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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별 Jul 10. 2023

몽골 8 ~카라코롬 칭기즈칸의 도시

옛 수도의 영화를 가늠케 하는 에르덴조 사원

 2023년 6월 20일


엘승 타사르해 미니 사막 가는 길에 그 옛날 제국의 수도였던 카라코롬을 들렀다.

도시는 미니 사막 가기 전 서쪽으로 약 80km 떨어진 곳이다. 몽골에서 이 거리는 사실 아무것도 아닌 비교적 가까운 거리인데 설사 더 먼 거리였다 해도 카라코롬이 우리나라의 경주 같은 곳이니 꼭 갔을 것이다. 그런데 실제 가 보니 경주같이 그런 유적지가 별로 없어서 예상밖이었고 기대치에는 못 미쳤다.


여행은 어차피 다른 것을 보면서 나를 더 찾는 여정이다. 그래서 타산지석이라 하는데 그러나 다른 문화를 제대로 이해하려면 그 공간의 다른 시간대, 즉 그들의 역사를 알면 더 잘 보이는 법이다. 공간이 씨줄이라면 시간은 날줄로 엮이는 것이니 그 시공간의 날줄과 씨줄의 접점에 초점을 맞추고 봐야 한 폭의 그림이든 뭐든 제대로 보일 것이다.



13세기 아시아는 물론이고 러시아와 동유럽을 지나 서유럽까지 진격하며 세계 대 제국을 만들어 온 세상을 벌벌 떨게 했던 그 위상의 흔적을 볼 수 있을까 잔뜩 기대하며 갔었다.

그러나 생각보다 박물관 규모는 작았고 그리고 사원도 사회주의 혁명의 여파로 일어난 종교 탄압의 결과 많이 훼손되고 겉모습만 유지한 채로 남아 있었기에 아쉬움이 있었다. 그러나 남은 흔적들로나마 제국의 거대한 사원의 규모나 화려함을 짐작할 수는 있었다.


옛 수도 카라코롬은 과거의 영화도 잊고 한 동안 잊혔다가 1940년대에 유물들이 발굴되자 재조명되어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특별히 카라코룸 유적은 칭기즈칸과 오고타이 시대 제국의 번영의 출발을 보여주는 곳이니 제국의 영광스러운 시간들에 대한 흔적인 셈이다.


에르덴조 사원은 몽골에서 가장 큰 라마 불교 사원인데 16세기에 건축을 시작했으나 300년이 지나도 다 완성하지 못했는데 거대한 벽에 15m마다 불탑이 세워져 있었다. 

현존하는 이 불탑들의 모습과 사원의 둘레가  지금도 당시 사원의 규모를 짐작할 수 있는 가장 큰 단서가 된다. 불탑의 수가 108개니 불교에서 말하는 인간의 108 번뇌를 나타낸다. 전성기 때 이 큰 사원 안에 60~100개 정도의 작은 사원들과 300개의 게르에 1000명 정도의 수도승들이 살고 있었다 하니 그 규모를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사원 앞에서 전통 의상 '델'을 입은 가족을 만날 수가 있어 잠시 사진도 같이 찍었다. 몇 번 이곳에 와 보셨던 김샘 말로는 카라코롬 방문객들에게 보여주기 위함인 지 전통 옷을 입은 사람들을 사원 앞에서 자주  볼 수 있다 한다.


카라코룸은 칭기즈칸이 1220년 경에 머무르며 중국 원정을 위한 본거지로 삼아 몽골 제국의 시작을 열었던 곳이다. 그리고 그 후 칭기즈 칸의 셋째 아들 오고타이가 이곳을 1235년에 몽골제국의 수도로 삼았다

칭기즈칸은 그의 아들 중 첫째와 둘째가 대칸 자리를 두고 격하게 싸우니 그중 지적이며 온건하던 셋째 아들에게 대칸의 자리 황위를 물려주었다. 오고타이 칸은  '검은 자갈'이란 뜻의 카라코룸에 수도를 정하고 아버지 칭기즈 칸 때부터 통치의 조력자로 함께 해왔던 야율초재를 초청하여 제국을 중국식 행정 조직으로 개편해서 통치하게 하는 등 중요한 역할을 맡겼다. 


 카라코롬은 약 36년간 몽골 제국의 수도였다가 나중 쿠빌라이가 대원제국을 세우고 수도를 1271년 카라코롬에서 베이징으로 옮겼다. 그 후 도시는 청나라 강희제에 의해 철저히 파괴되었고 사원도 폐허가 되었다. 혹자는 쿠빌라이 칸이 소박한 신혼집 같은 카라코롬을 뒤로하고 수도를 베이징으로 옮기면서부터 쇠락의 길이 시작되었다고도 한다.






여기서 잠깐 몽골의 역사를 짚고 넘어가자.

결국 몽골의 역사는 칭기즈칸과 그의 4 아들들, 그리고 손자 세대까지 대략 160년 동안 가장 강성했었다. 제국은 그 시대에 전 세계를 그 말발굽아래 벌벌 떨게 했다.


비교적 온건한 셋째 아들 오고타이가 대칸이 되었으나 불행히도 그는 후일 주색에 빠져 힘을 잃었고 그 후 대칸 자리는 4 째 아들 계보로 넘어간다. 4 째 아들의 차자인 쿠빌라이는 원래는 별로 눈에 띄는 후계자가 아니었으나 그의 형 뭉케가 남송 원정 때 사망하자 모든 이목이 쿠빌라이에게 집중되었다. 그러나 그의 막냇동생 아릭베케가 자신의 지지자들을 모아놓고 쿠릴타이를 열고 대칸임을 먼저 선언해 버리는데 이에 킵차크, 오고타이. 차카타이 3 한국이 아릭베케 편에 서고 나머지 일한국만 쿠빌라이를 지지했다. 


그렇게 두 칸이 싸우다 마침내 쿠빌라이가 동생을 굴복시키고 도읍을 베이징으로 옮기고 1271년에 국호를 ‘원’이라 칭했다.


여기서 흥미로운 한 가지 사실은 원래 유목국가인 몽골의 풍습으로 막내가 아버지의 유산을 물려받는 것이 관습이라 한다. 그래서 게르에서 신성시하는 불도 막내가 관리하고 막내는 가장 오랫동안 부모 곁에 머물다 부모가 돌아가시면 모든 걸 물려받게 된다. 

결국 칭기즈칸의 대권도 막내인 넷째 아들에게로 넘어가고 그 아들의 막내아들, 즉 칭기즈칸의 막내손자인 아릭베케에게 3 한국이 다 지지를 하는 것도 그런 몽골의 풍습과도 관련이 있지 아닐까 추측해 봤다. 물론 또 다른 다양하고 복잡한 인과관계가 있을 수 있으나 장자상속 우대권이 있는 다른 나라와 비교해 보면 차자도 아닌 막내아들이 승계하는 몽골풍습은 우리에게 유목민의 특성을 고려해서 이해와 설득이 되기도 하지만 약간 의아스러운 면이 있기도 하다.






대원제국은 고려에 이어 일본 정복까지 했다. 그래서 지금 내가 사는 마산에 몽고 간장과 몽고정이 있고, 제주도에는 그들이 말을 두고 일본 원정의 기지로 삼았기에 오늘날 제주 말이 유명해지게 되었다. 이렇게 역사를 알면 부분적으로 알던 것의 퍼즐이 맞춰지니 재미있고 다른 문화를 더 깊이 제대로 이해하게 된다.

쿠빌라이 칸은 1274년과 1281년 고려와 연합하여 두 차례나 일본 정벌을 꾀 했으나 신이 말린 건지 바다의 풍랑으로 다 실패했다.  

개인적 생각으론 그 광대한 제국의 땅을 두고 굳이 뭐 하러 바다 건너 그 작은 섬에 까지 가려했을까? 인간의 성취 욕구도 욕망의 일종이니 끝이 없는 건가? 싶기도 하다.


카라코롬, 역사 속에 묻혀버렸던 제국의 옛 수도가 1948년 러시아의 고고학자에 의해 발굴되어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었다. 그리고 대칸들의 역사에 대해서도 그림과 설명으로 잘 전시되어 있었기에 여행자는 물론 자국인에게도 역사공부가 될 만한 곳이라 여겨졌다. 

발굴된 유적지의 유물은 제국의 영화에 비하면 별로 볼 것이 없었기에 아마도 땅 속에 묻힌 것의 빙산의 일각이 아닐까 하고 상상을 해 보았다. 


사실 칭기즈칸은 그의 죽음을 알리지 못하게 했고 도굴 방지를 위해 무덤을 만든 천 명의 사람도 다 죽였다 한다. 원래 봉분을 쌓지 않는 그의 몽골식 무덤 위에는 말들이 밟아서 흙을 고르게 하여 아무도 찾지 못하게 하였다 하니 초원으로 덮인 그의 무덤은 영영 발견되지 않을 것이고 그들이 믿는 신 탱그리처럼 그도 바람처럼 살다 그렇게 무덤도 남기지 않고 형체 없는 바람으로 돌아갔으리라 생각해 봤다.


그렇게 역사의 자취와 흔적을 더듬으며 카라코롬을 보고  점심으로 삼겹살을 구워 먹으려고 적당한 초원의 장소를 물색하며 가는데 부슬부슬 비는 나린다. 


전 날 하늘이 열일을 해서 윈도 바탕화면을 보여주던 곳으로 가니 바람도 불어 다시 강변 옆에 차를 대고 자리를 깔자마자 비가 쏟아진다. 해서 급 모두 차 안으로 옮겨 뒷칸에서 고길 굽고 창문을 열고 차 안에서 상추와 고기쌈을 먹는데 와아~꿀맛이다. 삼겹살이 맛있기야 하지만 몇 번을 먹어도 그냥 먹었는데 그날은 특별히 날씨와 줄다리기를 하며 겨우 어렵게 차려 먹어서 그런 지 더 맛있었다. 


몽골이 주는 교훈!!
때론 결핍감이 더 큰 행복을 불러오기도 한다.
암튼 맛있게 먹고 냇가로 가서 설거지까지 깔끔히 하고
다시 길을 떠났다.


전통옷 델을 입은 가족과
에르덴조 라마교 사원입구
라마교의 불탑 모양은 우리와 다르다
사원안에 남아있는 몇몇 건물들, 주변이 온통 텅 비어보이는 것은 경내가 엄청스리 넓기 때문이다.
기도를 하는지 무슨 말을 하는지 불탑 앞에 우산으로 가리고 한참을 머물던 두 여인 
카라코룸 박물관


카라코롬 이전 도시 모습
오른쪽 서신은 교황이 칸에게 잘 봐달라고 길게 적어보낸 것이라 한다 ㅎㅎ
대원제국 당시 몽골사람들의 복식과 모습들
프랑스인이 만든 이 모형건물의 금, 은 나무의 파이프로 부터 와인,우유,꿀물등이 흘러나왔다한다 ~ 가이드 보석씨가 우리가 움직인 거리가 이렇다며 지도 위에 손으로 가리킨다.

칭기즈칸 이후 아들들과 손자들 세대에 영토는 더 넓게 확장되었고 결국 역사상 가장 넓은 제국을 이루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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