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도 섞기 싫은 ‘꼰대 말투’의 정체

나이보다 말투가 먼저 늙는다

by 유창한 언변



석기시대의 그림일기 中 글, 그림 stoneage
말도 섞기 싫은 꼰대 말투,
공통된 특징은?

“내가 너 때는 말이야.”
“그렇게 하면 안 돼, 원래는 이렇게 해야지.”
“그래도 요즘 애들은 편해서 좋겠다.”


이 말을 듣는 순간, 사람은 본능적으로 고개를 돌린다. 몸은 그 자리에 있어도 마음은 이미 대화를 떠났다.‘꼰대 말투’라는 말이 한때 유행처럼 소비됐지만, 사실 우리는 모두 알고 있다 유행이 아니라 진짜라는 것을. 그리고 그 말투는 ‘경험’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되지만, 사실은 ‘배려 없음’과 ‘자기 중심성’의 표출일 때가 많다는 걸.




말도 섞기 싫은 이유는, 말이 막혀서다


꼰대 말투가 불편한 건, 단지 말의 내용이 고루해서가 아니다. 진짜 불쾌함은 ‘상대방의 자율성’을 침범하기 때문에 생긴다.


예를 들어 이런 장면을 생각해 보자.

“이거는 내가 다 해봐서 아는데 말이야, 너 그렇게 하면 안 돼.”
→ (나는 묻지 않았지만 그는 답한다.)
→ (내 경험은 무시당했다.)


이런 말투는 대화가 아니라 지시고, 단절이다. 듣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이미 자신의 자율성이 침범당했다는 느낌을 받을 수밖에 없기 때문에 말을 섞기조차 싫어진다. 어차피 자기 입맛대로 움직이지 않으면 다 틀렸다고 생각하는 사람 앞에서, 도대체 무슨 말을 하겠는가.



꼰대 말투의 특징 5가지


꼰대는 나이가 아니라 말투로 구분된다. 실제로 20대인데도 ‘꼰대 같아’ 소리를 듣는 사람도 있고, 60대인데도 유쾌하고 신선한 소통을 하는 사람도 있다.


그렇다면 ‘말도 섞기 싫은 꼰대 말투’는 어떤 특징을 가질까?


1. 질문 없는 단정형

“이건 무조건 이렇게 해야 돼.”
→ 질문이 없다. 상황 맥락을 듣지 않는다. 모든 상황이 자신의 경험대로 흘러야 한다고 여기며 다른 해결책이 있을 가능성을 애초에 차단하며 자신의 말이 진리인양 단정 지어버린다.


2. 상대를 소환하는 비교형

“우리 때는 다 그렇게 했어.”
→ 시대는 바뀌었지만 언어는 멈췄다. 상대의 현재를 과거와 비교하며 깎아내린다. 대체로, 과거에 어려웠던 상황을 끄집어내며, 요새 시대에는 훨씬 더 편안해졌는데 도대체 뭐가 문제냐고 한다. 과거에 비하면 지금의 어려움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비교형 말투는, 현재를 살아가는 상대방의 힘듦과 아픔을 그저 깎아내려버린다.


3. 회한에 젖은 한탄형

“요즘 애들은 말이야, 너무 편하게만 살려고 해.”
→ 불평이 대화의 시작이자 끝. 본인의 고생을 증명하는 데 집중하고, 상대의 방식은 ‘노력 없음’으로 규정한다. 각자만의 힘듦이 다를 수 있다는 것 자체를 이해하려고 하지 않는다.


4. 훈계형

“그건 말이야, 네가 아직 세상을 몰라서 그래.”
→ 상대가 어떤 감정인지, 왜 그런 선택을 했는지 듣지 않는다. 일방통행 대화의 전형으로, 마치 훈장님처럼 상대방에게 계속해서 훈계하기만 한다. 자신의 생각과 경험이 정답이라고 생각하는 전형적인 틀에 박힌 사람의 말투다. 시대가 바뀌었음을, 그래서 다른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이 더 합당한 선택일 수 있음에도 자신의 말을 따르는 것만이 옳다고 믿는다.


5. ‘자격 박탈’ 형

“말은 저렇게 해도, 결국 경험이 없잖아.”
→ 경력이 짧거나, 나이가 어리다는 이유만으로 말의 무게를 깎아내린다.
→ 결국 ‘누가 말했는가’만 보고, ‘무슨 말을 했는가’는 듣지 않는다.



말이 늙지 않기 위한 말하기 연습


꼰대 말투를 피하고 싶다면, 단 한 가지를 기억하자. 말은 ‘지시’가 아니라 ‘탐색’이 되어야 한다. 즉, 말은 내가 옳음을 증명하는 도구가 아니라, 상대와 나의 생각 차이를 함께 좁혀가는 과정이 되어야 한다.



말투를 젊게 유지하는 세 가지 질문


1. “너는 어떻게 생각해?”
→ 질문으로 말문을 여는 연습.
→ 상대의 말할 기회를 먼저 건넨다.


2. “나는 이런 경험이 있었어. 너는 어때?”
→ 경험을 나열하기보다 대화의 여지를 남기는 방식. 일방통행에서 쌍방통행으로 대화 패턴을 바꿀 수 있는 질문이다.


3. “이건 내가 틀릴 수도 있어. 그런데 말이야…”
→ 말 앞에 ‘유연성’을 둔다.
→ 듣는 사람에게도 ‘생각해도 되는 여지’를 남긴다.



선택에는 정답이 없다.


우리 모두는 선택에 후회를 하면서 살아간다. 후회까지는 아니라고 해도, 가보지 않은 길에 대한 아쉬움과 미련 정도는 누구에게나 남아 있을 것이다. 즉, 100% 만족하는 선택이라는 건 애초에 없으며, 또 지금 가장 좋아 보이는 선택이 당장 몇 년만 지나면 최악의 선택이 되기도 한다. 그러므로, 타인의 선택을 함부로 침범하며, 정답이랍시고 훈계하는 태도는 지양하는 것이 좋다. 내 인생도 어디로 가는지 모르겠는데, 어떻게 남의 인생의 정답을 알려주겠는가.


“지금 내 말투가 상대의 자율성을 침법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꼭 한 번 물어보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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