제 추방에 반대하며 에드워드 7세에게 청원서를 제출했습니다. 이 청원은 대부분 무시되었지만, 남해 섬 주민들이 정치적으로 민감하고 스스로 행동에 나설 수 있음을 보여주었습니다.
강인함과 회복력은 우리 자신을 묘사하는 단어이며, 우리 호주 남해 섬 주민, 즉 남해 사람들은 이러한 자질을 진정으로 구현하고 있습니다. 우리 공동체는 19세기 후반 퀸즐랜드의 사탕수수와 면화 농장에서 강제 노동과 비강제 노동을 강요당하고, 강제로 끌려가고, 강제되지 않은 채 강제 노동에 동원되었던 남해 섬 주민들의 후손입니다. 이 어두운 역사는 통제된 인구 이동, 착취, 그리고 차별을 수반합니다. 한때 '잊힌 사람들'로 불리며 소외된 존재로 여겨졌지만, 호주 남해 섬 주민들은 고유한 문화적 정체성을 가지고 있으며 오늘날에도 여전히 이곳에 살고 있는 자랑스러운 공동체입니다.
정말 강인함과 회복력이 놀랍습니다.



아트 갤러리

브리즈번 항구의 이전 모습과 초기 정착민들을 그린 그림
다양한 나라 전시물이 있다






문화센타 건물 벽의 포스터
오래된 사우스 뱅크 역 모습


역건물 벽에 걸린 원주민 사진들




퀸즐랜드 주립도서관


주립 도서관 건물도 옆에 있다
도서관 안팎
농아들의 춤에 대한 전시도 있고
도서관 한켠 쇼파에서 세상 편하게 잠든 사람도 있다
도서관 쇼파에서 바라본 강 풍경
도서관 어린이실 코너 그림들


이 그림은 검은색 바탕에 빨간색과 노란색 글씨로 'VOICE'라는 단어가 새겨져 있으며, 이는 호주 원주민 국기의 색깔을 나타낸다. 'Ol'은 노란색으로, 'Aussie Aussie Aussie OI OI OI'라는 구호를 나타낸다. 이 그림은 2023년 10월 14일에 열린 연방 의회의 목소리 국민투표에 대한 응답으로 제작되었다.


오른편 사진은 사진작가가 그 시대적 배경을 잘 나타내주는 초기 정착민이었던 자신의 가족 사진들이다.


역사와 그림, 사진들로 많은 이야기가 있는 곳



아트 갤러리 트리엔날레 전시관


호주는 유럽이 아니라 인도양과 태평양을 끼고 아시아에 위치하고 있다.

해서 아시아 태평양 각국의 작품이 다수 전시되어 있다.


아시아 태평양 트리엔날레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코인슬랜드 미술관과 현대미술관에서 동시에 개최되는 제11회 아시아 태평양 트리엔날레는 호주, 아시아, 태평양 지역 작가들의 신작과 최근 작품을 선보이며, 다양한 형태의 지식과 예술에 대한 접근 방식을 고찰합니다. 태평양 트리엔날레 시리즈는 30년 이상의 경험을 바탕으로 예술가와 창작자들을 통해 사회·문화적 다양성을 반영합니다.
이 전시는 호주, 아시아, 태평양 지역의 복잡하게 얽힌 문화적 풍경을 대표하는 시급한 지역적 및 세계적 문제에 대한 다양한 관점을 탐구합니다. 또한, 예술가들이 취약성을 어떻게 인식하고 문화, 공동체, 유산, 땅, 그리고 서로를 치유하고 보살피는 시간을 만들어내는지 탐구합니다. 이러한 소통은 공감과 애도의 행위부터 부흥, 비판, 사회적 행동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방식으로 표현되며, 예술가들은 우리가 이해하는 바에 대한 섬세한 통찰력을 지속적으로 제공합니다. 공존의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이들의 작품은 권력 역학, 자연 및 도시 환경, 이주와 노동에 대한 세대 간 경험을 다루며, 스토리텔링, 모티프, 소재, 기법에 대한 정교한 접근법을 발전시킵니다.
이번 트리엔날레에서는 원주민, 소수 민족, 그리고 디아스포라 문화가 중요한 역할을 하며, 이 지역에서 활발하게 활동하는 집단적이고 퍼포먼스적이며 공동체 중심적인 예술 활동을 통해 프로젝트가 더욱 풍성해집니다. 공동 기획 및 공동 개발된 프로젝트들은 특정 맥락에 초점을 맞춰, 국제적으로는 보기 드문 방식으로 이러한 장소들의 다양성과 혁신을 조명합니다.



'붉은 별을 향하여 표류하다'(2022)는 자그디시 목탄이 가족사를 탐구하는 현재 진행 중인 프로젝트로, 가족의 기록 보관소에서 가져온 사진, 사진, 사회주의 문학 작품, 공산주의 관련 자료, 교육 자료 등을 초상화와 함께 결합합니다. 이 탐구의 핵심은 어린 시절 도시로 이주하여 생계를 위해 탕카 화가가 된 아버지의 여정입니다. 타만 공동체의 많은 젊은이들에게 여성들이 카펫 공장에서 일하는 동안 탕카 화가로 일하는 것은 생존을 위한 몇 안 되는 선택지 중 하나였습니다. 목탄의 아버지는 억압받는 사람들의 사회정치적 의식이 고조되던 시기에 탕카 화가로 활동했습니다.


많은 아디바시 노동자 계층 사람들처럼 탕카 화가였던 목탄의 아버지는 1990년대 공산주의 이념에 매료되었습니다. 마르크스-레닌주의와 마오쩌둥주의는 네팔에서 억압받는 사람들의 사회정치적 의식을 고취하는 강력한 동력이 되었고, 그들을 행동으로 이끌었습니다. 대규모 시위와 무장 저항을 통해 수천 명의 순교자가 봉건적이고 계급적인 구조를 해체하고 연방제, 민주적, 포용적이고 세속적인 국가를 건설하기 위해 목숨을 바쳤습니다. 아버지의 투쟁을 기리는 목탄의 작품은 향수의 순간, 복잡하게 얽힌 기억, 그리고 궁극적으로 소외된 공동체, 급성장하는 공산주의 운동, 그리고 원주민 활동 사이의 깊은 연관성을 보여줍니다.


조이뎁 로아자

방글라데시 남동부에 위치한 치타공 구릉지대에는 11개의 줌머족, 즉 토착민이 살고 있습니다. 조이뎁 로아자의 작업은 자연환경의 수호자로서 그들이 땅과 맺는 관계를 중심으로 이루어집니다. 트리푸라족 출신인 그는 독특한 구상화가 주를 이루지만,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는 그의 작품은 퍼포먼스 아티스트로서의 작업과도 교차합니다. 로아자는 자연과 공생하는 민족의 관계, 그리고 이 지역의 토지와 인권에 대한 험난한 역사를 표현하는 강력하고 시적인 목소리를 냈습니다.


20세기 중반, 치타공 구릉지대 인구의 약 90%가 토착민이었습니다. 수십 년간 '정착민'들이 이 지역으로 이주해 온 지금은 인구의 약 절반만이 토착민입니다. 2024년작 '토착민의 미래' 시리즈는 전통 토지에서의 쫓겨남과 그에 따른 마을과 문화의 상실을 다루며, 특히 로아자가 비토착민들이 전통 의례를 촬영하고 방해하는 모습을 목격한 데서 영감을 받았습니다. 이 계획되지 않은 구도 속에서 우뚝 솟은 줌마족의 형상들은 자연과 함께 변형되고, 개미처럼 떼 지어 정착민, 관광객, 언론인들이 발치에 모여들고, 헬리콥터와 드론이 하늘을 맴돕니다. 로아자에게 그의 민족, 문화, 그리고 땅은 그가 미래로 지켜나가고자 하는 대상일 뿐만 아니라, 보이지 않는 힘의 원천이기도 합니다.


아트 갤러리 일층 전시물



문화센타 통로 피아노를 길 가다 한번 두드려보는 아빠와 아이들

농아 원주민들의 춤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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