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간 인테리어에 푹 빠져 있다. 주말마다 티브이에서 발품을 파는 프로그램을 시간 맞춰 챙겨보고, “노후에 공인중개사 자격증 따서 부동산이나 할까 봐.”라며 장난기 어린 허언을 늘어놓는 게 일상이 되었을 정도이다. 아이보리와 우드 톤이 조화를 이룬 주방, 단차가 높지 않은 계단이 있는 2층 공간, 커다란 빈백과 윈도시트, 하얀 벽과 빔 프로젝터, 꽃이 피지 않는 대신 사계절 내내 초록 잎을 달고 있는 화분이 놓인 테라스는 어느새 내 집 마련의 필수 조건이 되어버렸다.
자신이 원하는 색과 모양으로 텅 비어 있는 집을 채우는 것도 참 재미있지만, 공간 인테리어의 진정한 묘미는 세월의 때가 잔꽃처럼 퍼져 있는 낡은 집이 하얗고 깔끔하게 변하는 모습이다. 오래된 집과 인테리어를 마친 새로운 집은 특징적인 부분을 제외하면 전혀 알아볼 수 없게 변하기 마련이라서, 두 집을 비교하는 장면은 몇 번을 다시 봐도 도무지 질리지가 않는다.
인테리어에 대한 관심은 독립적인 공간이 중요해진 시점부터 눈에 들어왔다. 나이를 먹을수록, 타인과의 소통이 늘어갈수록 ‘나의 공간’이라는 개념은 자리를 넓혀갔고, 어느 순간부터 그 공간을 지키는 일이 중요한 삶의 방식 중 하나가 되었다. 불나방처럼 이곳저곳을 부딪치고 돌아다니다가도 하루의 끝자락에서는 나만의 작은 방을 찾곤 했다. 나의 공간에서는 철저히 혼자 있을 수 있었고, 누구에게도 보이지 않았던 표정을 지을 수 있었다. 하지만, 고립된 공간에서 자신에 대한 생각을 키워갈수록 그 공간에서 타인을 생각하는 시간도 늘어났다. 나의 공간은 결국 당신과의 관계이기도 했다.
가령 삶을 공간에 비유한다면 내가 하는 모든 생(生)의 활동은 공간을 만드는 뼈대에 해당하고, 그 활동으로 인해 생기는 생산물은 공간을 예쁘게 꾸미는 인테리어 정도가 되지 않을까. 그리고 관계는, 그 공간에 누군가를 초대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애써 정돈해 놓은 공간에 누군가를 들인다는 것은 나의 마음을 당신에게 주겠다는 뜻이다. 상대가 발을 들이지 않을 때면, '아, 나의 방은 당신이 들어오기에 아직 적절하지 않은가요.'라는 생각을 하며 다시 정돈하기 시작한다. 마치 낡은 집을 고쳐서 깨끗하게 만들듯이, 벽지를 걷어내고 페인트 칠을 새로 하고 오래된 가구를 교체하는 것이다. 언젠가 다시 초대하면 오려나- 하는 생각으로!