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 머리의 K 선생님 (7)

들길을 함께 걸었던 사람

by 김별

중학 시절을 떠올리면, 얼굴보다 먼저 온도가 떠오르는 선생님들이 있다.

그중에서도 K 선생님은, 아마도 내게 가장 오래 남은 분일 것이다.


시골 학교로 오던 선생님들은 대개 초임 발령이었다.

과학 선생님과 사회 선생님—두 분 다 깔끔하고 똑 부러지는 처녀 선생님들이었고,

그중 사회를 맡았던 K 선생님은 성격이나 분위기로 유독 내 마음을 차지했다.


당시는 아이돌도, 연예인 굿즈도 없던 시절이었다.

총각·처녀 선생님들은 자연스럽게 최고의 관심사이자 화제였다.

나는 그 무렵부터 사람을 선악이나 우열로 가리기보다

사람마다 다른 다양성과 뻬르소나에 더 마음이 끌렸던 것 같다.


영어 선생님은 키가 작은 대신 굽 높은 구두를 신고 다녔고,

아이들을 혼낼 때면 카리스마가 폭발했다.

남녀공학이던 학교에서 남학생들까지 벌벌 떨 정도였다.

날씬한 몸매에 늘 세련된 옷차림—

“줄넘기를 많이 해서 그렇다더라”,

“남편이 꼽추라더라” 같은 소문이 돌았고,

그 소문들은 나를 웃기기보다 마음 한편을 짠하게 만들었다.


가정 선생님은 대구가 친정이셨는데,

같은 교사 집안 딸이라는 이유로 유독 나를 살뜰히 챙겨주셨다.

키가 크고 늘 바지를 입으셨고, 말씨와 태도가 반듯했다.

얼굴에 얽은 자국이 조금 남아 있었지만

그래서 오히려 더 따뜻하고 인간적으로 느껴졌다.

나는 완벽한 사람보다 개성이 있거나

결이 고운 사람에게 더 마음이 가는 편이었다.




함께 걷던 들길


K 선생님은 우리 집 바로 뒷집에 사셨다.

담장도 없는 독채였고, 마당을 건너면 곧바로 선생님 댁이었다.

그 거리 덕분이었을까, 나는 선생님과 함께 보내는 시간이 많았다.


어느 겨울밤엔 선생님이 무슨 마음에서인 지

“교회 한번 가볼래?” 하셔서 읍내 교회에 다녀왔다가

늦게 돌아와 꼭 껴안고 자기도 했고,

날씨 좋은 날엔 퇴근 후 함께 마을 뚝길을 걷기도 했다.

때로는 바밤바 아이스크림을 사서 먹으며 걷곤 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젊은 처녀가 혼자 마을을 걷는 일이 눈에 띄었기에

일부러 나를 데리고 다니셨던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그때의 나는 그저 선생님이

같이 있으면 편하고 좋은 사람이라고만 느꼈다.


K 선생님은 긴 머리였다.

수수하고 갸름한 얼굴, 마른 체형.

옷을 대충 입어도 이상하게 멋이 났다.

하지만 솔직히 말하면—조금 칠칠맞은 구석도 있었다.


급히 바른 파운데이션이 밀려 있거나,

머리칼 몇 올이 얼굴에 붙어 있거나,

블라우스 리본이 삐뚤어졌거나,

치마가 돌아가 있는 날도 있었다.

그런 모습으로 어색한 표정에 함박웃음을 터뜨리면

조금 덜렁대 보이기도 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그게 좋았다.


수업 시간,

시선을 45도쯤 위로 두고 한 발을 살짝 내민 채

상체를 조금 뒤로 젖혀 역사 이야기를 하실 때면

선생님은 정말 ‘있어 보였다’.

그건 외모가 아니라 지적인 매력이었다.




노래와 인기, 그리고 분홍 립스틱


선생님은 산책을 하며 자주 양희은의 노래를 흥얼거렸다.

“들길 따라서—”

나도 옆에서 따라 불렀다.

선생님 방에는 LP판이 많았고, 자주 노래를 틀어 주셨다.


선생님은 학교에서도 인기 최고였다.

특히 고등학생 오빠들이 유난히 좋아했다.

학생들이 집에서 캐 온 감자며 채소를

소쿠리째 들고 오는 날도 있어

선생님이 다 감당을 못 하기도 했다.


아버지는 웃으며 내게 물었다.

“도대체 K 선생님 인기 비결이 뭐고?”

나는 그냥 말했다.

“아이들 마음을 잘 아시고, 수업이 재밌어요.”

그게 전부였다.

사실, 그게 전부이기도 했다.


지금도 선생님의 연한 분홍색 립스틱,

블라우스와 치마, 위에 살짝 걸친 스웨터,

그리고 은은한 화장 냄새가 또렷하다.

전라도 쪽 고향이라 표준말에 가까운 억양도 참 좋았다.

시원한 성격과 항상 웃고 있는 눈—

나는 그 선생님을 그 온도 그대로 기억한다.


선생님이 약사인 남편과 결혼한 뒤

세월이 흘러 마흔을 넘겼을 무렵,

한 후배에게서 선생님을 찾아갔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많이 늙으셔서 예전 모습이 없더라”는 말과 함께

집에서 브라도 안 하고 대충 입은 모습이 실망스러웠다고 했다.

나는 그 말을 듣고 마음이 조금 짠해지면서도,

그래—선생님은 그럴 수 있어,

내가 아는 선생님은 그렇지, 하고

내 기억 속 변함없는 모습에 조용히 안도했다.





현관문 너머에서


K 선생님과 함께 선명하게 남은 장면이 하나 더 있다.

어느 날, 뒷집이라 훤히 보이던 현관문에서

고등학생 오빠 한 명이 나오는 걸 보았다.

공부 잘하고, 키 크고, 잘생기고,

교련 시간엔 연대장까지 하던 오빠였다.


중학생이던 나는

어느 날 운동장에서 그 오빠와 우연히 마주친 적이 있다.

안경 너머로 나를 보며 싱긋 웃던 그 순간—

지금 말로 하면 ‘심쿵’이었다.


그 뒤로 먼발치에서만 봐도

오빠는 늘 멋져 보였고,

조무래기 얼굴 까만 중학생들은

아예 내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오빠는 집이 멀어

학교 마을 동네에 방을 얻어 자취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

동네가 갑자기 소란스러워져 가보니

사람들이 리어카에 누군가를 싣고 달리고 있었다.


“00가 농약을 먹었대.”

그 오빠였다.


이유는 아무도 몰랐다.

소문도, 설명도 없이—

그렇게 그는 꽃도 피지 못한 채

봉우리 그대로 지고 말았다.


나는 선생님 댁에서 나오는 그 오빠 모습을 마지막으로 보았기에

가끔 그 장면이 떠오르기도 했지만,

리어카의 모습이 너무 강렬해

기억은 오래도록 가라앉아 있었다.


그날,

오빠는 선생님께 무엇을 말하러 갔을까.

나는 끝내 묻지 못했다.

그 질문은 선생님께도 너무 아플 것 같았으니까.




다시 걷고 싶은 길


지금 생각해 보니

선생님과 나의 나이 차이는 그리 크지도 않다.

언젠가 친구 Y와 함께 선생님을 찾아가

그때 함께 걷던 들길 이야기를

조심스레 꺼내보고 싶다.


선생님의 환한 웃음도,

그 온기도

다시 한번 느껴보고 싶다.


아마 그리하면

내 십 대의 기억이 다시 한번 싹트고,

그 기억을 거름 삼아

내 인생 2막도 조금 더 단단해지지 않을까—

나는 그렇게 믿는다.


당시의 나는 교사가 될 줄도, 될 생각도 없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 돌아보니 K 선생님은,

내가 닮고 싶었던 교사의 롤 모델중 첫 모습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무엇보다 학생들과 격의 없이 어울리며,

따뜻하고 편안한 친구 같은 교사가 어떤 모습인지

그 본을 처음 보여주신 분이 바로 K 선생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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