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외여행, 러시아
러시아로 떠나는 첫날은 날씨가 좋지 않았다. 구름에 가려진 해가 슬퍼 보인다고 생각했다. 처음 이용해보는 제2터미널은 시스템 전자화가 상용되어 있어, 친구와 “세상 참 좋아졌네-”라는 말을 연발하며 비행기에 탔다. 블라디보스토크까지는 두시간 반 정도 걸렸는데, 착륙할 때는 맑은 하늘과 낮게 날아다니는 제비를 닮은 새가 가득했다. 하늘을 올려다보고 이번에는 안심했다.
러시아의 일처리는 일본만큼 느려서 강제로 여유로워지는 나라였다. 느릿느릿하게 입국심사를 마치고 예약해놓은 차량을 타고 시내까지 한 시간을 다시 달렸다. 러시아의 초록빛은 한국보다 조금 연한 색이었고, 그 뒤로 바로 수평선이 바다가 이어져 있었다. 시내에는 포스터 형태의 입간판이 많았는데, 러시아어는 전혀 모르지만 왠지 모르게 은행만은 똑똑히 읽을 수 있었다.
기사님께서 잘못 내려주셔서 우여곡절 도착한 숙소에는 할머니가 한 분 계셨다. 할머니께서는 영어보다 스마트폰이 익숙하신지 통역어플로 체크인을 해주셨다. 숙소는 화장실에서 희미한 암모니아 냄새가 나고 와이파이가 잡히지 않았지만 전체적으로 깨끗했다.
투어를 예약하긴 했지만 러시아에 살고 있는 또 다른 친구를 만나기 위해 여행을 왔던 차라, 친구의 가이드에 전적으로 의지하며 시내를 돌아다녔다. 저녁으로 색이 짙은 수제버거를 먹고, 비눗방울이 영화처럼 날리는 해변공원을 돌아보니 어느덧 8시가 훌쩍 넘어 있었다.
첫날은 야경투어 날이라 차량으로 시내를 한번 더 돌았다. 블라디보스토크는 작은 동네라서, 거의 낮에 모두 돌아봤던 곳이었다. 굼 백화점에 도착했을 무렵에는 소낙비가 내렸는데, 백화점 골목의 전등과 앞쪽 거리가 너무 예뻐서 비를 맞으면서도 웃으며 사진을 찍었다. 키릴 문자를 만들었다는 두 인물의 무서운 동상이 서 있는 독수리 전망대까지 돌아보고 마지막 코스로 맥주 펍에 들어갔는데, 우리는 너무 피곤해서 술 대신 러시아 전통 과일 주스를 마셨다. 전통 음료는 딸기잼과 오미자를 물에 풀어 연하게 섞은 맛이었다. 술도 마시지 않은 우리는 피곤함에 쓰러지듯 하루의 마침표를 찍었다.
둘째날은 루스키섬 투어를 했다. 30분 정도 미니밴을 타고 가는데 비포장 도로에 들어서자 멀미가 났다. 러시아에는 여기저기 손상된 차량이 많았는데, 그 차들의 상태가 이해되는 순간이었다. 루스키섬 투어는 짧은 트레킹 코스가 포함되어 있었는데, 어제처럼 비가 내리지는 않았지만 진흙길이라서 조심조심 다녀야 했기에 하늘보다는 주로 땅을 보고 걸었다. 루스키섬의 광경은 흐린대로 운치 있었다. 절벽에서 사진을 찍고 돌아서는데, 여유가 가득해 보이는 하품을 하는 여우가 길섶에서 걷고 있었다. 여우는 한참 셔터 세례를 받다가 천천히 사라졌다.
루스키섬 투어를 마치고 다시 러시아에 사는 친구를 만나 킹크랩을 먹으러 갔다. 러시아는 해산물 가격이 싸지만, 혼자 킹크랩을 먹으러 오는 건 힘든 일이라는 말을 들었기 때문이었다. 킹크랩 한 마리의 크기는 성인 남성의 머리만했는데, 주문을 잘못 해서 셋이서 두 마리나 먹게 되었다. 킹크랩은 검정 장갑을 끼고 직접 해체해서 먹어야 했는데, 뾰족한 다리 때문에 고통과 행복을 함께 맛보았다. 러시아식 소스는 시금치 맛이 강했는데 입맛에 맞지 않아 거의 손을 대지 않았지만, 수저 가득 게살을 떠 먹는 경험은 꽤나 즐거웠다. 마지막 수저를 뜰 때는 역시 김치를 넣은 볶음밥이 먹고 싶다며 한국인 입맛의 일관성에 대해 의견을 모았다.
게살로 배를 가득 채우고 기념품을 사러 돌아다녔지만 적당한 가격을 찾지 못해 허탕을 치고 라떼아트를 잘한다는 카페를 찾아갔다. 내가 시킨 카페모카는 우유맛이 강해 상냥한 맛이 났고, 친구가 시킨 라떼아트 커피는 고양이가 그려져 있었는데 체리 색소의 맛이 났다. 내일이면 떠난다며 아쉬워하는 친구와 해변공원 뒤쪽을 걸으며 탱고 무료 강습을 하는 야외 공연장을 보았는데, 순간 마음이 따뜻해졌다. 피곤한 다리를 끌고 숙소에 들어와서도 여행의 여운이 가시지 않아 친구와 한참을 이야기꽃을 피우며 하루를 마무리했다.
셋째날은 일찍 체크아웃을 하고 짐을 호텔에 맡긴 채 러시아식 팬케이크를 먹으러 갔다. 블로그에 많이 포스팅된 집이라 그런지 이른 아침부터 한국인이 줄을 많이 서 있었다. 아침의 아르바트 거리는 잠의 기운이 서려있어 서늘하고 투명했다. 팬케이크 가게에서 두 종류의 팬케이크와 블랙베리 차를 시켰는데, 차가 정말 맛있었다. 브랜드를 알지 못해 사진 못했지만, 다시 생각날 맛이었다.
공항에 돌아갈 때는 기차를 타고 갔는데, 창문 밖으로 시내를 벗어나며 마지막 러시아의 모습을 눈으로 담았다. 해변 없이 바로 바다로 이어지는 놀이터와, 몸통은 하얗고 팔랑팔랑 잎을 흔드는 나무는 영원히 바라볼 수 있을 것 같았다. 별 것 없는 풍경에 가장 가슴이 두근거리는 것 같았다. 여행의 묘미란 역시 알지 못하는 것들을 바라볼 때 느껴지는 설렘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친구를 만나기 위해 즉흥적으로 떠났던 2박3일의 짧은 일정이었지만, 소담한 추억을 가득 안고 돌아올 수 있었던 여행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