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의 정답은 무엇인가 (18)

영어교사로서의 진언

by 김별


교육에는 오답은 있어도 정답은 없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아이가 다니던 대안학교를 설립한 교장 선생님의 말이었다.


교육은 ‘백년지대계’라는 큰 방향만 있을 뿐,

그 안의 수많은 선택들은 시행착오를 거치며 조금씩 고쳐 가야 하는 일인지도 모른다.


2007년, 큰아이는 대안학교에 입학했다.

1학년 때 아이는 무거운 배낭을 메고 한 달 동안 통일전망대까지 걷는 국토순례를 했다.

벌레를 무서워하던 아이는 너덜 해진 츄리닝 바지를 입고 밥을 해 먹으며 산을 넘고 강을 건넜다.

월악산과 설악산등 '악'소리나는 바위산을 넘는 동안 아이의 얼굴은 새카매졌고,

몸과 마음은 눈에 띄게 단단해졌다.


대장정을 마친 날, 아이는 큰 울음을 터뜨렸다.


그 울음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정확히 알 수는 없었지만,

마치 아이 안을 오래 누르고 있던 무거운 돌덩이가 치워진 것처럼 여겨져서 나는 그저 크게 안도했다.


형을 따라 학교를 드나들던 둘째도 2년 뒤 같은 대안학교 진학을 원했다.

둘째는 학교생활도 원만했고 성적도 좋아 인문계를 갈 거라 생각했지만, 그의 선택을 존중했다.

이미 형아 학교분위기에 익숙했던 둘째는 입학하자마자 축제 사회를 보고, 축구를 하며 친구들과 잘 어울렸다.


그러나 국토순례를 마치고 돌아온 아이의 얼굴은 어딘가 달랐다. 멍하니 혼이 빠진 사람 같았다.


학교에서는 우울 증세가 보인다고 했다.

믿기 어려웠다. 친구 관계도 좋고 성적도 상위권이던 아이였기 때문이다.

나는 아이를 데리고 와 당분간 학교에 가지 않아도 된다고 했다.

그때 나는 다시, 바람 앞의 촛불 같은 엄마가 되었다.


병원에서 받은 약은 아이가 스스로 거부했다. 대신 햇빛 아래 걷기, 운동, 음악 듣기 등 자신이 찾은 방식으로 마음을 돌보았다. 지금 생각해도 부모가 대신해 줄 수 없는 부분을 아이 스스로 감당해 준 것이 고맙고 대견할뿐이다. 몇 달의 휴식 끝에 아이는 학교로 돌아갔다.


졸업 후 한참이 지나서야 알게 된 사정이 있었다.

전국에서 모인 다양한 배경의 아이들 속에서, 둘째는 미묘한 따돌림을 겪었다.

모범생이자 FM 성향이던 아이는 술을 마신 채 국토 행군하는 친구들과 갈등을 겪었고, 조장으로서의 책임감은 오히려 아이를 더 고립시켰다.

결국 아이는 아프면서 자랐고, 스스로 그 시간을 통과해 졸업했다.


나는 두 아이를 대안학교에 보낸 선택을 후회하지 않는다.


성인이 된 지금 아이들 역시 같은 생각이다.

그렇다고 해서 제도권 교육의 대안으로 선택한 대안학교가 모든 문제의 해답이 될 수는 없었다.

일반학교와 대안학교 모두 장단점이 있고, 결국 중요한 것은 ‘각자 아이에게 무엇이 더 맞는가’ 일 뿐이다.


나는 공립중고등학교 교사였지만 대안학교를 보낸 학부모로서 양쪽의 장단점을 모두 겪어보았다.


교육에는 여전히 정답이 없고, 다만 조금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가려는 노력만 있을 뿐이었다. 그러니 각자는 어느 기관이나 어느 제도를 믿기 보다는 내게 금쪽같은 아이를 위해서 각자에게 맞는 쪽으로 선택해가야할 뿐이라고 생각한다.


아마 지금 시대라면 엄마가 집에 있고 가능하다면 홈 스쿨링도 좋을 듯 하다. 예체능계열은 학원을 보내고 들을 수 있는 인강도 많고 검정고시로 중고등학교 자격증은 쉽게 딸 수 있다. 그리고 사교육비 투자대신 아이들과 해외 여행 체험 교육을 한다면 글로벌 시대에 글로벌 청년으로 커 가기에 더 좋을 수도 있다.


핵심은 어떻게 아이들을 똑같은 획일적 입시경쟁으로 내몰면서 장래 취업에도 큰 의미가 없는 학벌을 위해 부모자식이 다 개고생을 하느냐 보다는 내 아이에게 가장 적합한 소질과 특기를 발견하여 일찌감치 그 쪽으로 오리엔테이션 하여 도와주는게 더 효율적이지 않을까 하는 거다. 이른바 독일식 조기 진로지도다.


날때부터 달리기를 잘하는 아이, 숫자에 뛰어난 아이, 미적감각이 남다른 아이, 언어적 능력이 뛰어난 아이, 공간감각이 뛰어난 아이 아이들은 각자 다 다르다.





영어교육에 대하여 – 전공 교사로서의 생각


유학 생활 5년의 경험이 있었던 나는 영어교사가 된 이후에도 어학 공부를 멈추지 않았다. 수업 시간 가능한 한 영어로 수업을 진행했고, 그것은 교육 방침이기도 했고, 또한 교사로서의 책임이기도 했다.


한때 우리 사회는 영어몰입교육을 열렬히 추종하던 시기가 있었다. 그 과정에서 영어교사들은 해외연수를 받았고, 나 역시 2009년과 2013년 두 차례 6개월 영어 심화연수를 다녀왔다.

필리핀, 더블린, 런던, 뉴욕에서의 연수는 영어 실력향상 못지않게 문화 체험의 시간이었다.


언어는 결국 문화다.


한글을 가르치는 교사가 된장과 고추장 맛을 모른 채 단어만 가르친다면 어색하듯, 영어 역시 그 문화 안에 잠기고 살아 보아야 살아 있는 언어가 된다. 그런 의미에서 여건이 허락된다면 역사나 미술등 다른 전공 교사에게도 적정기간의 현지 연수는 필요하다고 본다.


그리고 영어를 잘하려면 무엇보다 먼저 영어와 친해져야 한다.


나는 중학생 때 미국 펜팔 친구와 편지를 주고받으며, 멀기만 하던 세계가 갑자기 가까워지는 경험을 했다.

그 후 영어는 내게 단지 시험이나 교과공부가 아니라 하나의 관계와 문화가 되었다.


노래를 좋아하면 팝송으로, 읽기를 좋아하면 영어책으로, 시사에 관심이 있으면 영어 뉴스나 신문으로 접근하면 된다. 요즘은 드라마, 유튜브 등 자료도 넘쳐난다.

중요한 것은 자기에게 맞는 영어와 친해지는 방식이다.


Make friends with English in your own way.


내 주위에서 가끔 할아버지 챤스를 줄 수 없어 손주를 값비싼 영어유치원에 보내지 못해 미안하다는 말을 듣는다. 나는 그럴 때마다 모국어가 충분히 자리 잡지 않은 아이가 외국어를 깊이 제대로 구사하는 경우를 나는 본 적이 없다고 분명히 말해 왔다.


언어는 사고력의 그릇 위에서 자란다. 어휘, 논리, 상상력은 모두 모국어에서 출발한다.

그러니 모국어 장착에 먼저 주의를 기울여야한다.


그리고 모국어 어휘를 키우는 가장 좋은 방법은 책 읽기다.


어릴 때는 부모가 읽어 주면 된다. 책을 통해 아이는 일상 대화를 넘어서는 사고의 언어를 얻는다. 그 힘이 결국 외국어 학습으로도 이어진다.

모국어가 단단하지 않은 상태에서 외국어 몇 마디를 흉내 내는 것을 ‘잘하는 영어’로 착각하는 것은 어리석고도 위험하다. 그것은 언어 능력이라기보다 모방에 가깝다. 영어를 일찍 접해 친숙해지는 것은 좋지만, 그 정도는 가정에서도 충분히 가능하다 본다.


영어는 글로벌 시대에 필요한 하나의 도구다. 그러나 모든 아이가 같은 강도로, 같은 방식으로 외국어에 몰입할 필요는 없다. 번역 기술이 발달한 지금은 더욱 그렇다.

나는 여전히 영어를 ‘세계로 나아가기 위한 여권’이라 생각하지만, 그 여권을 준비하는 방식이나 비중은 사람마다 다를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나에게 외국어는 여행과 연결된 필연이었지만, 누군가에게는 음악이나 과학, 혹은 몸을 단련하는 일이 더 중요할 수 있다. 교육이 해야 할 일은 모든 아이를 한 방향으로 밀어 넣는 것이 아니라, 각자의 속도와 재능을 알아보고 돕는 일이 되어야 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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