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나는 결혼 후 날씨가 너무 좋은 곳에서 살고 있다.
비도 많이 안 오고 서울보다 따뜻하고 눈이 내려도 잘 쌓이지 않고, 흩날리듯 이쁘게 내리다 사라지니 질척하게 녹는 눈을 밟고 다니지 않아도 돼서 나는 이곳이 너무 좋다.
남편과 장거리 연애를 할 때의 일이다.
이 지역에 눈이 발목까지 쌓이는 진짜 보기 드문 폭설이 있었다.
너무너무 이쁜 눈이 펑펑 내렸다. 너무 이뻤다.
그런데 차가 다니지를 못했다…. 나는 그다음 날 출근을 해야 해서 꼭 서울로 올라가야 했는데 기차역으로 가는 버스가 눈 때문에 더 이상 못 간다며 타고 있던 승객들 모두를 내리게 했다.
"왜? 눈이 많이 와서? 그렇다고 못 간다고 왜?" 난 당황스러웠다.
눈이 와도, 비가 와도, 폭설이 와도, 태풍이 와도 출근해야 하는 곳에서 살던 나에게는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여기는 눈이 많이 안 와서 그래, 걱정하지 마!"
불안해하는 나를 안심시키며 남자 친구(현 남편)가 말했다.
어떻게 기차역까지 갔는지 기억은 안 나지만 무사히 서울행 기차를 탔던 기억이 있다.
그리고 더 기억에 남는 건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펑펑 내리는 눈을 온몸으로 맞으러 밖으로 나오는 모습이었다.
성인 남자가 눈을 보며 어린아이 같이 좋아하는 모습에 '저렇게까지 좋아한다고?' 의문이 들기도 했다.
결혼하고 이곳에 내려와 10년 넘게 살면서 왜 그때 버스는 못 가고, 어른들도 눈을 보러 뛰쳐나왔는지 알 수 있었다.
정말 눈이 더럽게 안 온다. 하하하
그래서 그런가? 이 지역에서 태어난 아들은 겨울만 되면 "엄마 서울 가자~" 라며 나를 조른다.
"왜?" 내가 물으면
"눈사람 만들게~서울 가자~" 순진하게 미소 지으며 말하는 아들이다.
이 지역 사람들은 눈이 오길 기다리지 않고 눈을 찾아 겨울 방학을 한 아이들을 데리고 강원도로, 눈이 많이 오는 지역으로 눈이 있는 곳으로 떠난다.
그런 사람들을 보며 처음엔 이해하지 못했는데 아이를 낳고 보니 나도 눈이 있는 눈썰매장으로 가고 있었다.
눈썰매장을 가도 내가 아는 눈이 아니라서 좀 실망스러운데 아들은 마냥 좋아한다.
소복한 눈이 아닌, 닳고 닳은 짓눌린 눈인데도 최상급의 눈인 듯 정신 놓고 온몸으로 즐긴다.
이곳의 겨울눈은 어린아이들에게 선물인 것 같다.
하늘이 내려주는 차갑지만 따뜻한 선물.
'눈님~, 한 번만이라도 내려주소서~'
이번 겨울엔 꼭 선물이 오길 빌어본다.
'제발~'
나도 아들처럼 눈이 마냥 좋고, 큰 선물일 때가 있었는데 어쩌다 눈을 눈으로만 즐기는 사람이 되었는지…….
이 글을 쓰며 마음에 살짝 씁쓸한 맛이 난다.
눈을 온몸으로 즐겼던 걱정 없던 어린 시절,
시골 할머니 집 뒷동산에서 비료 포댓자루로 열심히 눈썰매를 타던, 눈을 너무 사랑했던 내가 그리워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