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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야 Feb 02. 2024

연락

함께 있고 싶은 사람들과 연락을 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고 그 연락이 끊기면 더 이상 관계가 지속되지 않는다고 여겼는데, 새로운 문화를 접하고 생각이 달라졌다.

타지생활의 가장 큰 장점은 '나와는 다른' 사람들의 일면을 몸속 깊이 새긴다는 점이다. 짧은 시간이지만 일본에서 교환학생으로 생활하면서 신기했던 문화 중 하나는 전화예절이었다. 한참 밥을 먹을 초저녁임에도 "늦은 시간에 연락해서 미안해. 이런 일이 있어서 알려주고 싶었어."라는 메일이 온다던가, 상대방에게 전화를 걸기 전에 시간을 꼭 확인하고 그 시간에 맞추어 전화를 건다거나, 친한 사이, 심지어는 애인과의 연락을 주고받을 때도 그와의 연락에 매사 연연하지 않는 것. 하루의 시작을 "잘 잤어?"로 시작해 "오늘은 뭐 먹었어?"를 거쳐 "너도 잘 자."를 반복하는 생활에 '내가 이런 연락으로 관계를 이어가는 게 정말 의미 있는 걸까.'라는 다소 이기적인 마음으로 지쳐있던 내게는 커다란 충격으로 다가왔다.

사람마다 연락의 스타일은 다르기 마련이지만, 함께 일본에서 생활했던 친구들은 대게 비슷한 경험에 의해 연락 패턴이 바뀌게 되었다. 한 번은 친구에게서 "나는 오늘 저녁에는 일이 있어서 12시 정도부터 저녁 전까지 통화할 시간이 돼."라는 이야기를 듣고 12시까지 앉아서 기다린 적이 있었는데, 그 시간까지가 어찌나 두근거리던지. 오래된 인연에게서 설렘을 느낄 수 있다는 사실에 새삼 감사한 마음이 들기까지 했다.

연락 패턴이 바뀐 후 관계에 대한 집착도 줄어들게 되었다. 느긋한 마음을 가지니 자신에게 더욱 집중할 수 있게 되었달까. 그렇다고 상대에 대한 관심이 줄어든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오랜만에 묻는 "잘 지내?"라는 안부 한 마디에 애정이 분수처럼 퐁퐁 솟아났다.

연락하지 않아도 이어지는 마음이 있을 수 있다는 것. 단절이나 차단이 아니라, 언제든 걸어올 수 있는 길을 마련해 놓는 작업이라는 것. 연락에 대한 부담을 조금은 내려놓았다. 물론 여전히 어느 한 구석에서는 잊힐까 두려워하는 마음이 있을지라도.

- 붙잡을 새 없이 지나쳐버린 당신들에게,

마음에 비해 아는 게 너무 없네. 덜어내고 또 덜어내도 생기는 시간을 천천히, 아주 천천히 이을 수 있다면, 떨리는 마음은 내가 꼭 쥐고 있을 테니 같이 커피를 마실래? 나는 요즘 아이스 바닐라 라테를 좋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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