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지지 않는 것들
한 방울.
손목에 떨어뜨린 뒤 가만히 문지른다.
처음에는 짙고 날카롭지만, 이내 부드러워진다.
피부의 온도에 녹아들며 천천히 퍼지는 향.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연해지고, 마침내 희미하게 스며든다.
향수는 기억을 붙잡는 일이다.
어느 계절의 공기, 스친 사람의 온기, 지나간 장소의 분위기. 특정한 향은 단숨에 과거로 데려간다.
여름날 창가에 앉아있던 오후, 익숙한 스웨터의 어깨에 기대었던 순간, 낡은 책장 사이로 숨어들던 햇살.
그때 맡았던 향이 다시 코끝을 스치면, 잊었다고 생각했던 순간들이 선명하게 떠오른다.
그래서일까.
어떤 향수는 더 이상 뿌릴 수 없다.
한때는 애정하던 향인데, 이제는 뚜껑을 여는 것조차 조심스럽다.
한 방울만으로도 너무 먼 곳으로 가버릴 것 같아서.
그리움도 그렇다.
돌아갈 수 없는 시간에 대한 향수(鄕愁)는, 어쩌면 흔적처럼 남은 향기와 닮았다.
가까이할수록 선명해지고, 지나가면 옅어진다.
그리고 아주 가끔, 바람이 불 때, 우연한 순간에 다시 찾아온다.
나는 오늘도 향수를 뿌린다.
피부 위에 남는 향과, 마음속에 남는 향수(鄕愁)를 함께 품는다.
어떤 것은 시간과 함께 사라지고, 어떤 것은 다시 돌아온다.
하지만 사라진다고 해서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언젠가 아주 먼 시간이 흐른 뒤, 문득 스치는 향에 다시 그 순간을 떠올릴지도 모른다.
마치 오래된 편지를 우연히 발견한 것처럼, 그리운 얼굴을 만난 것처럼.
그때 나는 어떤 표정을 짓고 있을까.
어쩌면 그때도, 나는 또 다른 향수를 뿌리고 있을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