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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이시가키 유람기

Day 4 : 이리오모테, 유부, 타케토미 섬

by 공대생은유람중

- 오늘은 3개의 섬 (이리오모테 섬, 유부 섬, 타케토미 섬)을 도는 날이다. 8시 30분에 이리오모테 섬까지 도는 배를 타기 위해서 아침에 일찍 일어나서 8시에 리토 터미널에 도착해서 안영관광 부스를 찾았다. 어제 봤던 아저씨에게 표와 간단한 안내를 받았다. 스쿠터를 빌리느라 안영관광에 오고, 배를 타기 위해서 또 오고, 사실상 모든 여행을 매일 여기서 오니까, 여기 직원 분들과 왠지 모를 내적 친밀감이 생겼다. 워낙 한국인들이 잘 오는 곳도 아니니까 그분들도 나를 이제 인지하고 있는 것 같았다.

오늘 여행의 시작도 리토항에서


- 조금 여유가 있어서 520엔짜리 돼지김치 도시락을 아침으로 사 먹었다. 일본은 어느 동네를 가도 아침에 도시락을 파는 곳이 꽤 자주 보이는 게 장점인 것 같다. 밥을 든든하게 먹고 1시간이 좀 안되어서 가니 이리오모테 섬에 도착하였다. 면적으로 보면 오히려 이시가키보다 크지만, 개발이 거의 안되어있고, 맹그로브 숲과 정글로 많이 덮혀 있어서 인구는 2300 명 남짓밖에 살지 않은 곳이다. (이시가키는 약 5만) 관광버스가 대기하고 있어서 버스를 타고 나카마 강 초입까지 이동을 하였고, 거기서부터 배를 타고 강을 따라 이리오모테 섬 안쪽으로 들어갔다.

이리오모테 여행 시작!


배를 타고 맹그로브 숲으로 들어간다
나카마강 초입에서 맹그로브 숲으로



- 들어가 보니 강변을 따라 빼곡히 자라는 나무들이 보였다. 동남아나 그리 더운 지방은 내가 가본 적이 없어서 이토록 무성한 맹그로브 섬은 처음 보았다. 배를 타고 선장님이 이것저것 나무들에 대해 설명은 해주셨지만, 식물에 대한 자세한 내용들은 금세 잊어버렸다. 배를 타고 섬으로 점점 들어가는데, 강에서 어업을 하는 배들도 간혹 보였다. 지도에서는 큰 줄기만 보이지만, 맹그로브 숲 사이사이에 작은 배들만 들어갈 수 있는 지류도 있어서 어업을 하시는 분들은 정말 빼곡한 정글 사이로 들어가기도 하였다. 그런 와중에 어떤 분은 배를 멈춰 세우고 우리들에게 잡은 게를 들고 보여주시기도 하였다. 선장님 말씀으로는 이곳에서 잡은 게 맛이 꽤 좋단다. 일단은 바다랑 연결되어 있는 강이라 그런지 작은 상어들이 간혹 배를 거슬러 오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잡은 게를 들고 포즈를 취해주신다. 한국의 게랑 맛이 어떻게 다른지 궁금해지기도 한다.
지금까지 봐왔던 맹그로브 숲 중에 단연 크지 않았을까

- 이색적인 맹그로브 숲을 구경하고 다시 배를 틀어서 원래 있던 선착장으로 돌아갔다. 다시 버스를 타고 섬의 동쪽으로 가는데, 특이하게도 이리오모테삵 (산고양이) 추돌주의 표지판이 곳곳에 보였다. 이곳에서는 거의 최상위 포식자인데, 이곳 이리오모테에서만 사는 멸종 위기종이라 일본에서도 국가적으로 보호하고 있는 듯 보였다. 그런데 설명해 주시는 가이드 분이 도쿄에서 이주한 지 2년이 되었다는데, 이리오모테삵은 한 번도 본 적이 없다고 하신다. 애당초 야행성이라 낮에 보기도 힘든 녀석들인데, 멸종 위기종이라 진짜 보기 힘든 듯하였다.


- 이리오모테 섬 동쪽에 도착하니, 저기 멀리 작은 섬이 바다를 건너 하나 보였다. 사실 말이 다른 섬이지, 물이 기껏해야 허리까지도 오지도 않아서, 옷만 적시면 물에 빠지지 않고 건널 수 있는 아주 가까운 섬이었다. 근데 깊이상 배를 띄우기도 애매하고, 관광객 입장에서 바지를 적시고 싶지는 않으니, 특이하게도 물소들이 끄는 수차를 타고 배를 건넌다. 물소를 이렇게 가까이서 보는 것은 처음인데, 거의 10명 정도를 태우고 느릿느릿 물을 건넜다. 이렇게나 많은 사람들을 태우고 가는 물소를 보니 좀 불쌍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래도 다행인 건, 물소를 다루는 기수(?) 분들이 물소를 그렇게 험하게 다루지는 않고 아껴주는 것으로 보였다.

저 맞은편에 섬이라고 따로 이름 붙이기도 애매할 정도로 작은 섬이 있다.
느릿느릿 하지만 10명 정도를 태우느라 고생해주는 물소


- 물소를 몰면서 기수 분이 산신을 꺼내서 연주를 하기 시작했다. 느릿느릿 가는 와중에 바닷바람 맞아가며 듣는 산신소리가 어쩐지 평화로웠다. 연주를 하지 않을 때 이따금씩 기수 분이 본인이 모는 물소가 어떤 친구인지 설명도 해주는데, 가끔씩 이 물소가 귀를 쫑긋 세울 때가 있었다. 기수 분 말로는 물소가 자기 얘기하는지 알고 있어서 귀를 기울이는 것이라고 했다. 동물도 자기 얘기를 하는지 아는구나 신기했다.


- 천천히 10분에서 15분 정도 물소차를 타고 유부 섬에 도착했다. 몇십 년 전에는 사람이 정말 살고 있던 섬이었는데, 한 번 수몰되면서 사람들이 모두 다른 곳으로 이주하고, 섬 전체가 식물원으로 가꿔졌다고 한다. 식물원 지도를 받고 식물원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려는데, 초입에 물에 몸을 푹 담그면서 쉬고 있는 물소들이 보였다. 이름 그대로 진짜 물소가 맞는구나 싶었다.

이름값? 해주는 물소들. 쉴 때는 정말 물 속에 있다.


섬 전체가 식물원인 유부섬은 군데군데 온실별로 식물 테마가 있다.


예전에는 유부초등학교 (소학교) 였던 곳.


- 유부 섬은 어딜 돌아다녀도 우거진 식물 때문에 약간 습하고 더운 느낌이 더 강하게 들었다. 그 와중에 물소랑 기념사진을 찍을 수 있는 스팟도 있고, 큰 비닐하우스를 만들어서 나비를 잔뜩 사육하고 있는 나비원도 있었다. 솔직히 말하면 나는 다양한 식물들을 보는 데는 그다지 감흥이 없어서, 섬의 전체적인 경관을 본다는 기분으로 천천히 산책하였다.


- 다시 물소를 타고 이리오모테로 돌아와서, 다케토미섬으로 가는 배를 탔다. 타케토미에서 나름 유명한 콘도이비치를 찾았는데, 썰물 때라 그런지 물이 깊지는 않았다. 그럼에도 잔잔하게 남아있는 바닷물은 여기도 역시 바닥까지 비쳤다. 콘도이 비치를 간 다음에는 그리 멀지 않은 카이지 비치를 갔는데, 여기는 별모양의 모래가 있는 곳으로 유명한 곳이었다. 직접 해변에서 별모래를 찾아도 되지만, 옆에 300엔에 작은 유리통에 담아서도 팔고 있었다.

콘도이 비치. 정말 이 곳의 바다는 어딜 가든 수심이 그리 깊지 않고, 바닥이 투명하다.
별모래가 있는 카이지 비치. 약간 썰물 때였던 것 같다.
직접 별모래를. 찾을 필요없이 자본으로 해결할 수 있는 (…) 무인가판대

- 바다는 사실 지겹도록 많이 본 지라, 민가 쪽을 자전거를 돌아다녀보았다. 아마 이시가키 여행하는 동안 제일 예쁘고 정감 가는 동네가 아니었을까. 어제 갔던 하테루마처럼 돌담으로 되어있는 집들이 많았는데, 동네 초등학교도, 우체국도, 여긴 정말 어디를 가도 돌담과 빨간 오키나와 전통 지붕으로 되어있는 집이었다. 나고미의 탑이라고 나름대로 전망대 같은 역할을 하는 곳으로 올라가서 마을을 조망했는데, 이 돌담과 빨간 지붕, 그리고 하이비스커스를 포함한 갖가지 꽃들이 너무 조화롭게 이루어져서 예쁜 동네라고 생각했다. 이곳에 굉장히 유명한 호시노야 리조트라는 곳이 있다고 들었는데, 왜 하필이면 이 외딴섬에 유명 리조트가 들어왔는지 알 것도 같았다.

오키나와 현에서 아마 제일 오키나와다운 모습을 가진 섬이 아닐까 싶었던 다케토미 섬.
다케토미 소학교
지대가 약간 높은 나고미의 탑 이라는 곳에서 바라본 타케토미 섬의 민가
타케토미 우체국


- 다케토미 민가 이곳저곳을 돌아다니고, 5시 40분에 이시가키로 가는 배를 타서, 6시에 도착했다. 부둣가의 허름한 식당에서 상당히 맛있는 라후테를 먹었다. 아무래도 인부들이 많이 가는 식당 같았다.

이대로 하루를 보내기 아쉬워서 음악소리가 들리는 ‘우사기야’라는 이자카야에 무작정 들어갔다. 스쿠터를 끌고 온지라 아쉽게도 맥주는 못 마시고, 칼피스 (음료수)와 가라아게를 시켰다. 가게의 작은 무대에서 산신을 연주하면서 오키나와의 노래들을 부르고 있었다. 내가 아는 begin의 노래들도 몇 개 불러준 지라, 나도 아주 심심치 않게 즐길 수 있었던 것 같다.


오키나와 음악들을 산신과 함께 연주해주는 이자카야. 스쿠터 때문에 맥주를 한 잔 하지 못한 것이 아쉬웠다.
하루가 이렇게 저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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