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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_느림이 여유가 되는 곳

느릿느릿, 이게 라오스지

by 한경환

비행기에서 내리자 낯선듯 그리운 공기가 코에 닿았다.

5년 만에 다시 이곳에 오게 되다니.

우리는 서둘러 입국심사장으로 향했다.

우리 좌석이 뒤쪽이었기에 가장 늦게 비행기에서 내린 사람들 중 하나였다.

때문에 우리가 긴 입국심사 줄 중에서도 뒤쪽인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처음 몇 분 정도는 견딜만했다.

정확히는 별 생각이 없었다.

서로 사진을 찍어주느라 바빴고 여행에 대한 기대감으로 들떠있었기 때문이다.

숙소의 위치를 찾아보고 오늘 할 일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느라 기다림의 지루함은 느껴지지 않았다.

하지만 20분 정도가 지나자 슬슬 그 지루함이 피부에 닿기 시작했다.

한 번 피부에 얹어진 지루함은 흘러가는 시간을 좀 더 느리게 만드는 재주가 있다.

다른 사람들도 슬슬 짜증을 내기 시작했다.

노골적으로 입국심사대를 째려보는 이도 적지 않았다.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그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본인만의 속도로 일을 처리했다.

그래, 이게 라오스지.

여유로운 사람들이 만든 여유로운 나라.

타인의 속도에 맞추지 않고 자신만의 속도로 나아가는 곳.


다행히도 얼마 지나지 않아 새로운 줄들을 열어주어 아까보다 훨씬 빠르게 줄이 줄어들었다.

우리도 눈치껏 새로 만들어진 줄로 이동했기에 빠르게 심사를 끝낼 수 있었다.

그녀는 내 여권을 한 장, 한 장 꼼꼼히도 살펴보았다.

그러더니 다시 여권 맨 앞장으로 돌아가 맨 첫번째 페이지에 도장을 찍어주었다.

이럴 수가!

사실 맨 앞장은 내 아픈 손가락이었다.

내 여권을 구경하는 사람들에게 늘 하던 말이었다.

도장이 단 하나뿐이라 크게 빈칸이 남아있었지만 그동안 아무도 찍어주지 않아 속상한 부분이라고.

그런데 그녀가 그곳에 도장을 찍은 것이다.

완전 럭키비키잖아!

여행의 출발부터 조짐이 좋다.

기분 좋게 심사대를 빠져나간 뒤 곧장 캐리어를 챙기러 갔다.

이미 오랜 시간이 지나서였는지 모든 캐리어가 컨베이어벨트 위가 아닌 바닥에 줄 맞춰 서있었다.

우린 그저 각자의 캐리어를 집어 들기만 하면 되었다.

각자의 캐리어를 끌고 공항을 나서기 전, 먼저 환전을 했다.

택시비와 내일 간단하게 사용할 현금이 필요했다.

공항은 시내에 비해 환율이 떨어지는 대부분의 국가들과 달리 희한하게도 라오스는 별 차이가 없었다.

나중에는 그냥 공항에서 다 해버릴걸, 하고 후회한 적도 있었으니.

환전을 한 김에 그곳에서 바로 유심도 구매했다.

여러 매장이 있었지만 우리가 고른 곳이 같은 가격에 가장 많은 데이터를 주었다.

친절하게 직접 유심을 바꾸어 껴주는 동안 다른 분께 환전까지 끝냈다.

일이 일사천리로 진행되는 것 같아 마음이 편안했다.

이제 택시를 부를 차례.

이것마저도 걱정과는 다르게 어플을 켜고 보니 사용법이 어렵지 않았고 택시도 금방 잡을 수 있었다.

팁을 주자면 공항이나 기차역처럼 택시를 이용하는 사람들이 많은 곳에서는 어플에서 추천해 주는 가격보다 저렴하게 입력해도 택시가 잘 잡혔다.


어플에서 추천해 준 가격을 입력하자마자 수많은 택시들이 가격을 제안하며 달려들었다.

그중 가장 저렴한 가격을 부른 택시를 잡았다.

드디어 공항 문을 나서 진짜 라오스를 마주했다.

습하고 더운 공기에 숨이 턱 하고 막힌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숨 막히는 공기가 그리웠다.

10분도 안되어 질려버릴 것이 분명하지만 중요한 것은 지금이다.

지금 이 순간 내 두 발은 라오스에 도착해 있었다.

나는 코에 라오스를 통째로 담으려는 것처럼 크게 심호흡을 했다.

오랜만이야, 라오스.

그리움에 젖은 기분은 오래가지 않았다.

우리의 택시가 몇 분째 같은 자리에 서서 움직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어디냐는 메시지를 보내고 나서야 천천히 움직이는 택시를 어플을 통해 확인할 수 있었다.

기다리다 못한 우리는 직접 택시를 찾아 나섰다.

차번호를 불러주고 다 함께 공항 앞 택시들의 번호판을 일일이 확인하며 나아갔다.


“1261! 저기에 있다!”


누군가 소리쳤다.

우리는 일제히 그곳을 향해 빠른 걸음으로 걸어갔다.

우리를 발견한 기사님은 차를 멈추고 우리를 맞이했다.

캐리어를 잔뜩 들고 도로 한가운데에 서있던 우리는 트렁크를 열어달라고 재촉했다.

기사님은 여유롭게 문을 열고 나와 인사를 하고 천천히 트렁크를 열었다.

그리고 더 여유롭게 우리의 캐리어를 하나씩 실었다.

아까도 말했지만 굳이 다시 한번 말하자면 우리는 지금 도로 한가운데에 서있었다.

마음이 조급했지만 내 예상과는 다르게 누구도 클락션을 울리지 않았다.

짐을 다 싣고 우리가 모두 차에 타 앉을 때까지도 어느 누구 하나 우리를 재촉하는 이가 없었다.

그제야 다시 떠올릴 수 있었다.

아, 조급할 필요 없었구나.

나는 라오스에 있으니까.

그제야 기사님께 메시지를 보내고 그를 향해 뛰어가고, 그를 재촉했던 우리가 부끄러웠다.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기사님은 싱긋 웃을 뿐이었다.


역시나 호텔로 가는 길도 서두르지 않았다.

우리의 택시는 조금은 답답할 정도로 천천히 도로를 달렸지만 덕분에 천천히 라오스를 살펴볼 수 있었다.

아무래도 서두르면 빠르게 도착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천천히 걸었기에 많은 것을 볼 수 있었다.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도 있다 하지 않던가.

아마도 라오스는 내게 이것을 알려주고 싶었으리라.


느리게 달려 도착한 우리의 첫 호텔.

바로 V호텔이다.

깔끔하고 넓은 내부와 저렴한 가격.

1박에 약 6만 원 정도로 여행 첫날을 보내기에 나쁘지 않은 곳이었다.

그리고 무려 조식이 포함된 가격이었다.

우리는 각자 침대를 정한 뒤 대충 짐을 풀었다.

공항을 나선 지 30분도 채 되지 않았지만 얼른 밖으로 나가고 싶었다.

그건 다른 아이들도 마찬가지였나 보다.

짐을 풀자마자 화장을 고치고 밖으로 나갈 준비를 하는 것을 보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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