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과 두려움

지금의 나

by 고수머리

어둠이 무서워 아직도 내 품에서 잠드는 아들을 보며 '처음과 두려움'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처음, 시작, 설렘, 두려움"


처음 이란 단어를 생각하면 설렘과 동시에 두려움이 따라온다.

나의 아들은 처음의 설렘보다는 두려움이 앞서는 것 같다.

그런 아들을 보며

"처음이 어렵지, 익숙해지면 괜찮아~"

라고 말해 보지만 진짜 익숙해지면 괜찮아지는 게 맞는지 의문이 든다.


20대 후반쯤에 일본에서 워킹홀리데이로 1년 정도 머문 적이 있다.

그때 지진을 처음 경험했다. 말로만 듣던 지진….

사무직만 하던 내가 일본에 가서 처음 한 일은 한식 레스토랑 주방 보조 알바였다.

처음 해보는 일이라 너무 힘들어 하루의 끝은 항상 기절하듯 잠드는 게 일상이었다.

그날도 그랬다. 잠든 상태에서 지진이 발생해, 집이 여러 번 흔들리면서 책장에 있던 물건이 떨어진 것 같다.

"탁" 하고 물건 떨어지는 소리에 지진이 나고 있다는 걸 알았다. 비몽사몽 간이었다.

그때는 지진의 무서움보다는 처음 하는 일에 적응하느라 몸과 마음을 다 쓰고 있어서 '아, 이거 지진인가?!', 떨어진 물건은 '내일 치우자'라고 생각하며 침대에 누운 상태 그대로 눈도 뜨지 않고 다시 잠들었던 기억이 있다.

처음 경험한 지진은 별로 무섭지 않았다.

근데 한국에 와서 다시 느낀 두 번째, 세 번째 지진은 너무 무서웠다.

경험해 봐서 무서움이 덜 할 줄 알았는데 점점 더 무서워져 있었다.

나이가 들어서 그런 걸까?


아이가 어릴 때 독감으로 열경련을 한 적이 있다.

의식을 잃고, 입술이 파래지면서 몸이 빳빳해지며 눈동자가 돌아갔다.

열경련이 뭔지도 모를 때라 너무 놀라고 너무 무서웠다.

119를 부르고, 전화 통화로 지시해 주는 대로 응급처치를 하면서, 두려움은 날아가고 정신이 차분해졌다.

'놀라, 소리 지를 시간 따위 없다. 일단 지시 사항을 따르자!'

지시 사항을 잘 따른 덕분인지 119의 도착과 비슷하게 아들의 의식도 희미하게 돌아왔다.

그래도 열이 떨어진 건 아니라서 응급실로 가, 해열제와 독감 주사를 맞고 2, 3일은 더 고열로 고생했던 적이 있다.

'독감은 참 독했다.'

그날 이후로, 아들이 열만 나면 또 열경련을 할까 봐 뇌 속까지 긴장감에 힘이 든다.

경험해 봐서 어떻게 해야 할지 알고 있는데도 38도만 넘어가면 두렵고 무섭다.


지진과 열경련처럼 절대 익숙해질 수 없는 처음이 있다.

이런 일로 처음이 두렵기만 한일이라고 말할 수 없다.

그렇다!! 지금의 내가 문제인 것이다. 하하하

요즘 처음(시작)을 두려워하고 있다.

일을 다시 해야 할 것 같은데 두렵다.

익숙해질 만도 한데 용기가 나지 않는다.

(40대 후반에 능력도 없고, 경력도 없는 사람을 누가 써주겠는가?!)

근데 더 큰 문제는

두려워 도전조차 하지 못하는 나 자신이다.


'처음이 어렵지, 익숙해지면 괜찮다.'

라고 아들에게 말은 하지만, 나 또한 이 나이에 겪는 처음이라 참 난감하다.

살아오는 동안 처음이라는 행위에 익숙해지기는커녕 두려움만 쌓이는 것 같다.

설렘의 두께는 얇아지고, 두려움만 두터워진다.

큰일이다.

매거진의 이전글배보다 배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