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통 봉사
'시간당 12,000원' 괜찮은데
아들 학교, 학교종이(학교 홈페이지 비슷한)을 보다가 발견한 교통 봉사 관련 학부모 모집 공고, 시간도 8시부터 9시까지 총 1시간이니 적당한 것 같아 고민 없이 신청하게 되었다.
사실 다른 학부모들도 많이 신청할 거란 생각과, 예전 학교 도서관 봉사 관련 모집 공고에서도 떨어진 경험이 있어 될 거란 생각은 거의 없는 상태였다.
'근데 됐다.'
가서 보니 신청하신 분들이 많이 없어서 녹색 어머니회 회장이 아는 학부모들께 부탁하여 8명을 겨우 모집한 상태였다.
'왜? 안 하셨을까?' 의문이 들었다. 많은 돈은 아니지만 돈도 벌고, 봉사도 하고 얼마나 좋은가?!
.... 생각해 보니 아이의 아침이 걸렸다.
아침 일찍 일어나 밥을 미리 준비해 놓고 아이를 두고 나가야 하는 거였다. '아 그래서 많이들 안 하신 건가' 난 아들의 아침 생각은 하지도 못했다.
시급 12,000원과, 짧은 봉사 시간에 눈이 멀어 신경도 안 쓴 것이다.
그래도 어쩔 수 없다. 일단 칼을 뽑았으니….
봉사 기간은 8월 초부터 겨울방학 하기 전까지로
나는 집이랑 가까운 곳, 건널목에 배치되어 봉사를 하기 시작했는데 8월 초, 여름 땡볕 밑에서 서 있으려니 힘들어 죽겠더라. 너무 힘이 들었다.
같은 건널목에 아침에 봉사해 주시는 경비원분께서 그 자리가 햇볕이 강해 사람이 쓰러진 적이 있어 30분 이상은 서지 않는다며, 나보고 무리하지 말라고 하셨다.
나는 더운 거 답답한 거에 약한 사람이라, 처음 설 때는 반바지에 크록스를 신고 했는데 집에 와서 보니 다리는 화상 입은 것같이 벌겋게 익어있고, 발은 햇빛을 본 자리와 안 본 자리가 너무 선명하게 구분되어 있어 우스워 보일 정도였다.
그다음 날은 선크림으로 얼굴, 목, 팔, 다리까지 도배를 했다. 그런데도 땡볕은 막을 수 없다는 걸 깨닫고 더워도 어쩔 수 없이 긴 바지를 입기 시작했다.
다른 분들도 나와 다르지 않게 적응해 가고 있는 것 같았다.
근무표에 사인을 하러 학교에 가, 같은 봉사를 하는 학부모들은 만났는데 "버는 것보다 피부과 시술 비용이 더 들겠어요! 하하하"라며 웃으시더라.
농담으로 한 말이었지만 정확한 판단 같았다.
그래서 나는 그 여름에 20대 때로 돌아간 것같이 화장품과 자외선차단제를 사재기했다. 하하하
'배보다 배꼽이 크다.' 속담의 뜻을 몸소 체득했다고 해야 할까….
겨울은 어떤가? 땡볕은 없지만, 서 있으면 맞바람이 불어 손가락이 떨어져 나갈 것같이 추워 캠핑하러 가서도 쓰지 않던 핫팩을 종류별로 또 사재기했다.
발에는 깔창형 핫팩을 배에는 붙이는 핫팩, 어깨에는 찜질용 핫팩, 손은 장갑 끼고 핫팩을 주머니에 넣고 너무 추우면 손에 핫팩을 쥐어 잡고 노란 깃발을 휘둘렀다.
그 핫팩들이 없었다면 난 그 1시간을 버티지 못했을 것이다.
겨울방학이 시작되면서 나의 봉사는 끝이 났다.
힘은 들었지만 잘 마무리한 것 같아 신난다~
하지만…. 후유증이 생겼다.
처음 나간 봉사의 긴장감과 책임감에 어깨에 힘이 많이 들어간 건지 그다음 날부터 왼쪽 어깨가 아프기 시작했고, 내가 서던 건널목이 약간의 경사가 있어 왼쪽 발목에도 무리가 와, 걷기만 해도 통증으로 아팠다.
그런 나를 본 남편의 말이다.
"그런 몸으로 무슨 일을 하겠냐 ~" 봉사 일도 다시는 하지 말라고 신신당부했다.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그냥 서서 봉만 흔든 것뿐인데 이렇게 아플 줄이야~
몸이 아픈 건 교통 봉사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그동안 쌓인 것들이 터진 거라고 생각된다.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한다.'라는 말은 '고생은 안 할 수 있으면 안 한다'로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된다.
젊어서 했던 고생들이, 나이가 드니 고통으로 귀신같이 나타난다. 너~무 아프다.
20대 때는 모든 게 처음이라 마음이 힘들더니, 40대가 되니 뭐만 해도 고통이 따라다닌다.
그러니 고생은 안 할 수 있으면 하지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