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모든 초록은 여전히 당신을 닮았어요.
얼어붙은 눈물 위에
그 얼음을 녹일 눈물이 스르륵 덮인다.
울음소리는 바람을 타고 흩어졌고
희미하게 남은 메아리는
앙상한 나뭇가지 사이로 흩어졌다.
마지막 삽질 소리가 멈추고
당신으로부터 시작된 모든 이들의 손에서
한 줌씩 흙이 흘러내렸다.
그 흙은 오래된 편지를 접어 보내듯
조심스럽고도 무겁게 떨어졌다.
떨어진 흙은 차가운 바람 속에서도
따듯한 사랑이 되어 당신 위로 겹겹이 내려앉았다.
비록 내가 태어나기 전부터
누군가 당신의 이름 앞에
’ 외’라는 글자를 붙여놓았지만
그 글자에서 느껴지는 거리감이 무색하리만큼
당신은 내게 그냥 할아버지였다.
당신은 나의 세상을 넓혀주었다.
이름 없던 보라색 작은 꽃에
제비꽃이라는 이름을 붙여주었고
작았던 나의 세상을 초록으로 물들여 주었다.
자연을 대하는 방법을 알려주었고
자연과 함께 살아가는 방법을 일러주었다.
초록을 볼 때, 나는 당신을 본다.
모든 초록이 그 빛을 잃고 땅으로 떨어지는 계절에
그 초록들과 함께 사라진 당신.
곧 돌아올 봄에,
그 모든 초록들이 다시 빛을 찾을 계절에
나는 당신을 다시 볼 수 있을까.
내 기억이 시작할 즈음부터도 당신은
나보다 작았다.
그런 당신은 늘 나보다 무거운 것을
두 손 가득 들고 있었지.
당신의 작은 몸집과 어울리지 않던
두툼하고 크던 손.
이곳저곳 굳은살이 박혀 돌처럼 단단하던 그 손.
이제는 그 손에 더 이상
무거운 것을 쥘 필요가 없을 것이다.
당신이 그동안 짊어졌던 시간과 짐은
이제 흙 속에 내려두고,
가볍고 편안하게 쉬었으면 좋겠다.
지금쯤 당신은 당신이 그토록 그렸을
나의 외할머니와 마주했을 것이다.
오랜 세월 꾹꾹 눌러 담았던 이야기들을
밤새도록 마음껏 풀어내겠지.
사랑한다는 말과 보고 싶었다는 말이
눈송이처럼 흩날릴 거야.
아름다운 단어들은 별이 될 거고
그 별들은 이곳에서도 보일만큼 반짝일 테지.
웃으며 함께 걸었던 초록빛 그 발걸음이
이제는 하늘 위에서 다시 이어지기를 꿈꾼다.
할머니에게 내 안부도 전해주세요.
할머니가 남기고 간 이야기들을
당신이 온전히 들었기를 바라며,
이곳에서 쌓아온 우리들의 이야기도
따스한 봄바람이 되어 그곳에 닿을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