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리지만 분명하게
살금살금, 가을이 다가온다.
희미하지만 분명하게
가을이 다가온다.
색깔로, 냄새로, 바람으로, 온도로
밤마다 부지런히 종종걸음으로 걸어온다.
성큼성큼 망설임 없이
아직 한창인 봄을 제치고
성급히도 뛰어온 여름과는 다르게
두 걸음 왔다가 한걸음 다시 또 멀어지며
완연한 가을을 위해,
세세하고 부드럽게 다음 계절을 준비한다.
나뭇잎 끝에서부터, 서서히 높아지는 하늘까지
아무도 눈치채지 못하게 조금씩
계절을 갈아입는다.
너무 느린 계절이기에
너무 빠르게 지나갈 것이 분명한
늘 아쉬운 그 계절이
코끝에서 살랑거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