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고 나온 아나운서, 로스쿨에 수석입학하다(2)>

길을 잃었을 때

by 유창한 언변

내 인생의 첫 번째 전환점은 매년 열리는 예술고등학교 정기연주회 날에 찾아왔다.


곧 연주회가 시작된다는 장내 방송이 울려 퍼진 후

잠시 뒤, 암전 상태였던 어둑한 홀에 뾰족한 핀 조명이 떨어지며

홀로 빛나는 한 여자가 눈에 들어왔다.


마이크를 잡은 그녀는 자신이 나와 같은 고등학교를 졸업했다고 했다.

그리고 지금은 아나운서로 살아가고 있다고 웃으며 말했다.

이름도 기억나지 않는 그녀가, 마치 나에게

'피아노를 치지 않아도, 무대에 오를 수 있는 방법이 있다.'라고 말해주는 것 같았다.


벼락에 맞은 느낌이었다.


무대를 좋아했지만, 잇따른 실패로 패배의식에 절어 쳇바퀴 돌듯 그저 집과 연습실을 오가던 나에게

또 다른 길이 찾아온 순간이었다.


그때부터 공부를 시작했다.

내 목표는 오로지 서울,

상경이었다.


많이 늦은 시작이었지만, 다행히 원하던 학교에 진학할 수 있었다.


처음으로 서울에 혼자 올라와,

10가지가 넘는 지하철 노선을 빤히 쳐다보며,

미로도 이 정도로 복잡하지는 않을 거라 생각했다.


미로처럼 돌아갈 길들을 상상도 하지 못한 채,

초롱초롱한 눈을 했던 그때의 나는 그저 꿈에 부풀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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